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후쿠시마 원전사고' 넷플릭스 드라마 한국 공개 일부러 늦췄다?(종합)

글로벌 공개일 넘기면서 일부 네티즌 '정치적 압력 의혹' 제기
이달 시행된 '자체등급분류' 혼선 탓…영등위 "일본 드라마는 미포함"
종전대로 '영등위 심사' 뒤 공개 가능…넷플릭스 "최대한 빠른 시일내 공개"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오염수 해양 방류를 둘러싼 논란의 불똥이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업체인 넷플릭스로 튀었다.후쿠시마 원전사고를 다룬 일본 드라마 '더 데이스(The Days)'가 넷플릭스를 통해 지난 1일부터 세계 각국에서 공개됐으나 한국은 제외되자 정치적 압력 때문 아니냐는 의혹이 일부 네티즌들 사이에서 제기되고 있다.

유튜브에 게재된 '더 데이스' 예고편 영상에는 "사전 검열 받았나?" "대단한 정부입니다" 등의 댓글이 달렸다.

이런 가운데 더불어민주당까지 나서 지난 9일 넷플릭스의 납득할 수 있는 답변을 촉구하는 논평을 내놨다.이 같은 의혹은 근거가 있는 걸까?
넷플릭스가 제작비를 댄 넷플릭스 오리지널인 '더 데이스'는 2011년 3월 11일 동일본대지진으로 인한 쓰나미 때문에 일어난 후쿠시마 원전사고 당시 7일간의 긴박했던 상황을 실제 사건을 토대로 극화한 8부작 드라마로 야쿠쇼 코지 등 일본 유명 배우들이 출연한다.

유튜브에는 넷플릭스가 지난 2월부터 게재한 여러 개의 예고편 영상이 올라와 있다.세계 최대 OTT 업체인 넷플릭스는 1997년 미국 온라인 DVD 대여업체로 설립돼 2007년부터 스트리밍 서비스를 시작했으며 현재 중국, 북한, 시리아를 제외한 190여개국에서 30개 이상 언어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올 1분기 실적 발표를 보면 넷플릭스의 유료 구독자 수는 3월 말 기준 2억3천250만명이다.

넷플릭스 한국지사에 따르면, 자체 제작하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작품은 모든 국가에서 예외 없이 공개하는 것이 원칙이다.일부 지역에서 자막·더빙 등의 현지화 작업 때문에 글로벌 공개일보다 공개가 늦춰지는 경우가 있지만 그 밖의 이유로 지역별 공개 일정에 차이를 두진 않는다는 것이다.

넷플릭스 측은 한국에서 '더 데이스' 공개를 글로벌 공개일에 맞추지 못한 건 이달부터 시행에 들어간 'OTT 자체등급분류 제도'와 관련이 있다고 설명했다.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영화비디오법)은 국내·국외 사업자 구분 없이 국내에서 유통되는 모든 유료 영상물(영화·비디오물)에 대해 영상물등급위원회로부터 사전등급분류를 받도록 규정해 왔다.

영상물 시청 등급은 전체관람가, 12세 이상 관람가, 15세 이상 관람가, 청소년 관람불가, 제한상영가 등 5가지다.

하지만 지난해 9월 법 개정으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지정한 자체등급분류사업자가 취급하는 온라인 비디오물에 한해 영등위 심사 없이 자체적으로 등급을 분류해 서비스할 수 있게 됐다.
문체부와 영등위는 개정 법규가 시행된 지난 3월 말부터 자체등급분류사업자 선정 절차에 들어가 5월 31일 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 애플TV+, 왓챠, 웨이브, 쿠팡플레이, 티빙 등 7개 OTT 업체를 5년 시한의 자체등급분류사업자로 지정했다.

규정대로라면 이들 업체는 지정 다음 날인 6월 1일부터 자사 플랫폼에서 제공하는 영상물 등급을 자체적으로 분류할 수 있다.

그러나 문체부와 영등위, OTT 업계를 취재한 결과를 종합해 보면 자체등급분류 제도 시행 과정에서 일본 영상물과 관련해 혼선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일본 영화, 방송, 음반 등 콘텐츠는 1998~2004년 이뤄진 1~4차 일본 대중문화 개방으로 대부분 국내에 개방이 됐으나 비디오물 등에 대한 제약이 일부 남아있다.

