"나는 오늘도 '내 것이 아닌 글'을 쓴다"…이름 없는 편집자의 '편집 후기' [책마을]

편집 후기

오경철 지음
교유서가
276쪽│1만6500원
책을 집어 든 보통의 독자들은 대개 제목과 저자, 출판사 순으로 훑어본다. 애독가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책의 맨 뒷장을 펼친다. 대다수 독자들이 건너뛰는 이 곳엔 편집, 디자인, 마케팅 담당 등 저자와 함께 책을 펴낸 이들이 적혀 있다.

최근 출간된 <편집 후기>는 어느 편집자가 쓴 회고록이다. 저자는 20년 가까이 출판업계에서 일해온 오경철 편집자다. 만족스러운 책을 만들어내지 못해 좌절하고, 업계의 부조리한 관행에 실망한 순간들도 있었다. 이번 회고록은 책을 사랑하는 마음 하나로 '책 만드는 일'을 계속한 그의 경험담을 담았다.저자는 책의 첫 문장에서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편집자가 된다"고 말한다. 편집자는 '읽는 사람'과 '쓰는 사람'의 모호한 경계에 있다. 작가가 건네준 원고를 보기 좋게 가공해 시장에 내놓는 게 편집자의 역할이다. 단순히 '남의 문장을 읽고 고치는 일'에 그치지 않는다. 책의 기획 단계부터 표지, 날개지, 뒷면, 보도자료 작성까지 관여하지 않는 부분이 없다. 여러모로 책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없으면 쉽지 않은 일이다.

저자의 편집자 생활은 그다지 성공적이지 않았다. 출판사에 취직한 그는 전혀 관심 없던 분야의 책들을 편집해야 했다. 성취감은 별로 없었다. 독립해서 차린 1인 출판사에선 '돈 되지 않는 문학책'에 골몰하다가 빚더미에 올랐다. 프리랜서로도 활동했지만, 출판사에서 주는 일감이 떨어지면 그 길로 백수가 됐다.

출판업계의 일부 불합리한 관행을 두고도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다"고 한탄한다. 그는 신출내기 시절, 수준이 한참 떨어지는 한 시집에 유명인들의 추천사가 줄줄이 실리는 모습을 보고 실망했다. 한 에세이의 추천사는 그가 대필하기도 했다. 책을 사랑하는 독자들을 우롱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는 "나중에 알고 보니 편집자가 추천사를 대신 쓰는 것은 업계에서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고 회상한다.그런데도 편집 일에서 손을 떼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책에 대한 순수한 열정이 원동력이 됐다고 그는 말한다. 저자는 이번 책을 출간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애서(愛書)와 불화"란 부제를 떠올렸다고 한다. 한 명의 애서가로서 일을 시작했지만, 책을 직업으로 삼으면서 책에 대한 환멸이 싹텄다고 했다. 긴 세월 쌓아온 애증관계를 무시할 수 없던 탓일까. 고민 끝에 나온 표어는 "결국 책을 사랑하는 일"이다.

제목 '편집 후기'는 편집을 마친 뒤 감상과 비평 등을 간단히 적은 글을 의미한다. 저자는 "비록 알아주는 사람이 없을지라도 그 책을 기억할 수 있게 해주는 나만의 표식을 남겨두고 싶었다"고 말한다.

책을 다 읽고 나면 자연스럽게 맨 마지막 페이지에 눈길이 간다. 류기일, 정소리. 이 책 출간 과정에 그림자처럼 함께한 편집자들의 이름이다.

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