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지도가 아니다" 목판에 인생을 새겨나간 남자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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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강희찬의 역사영화-진실과 거짓시사회장 의자에 몸을 기대고도 손은 이리저리 불안했다. 나, 고산자 김정호에 대한 영화라니…. 어울리지 않는다고 고개를 작게 흔들었을 때 푸른 반짝임의 바다가 눈앞에 펼쳐졌다. 화면이 바뀌고 계곡의 하얀 물줄기, 흐드러진 꽃으로 붉게 물든 산, 백두산 천지의 장엄함이 모습을 드러냈다. 불편했던 마음이 조금 가라앉았다.
영화를 보는 내내 생각했다. 나에 대해 아니, 보다 정확히는 내 영혼을 사로잡았던 것에 대해 말해야 한다고.엉터리 지도 때문에 아버지가 죽고 그래서 내가 이 길을 택했다는 상상은 다소 억지스러웠다.
난 판각 기술자였다. 다들 최고라 했으니 재능이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공허와 무력감에 시달리는 나를 발견했다. 자기최면이라도 걸어서 인생의 의미와 가치를 찾아야 할 판이었다. 그때 이전에 보았던 지도가 떠올랐다. 그렇게 시작됐다.
당시 지도의 수요는 많지 않았다. 사람들이 길을 떠날 때는 안내잡이를 내세우거나 거리와 방향에 대한 대략의 정보면 충분했다. 그 방식이 작동했냐고? 물론. 그것도 확실히. 그러니 지도를 찾는 사람은 극히 적었다. 지적 호기심이 있는 지식인들, 그리고 관료집단인 사대부들이나 관심을 가졌다. 나라도 지도를 만들긴 했다. 지도의 쓸모는 본래 통치자가 자신이 다스리는 땅의 모양을, 어디에 무엇이 있는가를 상상하는 데 있었으니까.
“지도는 나라의 것인데 천한 백성들이 알아서 뭐 하는가!”라고 호통치는 장면, 대동여지도 목판본을 둘러싼 흥선대원군과 안동김씨 가문의 싸움도 그런 면에서 수긍이 갔다. 하지만 군사, 행정 정보가 담긴 지도는 이미 기밀이 아니었다.지도에 대한 관심이 평생의 업으로 이어질 줄 그땐 몰랐다. 순탄한 길은 아니었다. 가르쳐 줄 사람이 없었으니까. 그러나 다행히 정상기, 정철조, 신경준 같은 앞서 살다간 분들의 탁월한 작업물이 있었다. 그것들을 보고 또 보며 지도 제작법을 조금씩 터득했다. 관건은 거리와 방향에 대한 정확한 정보였다. 지리 정보가 담긴 전국 지리지, 도별 지리지, 읍지, 그림식 지도책을 백방으로 모았다. 그리고 자료들을 비교 분석해서 정확한 정보를 판별하는데 집중했다. 일부 답사를 하긴 했지만 전국을 돌 필요는 없었다. 그건 애초에 한 명의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으니까.지도를 그려보겠다고 나선 건 지금 생각해도 도전적인 일이었다. 그것도 아주 많이. 한자로 된 지리지를 읽을 수 있어야 했고 양질의 지리 정보에 평민이 접근하기는 쉽지 않았다. 개인이 시대를 초월해 사는 건 어려운 일이지만 다행히 신분의 경계가 흐릿해지고 있었고 하고 싶은 것을 해봐도 된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었다.
점차 지도 그리기에 자신이 붙기 시작했고 그 사이 이 길에 확신이 생겼다.영화에선 ‘길 위의 남자’, ‘돈도 안 되는 지도에 미친 사람’으로, 딸 얼굴도 기억 못 하는 아비라고 했지만(물론 좋은 뜻으로 한 말인 건 안다.) 지도는 내게 생업이었고 그걸로 가족을 부양했다. 그 사실이 지금도 자랑스럽다.
점점 욕심이 생겼다. 이왕 지도를 만들 거라면 제대로 해 보자는 마음이. 난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사람들이 지도를 통해 알고 싶은 것이 뭔지, 담아야 할 정보의 종류와 양, 포함되어야 할 기호의 종류, 사용해야 할 색, 지도 형식을 고민했다.
그리고 편리함!
그게 중요했다. 이용하기 불편한 상품은 만들고 싶지 않았다. 청구도, 동여도를 만들었고 지도 장인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당시 난 인생에 완벽은 없지만 최선은 있다라는 말을 붙들고 살았다. 그 결과물이 대동여지도 목판본이었다. 사람들이 베껴 그릴 필요가 없고 비싸지 않은 지도. 지금 당신들이 보고 있는 바로 그것. 나의 최선!
하지만 이런 설명만으론 내가 지도에 갖는 특별한 감정을 표현하기엔 부족하다.난 여행자였다. 지도 속으로 걸어 들어가 숲에서 쉬기도 하고 길을 따라 산성에 오르기도 했다. 바람이 부르는 노래 소리와 강의 은빛 물결, 산성의 견고함에 감탄했다. 그러다 해안선을, 국경선을 직접 보고 싶다는 충동에 사로잡히기도 했고 땅의 높고 낮음과 강의 깊이를, 바다의 망망함을 그려보기도 했다. 답답할 땐 흙먼지를 일으키며 말을 타는 나를 상상했고 더울 때는 북쪽 국경의 눈 덮인 산을, 추울 땐 무리 지어 헤엄치는 남쪽 바다의 고기떼를 떠올렸다. 상상이 구현되는 세계. 내게 지도는 그랬다.
자료에 둘러싸여 목판만 만지작거리는 일상이 사람들 눈엔 단조롭고 밋밋해 보였을지 모르지만 내 삶엔 몰입의 쾌감과 운율과 절조가 있었다.
끌과 망치 소리, 피나무 목판향이 그득한 작업장이 지금 이 순간도 생생하다. 한순간 밝게 빛나고 사라지는 인생에서 난 운 좋게 지도를 만났다. 나만의 지도를.
구글 맵이 보여주는 세상은 완벽하지 않다. 자신의 길과 상상이 구현되는 지도만이 의미가 있다.
이제 당신의 이야기가 듣고 싶다. 무척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