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규제 완화되자 1년 만에 폐원…서울백병원에 무슨 일이

상업시설 전환 길 열리자…폐원 결정한 서울백병원
사진=뉴스1
국내 첫 민립병원인 서울백병원이 개원 82년 만에 폐원 위기에 처했다. 서울의 심장부(중구 저동)에 위치한 백병원은 부지 가치만 약 2000억원에 달해 곧 상업용 건물로 탈바꿈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1992년 국내 최초로 성인 간암환자 간이식에 성공하는 등 한국 외과 발전에 한 획을 그었던 백병원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도심의 유일한 종합 병원

12일 인제학원 등에 따르면 서울백병원은 오는 20일 이사회를 열고 병원 폐원안을 의결할 예정이다. 백병원 경영정상화 태스크포스(TF)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8월 말 폐원을 사실상 확정한 상황”이라며 “직원 393명을 다른 병원으로 전출하는 방안 등이 이미 논의되고 있다”고 설명했다.백병원은 1941년 ‘백인제 외과병원’으로 첫 영업을 시작했다. 1975년엔 서울 도심의 유일한 종합 병원이 됐다. 특히 돈이 되지 않아 다른 병원이 기피하는 외과 수술 분야에 강점을 보였다. 1992년 이혁상 교수팀은 국내 최초로 성인 간암환자 간이식에 성공하기도 했다. 백병원은 서울에 이어 부산과 일산 등에 분원을 내며 성장했지만 정작 서울백병원은 적자에 시달렸다. 도심 상권 개발로 인근 주민들이 떠난 데다 서울아산병원 등 대기업 재단이 운영하는 병원에 밀려 환자가 준 탓이다. 2004년 73억원의 첫 손실을 기록한 후 누적 적자만 1745억원을 기록했다.

백병원 위기설은 예전부터 나왔지만 폐원 논의가 급물살을 탄 것은 최근부터다. 백병원은 만성 적자를 벗어나기 위해 의료·공공 분야 전문 컨설팅 회사인 엘리오앤컴퍼니에 경영 진단을 의뢰했고 “폐업 후 상업 시설로 전환이 불가피하다”는 결과를 받았다.

의료 업계 관계자는 “중구의 유명 산부인과인 제일병원의 컨설팅을 맡았던 회사”라며 “강도 높은 구조조정 끝에 제일병원 역시 폐업을 결정했다”고 귀띔했다.

규제 완화되자 1년 만에 폐원

백병원이 폐원을 검토한 배경엔 정부의 규제 완화도 영향을 미쳤다. 교육부는 작년 6월 사립대학 재단이 보유한 재산을 유연하게 활용해 재정 여건을 개선할 수 있도록 ‘사립대학 기본재산 관리 안내’ 지침을 개정했다. 개정안의 핵심은 사립대가 일정 수준의 교육용 건물·토지를 확보했다면 나머지 유휴 재산은 조건 없이 수익용으로 바꿀 수 있다는 내용이다. 백병원 안엔 인제대 의과대가 있어 교육용 재산으로 분류돼 있었다.

이와 함께 새 지침에선 교지(땅), 교사(건물) 등 교육용 기본재산을 수익용으로 용도 변경하기 위해 법인으로 넘기려면 해당 재산의 시가에 해당하는 금액을 교비회계에 채워넣도록 했는데 이를 면제해주겠다는 내용도 있었다. 쉽게 말해 백병원 건물을 큰 제약없이 남대문의 연세재단세브란스빌딩과 같이 상업용 시설로 바꿀 수 있다는 얘기다.

백병원 관계자는 “명지대를 소유한 명지학원을 위한 규제 완화였는데 백병원 역시 혜택을 받게 됐다”며 “법률 검토 결과 요양병원이나 상업 시설 등으로 활용해도 문제가 없다는 판단”이라고 했다. 백병원 경영정상화 TF는 △건물 매각 △수익용 건물로 변경 △별도 의료 법인 설립 등 1~3안의 정상화 방안을 이사회에 보고한 것으로 전해졌다.부동산 업계에선 백병원이 상업용 건물로 바뀔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부지 가치만 약 2000억원으로 평가되는 데다 30~40층 규모의 업무용 건물이 들어설 수 있는 위치기 때문이다. 인근의 제일병원 역시 폐원 후 부지가 매각 됐고 현재는 도시형생활주택이 지어지고 있다.

백병원 소속 의사와 직원들은 크게 반발하고 있다. 서울백병원 교수협의회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부산 등 지방 병원 건립을 위해 서울백병원의 경쟁력이 약화됐다”며 “인제학원의 잘못된 결정으로 인한 피해를 직원들이 보고 있다”고 반발했다.

서울시도 당황하고 있다. 백병원은 서울 도심의 유일한 감염병전담기관이자 대규모 응급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서울 도심의 공공의료 기능 부재로 이어질 수도 있다”며 “폐원에 앞서 서울시와 협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서울 백병원 관계자는 “해당 부지와 건물 처리방안은 정해진 바가 없다”며 “이사회 의견 등 별도 논의를 거쳐 결정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조철오 기자 che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