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피티를 그리는 71세 화가…김교식 전 여성가족부 차관 개인전

14~20일 갤러리 인사1010 개최
지하철 역사나 길거리 벽 등에 낙서처럼 휘갈겨 그리는 '그라피티'. 기성문화에 대한 저항과 도전 과정에서 피어난 까닭에 그라피티는 젊은 예술가들의 전유물로 여겨진다.

하지만 환갑이 지나 데뷔한 '늦깎이' 화가이자 올해 71세 노(老) 작가는 이런 고정관념에 사로잡히는 게 싫었다. 1980년부터 2011년까지 32년 동안 공직에서 일할 때 '하던대로 하자'는 것에 진절머리를 냈던 것처럼.김교식 전 여성가족부 차관이 틈틈이 그린 그라피티와 유화 등을 14~20일 서울 인사동 갤러리 인사1010에서 여는 개인전 '2023 시간과 공간의 재현'에서 선보인다.

김 작가의 개인전은 이번이 두 번째다. 지난해 첫 개인전이 풍경화와 인물화 위주였다면, 이번에는 그라피티, 실크스크린 등으로 영역이 확대됐다. 최근 작업실에서 만난 그는 "이 나이에도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서양미술의 대가들에게 영감을 받은 '그라피티 포'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김 작가가 전시 시작 사흘 전까지 붙들고 수정에 수정을 거쳐 완성한 작품이다. 캔버스 가운데에 아름답게 포즈를 취한 발레리나를 실크스크린 기법으로 새긴 뒤 그라피티와 회화를 더했다.
'그라피티 포 미켈란젤로'에는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 다비드상과 함께 'Where is my father, Michelangelo?(내 아빠는 어디 있죠, 미켈란젤로?)'라는 글을 적고, '그라피티 포 다빈치'에는 커피를 마시는 모나리자를 그리는 식이다.

김 작가는 화가로 치면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청년'이지만, 인생 내공으로 보면 차관까지 지낸 '베테랑 공무원'이었다. 행정고시 23회인 그는 기획재정부 기획조정실장을 거쳐 2011년 여성가족부 차관을 끝으로 공직을 떠났다. 그리곤 '그림 공부'를 시작했다. 여러 화가를 찾아다니면서 10년간 그림을 배웠다.

그는 늦게 미술 공부를 시작한 게 오히려 강점이 됐다고 말한다. 젊어서 그림을 배우면 대개 한가지 형식에 갇힌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늦게 시작한 덕분에 열린 마음으로 다양한 기법을 배우고 실험한다"며 "뛰어난 화가들을 만날 때마다 새로운 것을 배운다"고 말했다.
김 작가는 공직생활을 하면서 오랫동안 고민했던 사회발전과 문화융성의 메시지를 작품 안에 녹였다. 푸른색 밤하늘을 배경으로 한 '미메시스-비상'이 그렇다. 캔버스 밑에 있는 서울의 야경은 지난 수십년간 한국이 이뤄온 경제 발전을, 가운데 있는 발레리나는 세계로 뻗어나가는 'K컬쳐'를 뜻한다고.

새로운 도전으로 작품세계를 넓혀가고 있는 김 작가에게 '다음 목표'를 묻자, 그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프리카로 떠나서 영감을 얻어보려고 합니다. 남들은 70대면 노인이라고 하지만, 전 작가로 따지면 청년이거든요.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고 계속해서 열정적으로 그림을 그릴 겁니다."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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