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리와 로키타> 진심으로 상대에게 손을 내민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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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허남웅의 씨네마틱 유로버스‘영화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에 대한 답변과 같은 연출자를 꼽으라면 단연 벨기에 출신의 다르덴 형제 감독이 떠오른다. ‘토리와 로키타’(2022)가 올해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면서 다르덴 형제가 내한하기도 했는데, 그에 대한 관심처럼 ‘토리와 로키타’를 비롯하여 다르덴 형제의 몇몇 작품이 주목받았다.토리(파블로 실스)와 로키타(졸리 음분두)는 아프리카 이민자 출신으로 프랑스에서 불법 체류하고 있다. 체류증을 받지 못해 합법적인 노동을 할 수 없어 마약 배달을 하며 겨우 생계를 유지한다. 푼돈임에도 불구하고 거기서 얼마를 떼어 아프리카에 있는 가족에게 보내고, 프랑스로 입국하는 데 선을 대준 브로커에게 진 빚도 갚아야 한다.힘든 현실을 견딜 수 있는 건 토리와 로키타에게 서로가 있어서다. 누나 로키타는 다행히 체류증이 나온 동생 토리가 프랑스에서 학교에 다니며 누구 못지않게 자랐으면 하는 바람이다. 토리는 어린 나이지만, 지금부터라도 돈을 모아 로키타와 함께 살 집을 구하고 싶다. 그런데 이 둘이 떨어지는 일이 발생한다.
돈이 더 필요했던 로키타는 인적이 끊긴 창고에서 몇 날을 갇힌 상태로 마약을 재배하는 일에 참여한다. 토리는 연락이 닿지 않는 누나를 찾겠다고 마약상의 뒤를 쫓아 문제의 창고를 발견한다. 그곳에서 둘은 감격적으로 재회하지만, 덜미가 잡히면서 이들의 삶에 더 큰 위기가 닥친다.
다르덴 형제의 영화는 보통 인물의 이름을 단독으로 전면에 내세우는 경우가 많았다. ‘소년 아메드’(2019) ‘로나의 침묵’(2008) ‘로제타’(1999) 등 보호받지 못하고, 관심받지 못하고, 차별당하는 이민자, 난민, 아동의 삶을 가감 없이 보아달라는 의미에서다. 그와 다르게 ‘토리와 로키타’는 두 개의 이름을 사이좋게 나란히 배치한 게 특징이다. 이에 대해 다르덴 형제는 “두 아이들의 우정(형제애)가 어떻게 장애물을 뛰어넘고 헤쳐가는지, 젊은 이민자들이 처한 상황이 어떤 것인지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다르덴 형제의 영화에서 우정은 손을 내미는 행위다. 일종의 연대다. 비(非)전문 배우를 주로 기용하는 것과 다르게 다르덴 형제가 마리옹 코띠아르를 캐스팅하여 화제를 모았던 ‘내일을 위한 시간’(2015)의 주인공은 자신과 함께 일하는 대신 보너스를 챙긴 회사 동료 십여 명을 찾아가 결정을 재고해달라고, 돈 몇 푼 더 챙기는 것보다 누구 하나라도 더 일할 기회를 주는 것이 더 가치 있지 않느냐고 설득에 나서 끝내 함께 사는 가치의 변화를 끌어낸다. 다르덴 형제가 소외된 이들에게 손을 내밀어 영화를 찍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들은 영화를 통해 탈골된 진실을 세상에 알려 많은 이들이 더 나은 세상을 향한 변화의 움직임에 동참하기를 바란다. ‘로제타’는 다르덴 형제의 바람이 이뤄진 경우로, 이 작품에는 부모의 방관 속에 경제적 어려움에 처하고, 이를 벗어나려 미성년자의 나이에도 일자리 찾기에 목을 매는 소녀가 등장한다. 보호받지 못하는 십대의 인권을 폭로한 ‘로제타’의 개봉 후 벨기에 정부는 부당한 현실을 직시하고 청년 고용을 의무화하는 ‘로제타 법’을 제정해 십대 노동자를 보호하는 데 앞장섰다.
‘토리와 로키타’의 포스터는 다르덴 형제의 세계관을 반영하듯 남매가 서로의 손을 붙들고 있는 이미지로 강조되어 있다. 하지만 세상은 두 사람이 손을 잡아 연대의 스크럼을 짜는 것만으로는 변화를 도모하기 힘든 만큼 기득권이 없는 이들은 더 가혹한 상태로 내몰리고 있다. 스포일러를 무릅쓰고 결말을 밝히자면, 창고에서 탈출해 마약상에게 쫓기던 로키타는 “토리 너라도 살아남아 인간다운 삶을 누리라”며 자신을 희생해 동생을 죽음으로부터 구해낸다. 그때부터 영화의 주체는 관객에게 넘어온다. 당신이 살아남은 토리라면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라는 질문을 던진다.토리가 어떤 아이가 될지 예측하는 건 어렵지만, 단 하나, 자신처럼 위험에 처한 이에게 손을 내밀 줄 아는 이가 될 것이란 사실은 명확하다. 다르덴 형제는 ‘극 중 토리와 로키타와 같은 이들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질문을 던지며 내심 그들을 향한 관심과 도움의 손길에 주저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그의 강조처럼 다르덴 형제의 카메라는 늘 극 중 주인공의 등 뒤에 붙은 듯한 촬영으로 일관하며 인물의 처한 상황을 함께 경험하도록 한다. 그런 경험 끝에 내민 ‘사이좋은 나란히’의 가치, 즉 연대와 공존과 도움의 손길엔 그 어느 때보다 진심이 담겨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