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독간호사는 가난한 누이?…'진짜 사람' 이야기 들려드릴게요"
입력
수정
지면A25
인터뷰 - 소설가 백수린장편소설은 국내 소설가들에게 두 번째 데뷔 무대다. 통상 단편소설로 등단하기 때문이다. ‘당선’된 첫 소설과 달리 소설가가 직접 정하는 첫 장편은 ‘앞으로 어떤 소설가로 살겠다’는 선언과 마찬가지다.
고정관념 깬 '주체적 파독간호사'
등단 12년 만에 첫 장편소설
문학동네서 출간
등단 12년 만에 첫 장편소설 <눈부신 안부>를 낸 백수린 작가(41·사진)는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장편은 단편보다 오랜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 점을 감안해 ‘간절하게’ 쓰고 싶은 이야기를 찾았다”며 “그래서 첫 장편을 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말했다. 2011년 등단한 백 작가는 이해조소설문학상, 문학동네 젊은작가상, 현대문학상, 김승옥문학상 우수상 등을 받으며 평단과 독자들을 사로잡았다.마음을 움직이는 이야기를 찾던 그는 2020년 여름, 가까운 이들과 둘러앉은 식탁에서 한 단어를 듣는다. ‘파독간호사.’ 몇 년 전 서울역사박물관에서 관련 전시를 본 지인이 ‘흔히 생각하는 가난한 누이 이미지와 달리 주체적인 여성들이었다’는 이야기를 전해줬다. “그 단어를 듣는 순간 ‘뭔가 쓸 수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자리에 함께 있던 사람들이 ‘제 얼굴색이 점점 밝아지는 게 보였다’고 할 정도로요.”
이 소설의 키워드는 파독간호사와 거짓말이다. 주인공 해미는 어려서 가스 폭발 사고로 언니를 잃은 뒤 자칭 ‘거짓말 전문가’가 된다. 아끼는 사람들의 마음을 지키려 거짓말을 일삼는다.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된 해미는 어린 시절 완수하지 못했던 ‘파독간호사 선자 이모의 첫사랑 찾기’에 다시 도전하며 과거의 자신과 마주한다.백 작가 특유의 섬세한 문체에 숨겨져 있는, ‘과거의 나를 대면하지 않으면 새로운 시작도 없다’는 소설의 메시지가 엄중하게 다가온다. 백 작가는 “뭔가를 직면하기 힘들어서 그냥 묻고 가는 일이 허다하지만, 과거의 나를 똑바로 볼 수 있어야 비로소 유년기를 끝내고 어른으로 갈 수 있다”고 했다.
‘거짓말’은 백 작가에게 언어와 진실의 관계에 대한 고민을 함축하는 단어다. “소설가는 계속해서 글을 생산하고 그 글을 고정시키는 직업인데, 뭔가에 이름을 붙이는 일이 진실을 납작하거나 단순하게 만들어버릴 수 있다는 두려움이 늘 있어요. 동시에 소설이라는 장르가 일상 언어의 투박함을 이기는 방법이라는 생각을 갖고 글을 씁니다.”
여성, 파독간호사, 어린이…. 어떤 단어를 들었을 때 떠오르는 전형적인 이미지를 부수는 작업을 백 작가는 지속할 생각이다. 그는 “차기작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은 아직 없지만 다들 평면적으로 여기는 인물을 입체적으로 바라보는 작업을 계속하고 싶다”고 했다. 이어 “소설가 백수린이 또 다른 이야기를, 다른 스타일로도 쓸 수 있다는 걸 보여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