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그거 별 거 아니라고? 김영하의 <작별인사>로 본 AI의 미래

[arte]김정민의 세상을 뒤집는 예술읽기

AI 시대의 모든 문제는 결국 인간 자신의 문제
'인간=우주의 주인공'이라는 생각 깬 소설

인간의 탁월함은 타인의 입장을 헤아릴 줄 아는 힘
미래의 우리를 위한 선택이 가장 인간다운 선택
ChatGPT가 세상에 나온 이후, 이제 ‘생성형 인공지능’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집 고양이들도 알아들을 정도로 핫이슈가 되었습니다. 호기심으로 시작한 ChatGPT 경험이 감탄과 경이로움으로 이어지지만, 동시에 그 이면에서는 앞으로 사라지게 될 일자리에 대한 걱정과 불안감이 스멀거려 사람들의 속내가 아주 복잡해졌습니다. 놀라움이나 감탄이야 각자가 겪은 경험만큼 다채롭게 흩어지지만, 인간의 노동력과 상대조차 안 되는 AI(인공지능)의 생산성에서 비롯된 걱정과 불안은 하나의 지점으로 모여듭니다. 결국 AI 시대 인간이란 무엇인지, 인간은 앞으로 어떤 쓸모가 있고 또 무얼하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말입니다.
다행히 저는 작년 이맘때 나온 김영하 작가의 <작별인사>라는 장편소설을 읽은 덕분에 놀라움보다는 담담함을, 불안감 보다는 냉정함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SF라는 장르가 그렇듯이 미래를 시뮬레이션 해 보는 일은, 어쩌면 숨 가쁘게 변화하는 세상에 대해 백신을 맞아보는 일인지도 모르겠네요. 많은 SF 작품과 영화가 있지만 김영하의 소설 <작별인사>를 떠올린 것은 그 소설을 통해 우리 앞에 다가 온 문제가 AI라는 낯선 존재가 아니라 우리 자신, 바로 인간의 문제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입니다.책의 내용을 아주 간략하게 정리하면, 인문학적 사유로 무장한 한 개발자가 휴머노이드를 자신의 아들처럼 키워 도덕적으로 더 훌륭한 존재, 기계를 능가하는 기계로 만들어 보려는 실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소설에는 생명공학을 이용한 복제인간, 자기 자신의 존재 의미를 성찰하는 강한 인공지능, 그리고 자신의 정신을 디지털 세계로 옮겨 영생을 도모하는 마인드 업로딩 기술까지, 미래라는 시나리오에 이미 들어 있는 다양한 기술이 책에 화려히 등장합니다. 그런 기술들이 과연 가능할 것인지도 분명 흥미로운 문제겠지만, 더 근본적인 문제는 그 와중에 ‘인간다움이란 과연 무엇인가’를 묻게 된다는 것입니다.


‘만약 현재 나의 모든 기억과 생각을 온전하게 보전한 채로 디지털 세계로 옮겨갈 수 있다면, 그래서 네트워크 속에서 어쩌면 영원히 생(?)을 살 수 있다면, 나도 점점 늙고 쇠약해가는 내 몸을 포기하고 마인드 업로딩을 선택할까?’
스스로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선뜻 대답을 못하겠습니다. 분명한 것은 아주 오랫동안 인류는 육신을 떠난 영혼이 영원히 사는 삶(그곳이 천국이든 극락이든 말이죠)에 대해 상상해 왔다는 겁니다. 육신의 고통이 없는 영혼의 세상, 그곳이 바로 천국일 텐데도 바보같이 선택을 못하겠습니다.미래, 아니 생각보다 가까운 미래에 인류는 ‘인간이 아닌 존재들’과 함께 어울려 살아야 한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 되었습니다. 영화 <가디언스 오브 갤럭시>에서처럼 말이지요. 그러다보니 인간들의 미래 시나리오가 복잡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인류가 비인간들과 함께 살아온 것은 전혀 새로운 일이 아니죠. 진화의 역사가 증언하듯이 인간은 지구 생태계의 모든 존재들과 함께 살아온 것입니다. 어쩌면 인간이 이렇게 편하고 풍족하게 살게 된 것은 그들 덕분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인간은 스스로가 지구 생태계의 주인공이고, 다른 존재들은 모두 그 주인공을 위한 엑스트라거나 주인의 삶을 위한 도구처럼 여겨왔습니다. 그리고 그 대가가 바로 요즘 우리를 고민하게 하는 ‘지속가능성’일 테고요. 이런 상태로는 지구 생태계,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인류가 살아갈 터전으로서 지구 생태계의 지속이 어려워졌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인간 때문에 멀쩡히 잘 살 수도 있을 애꿎은 생태계 동료들마저 멸종의 길을 걸어야 할지 모릅니다.
곳곳에서 경고의 알람을 울려대고는 있지만, 세상의 움직임은 더디기만 합니다. 정말 그런 재앙 같은 시나리오가 진짜로! 벌어지겠냐는 듯 말입니다. 그 속에는 여전히 ‘주인공은 나야 나!’라는 생각이 숨어있고, ‘주인공은 맨 나중에 죽으니까, 인류는 맨 마지막에...’라고 생각하는 것일지도 모르지요.

김영하의 소설 <작별인사>에는 주인공이 없어 보입니다. 왜냐하면 모두가 주인공이기 때문이죠. 우리 세대가 좋아하는 말투처럼 각자가 자기의 삶을 살아간다는 점에서 모두가 주인공들입니다. 지능이 있건 없건, 기계이건 사람이건, 아니면 사람 비슷한 무엇이건. 또 더 고차원적인 삶을 꿈꾸든 그렇지 않든, 물샐 틈 없이 연결된 네트워크에서 어떻게든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면 그들 모두가 주인공입니다.
유럽의 르네상스 이래 확산해 온, 인간이 무대의 주인공이라는 생각은 이제 효력을 다했습니다. 아니 이제는 미련 없이 버려야 할 생각이 되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까지 멸종한 생명체만으로도 모자라 다른 생명체까지 소멸의 길로 끌고 갈 판이니까요. <작별인사>의 마지막에는 SF의 전형적인 공식처럼 주인공의 어떤 선택이 나옵니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네오가 빨간 약과 파란 약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했듯이, 이 책의 주인공도 선택을 합니다. 인간도 아니면서 더 인간다운 선택을 하는 책의 결말 때문에 ‘작별인사’라는 제목이 더욱 강한 인상을 남기는 데요. 이제 우리도 선택해야겠죠. 마인드 업로딩에 대한 선택까지는 아닐지언정, 당장 우리와 우리 후손들의 미래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말입니다.

다행히 인간에게는 놀라운 능력이 있습니다. 미래를 그려보는 능력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보는 능력이 있습니다. 인간의 탁월함은 바로 그렇게 타자의 입장을 헤아릴 줄 아는데 있을 겁니다. 그저 현재의 내가 아니라 미래의 우리를 생각하는 일, 이것이 인간다운 선택의 기준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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