일본 비디오물은 우리나라에서 영화로 상영되거나 방송으로 방영된 작품만 유통이 가능하다는 당시 정책이 유지되면서 영등위 등급분류 대상에서 아예 제외돼 있다.

이에 따라 넷플릭스 등 OTT 업체들은 일본 드라마를 우리나라에서 처음 공개할 때 비디오물이 아닌 영화로 간주해 영등위의 사전등급분류를 받아왔다.

영등위는 이달부터 시행된 OTT 자체등급분류도 원칙적으로 현재 영등위의 등급분류 대상과 범위 내에서 가능하기 때문에 일본 비디오물은 자체등급분류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따라서 '더 데이스'처럼 미방영된 일본 드라마를 국내에 공개하려면 종전대로 '영화'로 영등위 등급심사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OTT 업계에선 일본 영상물에 대한 규제는 법령상 근거가 없는 데다 자체등급분류 제도 시행 전에 충분한 협의와 조율이 없었다는 반응이다.

실제로 넷플릭스는 일본 영상물도 자체등급분류가 가능한 것으로 판단했다가 공개 일정에 차질을 빚게 됐다는 것이다.

넷플릭스 측은 같은 이유로 공개가 늦어진 작품들이 '더 데이스' 외에도 '겐간 아슈라 시즌2', '이혼합시다' 등 일본 작품만 20개 이상이라고 밝혔다.
과거에도 넷플릭스 영상물의 한국 공개가 등급분류 지연 등으로 지체된 사례가 있다.

영등위의 비디오물 등급분류 법정 처리시한은 14일이지만 심사 물량이 많아 시한을 넘기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미국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을 다룬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더 라스트 댄스'는 2020년 4월 20일 글로벌 공개가 이뤄졌으나 한국에선 3주 늦은 5월 11일에서야 공개됐다.

자동차 경주대회 포뮬러1(FI)에 대한 다큐멘터리 'FI, 본능의 질주 시즌5'의 글로벌 공개일은 올해 2월 24일이었으나 한국 공개는 한 달 늦은 3월 24일 이뤄졌다.

넷플릭스 공식 순위 사이트인 '넷플릭스 글로벌 톱10'에 따르면, 콜롬비아 드라마 '페이크 프로파일(Fake Profile)'은 지난달 31일 글로벌 공개가 돼 현재 비영어권 TV 부문에서 시청 시간 전체 1위를 기록 중이지만 한국은 아직 공개되지 않고 있다.

'더 데이스'는 넷플릭스 비영어권 TV 부문 전체 5위를 기록 중이며, 지역별로는 일본, 홍콩, 싱가포르, 덴마크, 스웨덴, 멕시코, 아르헨티나 등 37개국에서 10위권에 랭크돼 있다.

과거 언론 보도를 검색해 보면 넷플릭스가 특정 국가 당국의 요청이나 비판 여론 때문에 해당 영상물의 현지 서비스를 중단하거나 일부 내용을 삭제·수정한 사례가 드물지만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넷플릭스는 2018년 사우디아라비아 왕실과 정권을 풍자한 코미디쇼의 일부를 사우디 정부의 요청에 따라 삭제한 바 있다.

2021년에는 영유권 분쟁이 있는 남중국해에 중국이 설정한 영해선이 등장하는 호주 첩보 드라마의 방영을 베트남과 필리핀 정부 요청으로 중단하기도 했다.

정리해 보면 넷플릭스가 현지 정부 요청으로 영상물 제공을 중단한 사례가 없지 않지만, '더 데이스'의 경우 넷플릭스 측의 해명과 과거 사례 현재까지 정황에 비춰봤을 때 정치적 이유로 한국 공개를 늦췄다고 볼 근거는 찾기 어려워 보인다.

넷플릭스 한국지사 관계자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작품의 주제나 내용에 따라 공개 여부를 결정하는 건 전 세계를 대상으로 서비스하는 넷플릭스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최근 사회적 이슈나 법적인 다툼에도 불구하고 예정대로 공개한 '나는 신이다'도 그랬고 '더 데이스'도 예외가 아니다.

최대한 빠른 시일내 공개할 수 있도록 노력 중이고 모든 작품은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예외 없이 공개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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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