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천장' 부순 당당한 눈빛…마리 앙투아네트가 사랑한 그녀

이명옥의 명작 유레카
'베르사유의 화가' 비제 르브룅

여성 최초 佛 아카데미 회원

15세부터 초상화 그리기 시작
빼어난 실력…궁정 화가 영예

전문 화가 자부심 담은 자화상

우아함과 야심 동시에 표현
자신 있는 눈빛으로 관객 응시
엘리자베스 비제 르브룅의 ‘밀짚모자를 쓴 자화상’(1782). 영국 내셔널갤러리 소장
프랑스 역사학자 피에르 드 놀라크는 19세기 프랑스 여성 화가 엘리자베스 비제 르브룅(1755~1842)의 일대기를 다룬 책에서 다음과 같은 일화를 소개한다.

1783년 5월 14일, 앙지비에 백작이 프랑스 왕 루이 16세에게 이런 보고서를 올린다. “전하께 아카데미에 가입할 수 있는 여성을 네 명으로 제한해주실 것을 간청합니다. 이는 예술의 진보에 결코 참여할 수 없었고, 전하께서 설립하신 공립학교에서 실제 모델을 보고 습작하지 못한 정숙한 여성의 재능을 명예롭게 하기에는 충분한 숫자입니다.”이 보고서는 여성 화가들이 남성 지배적인 사회제도 속에서 미술 아카데미 등록을 거부당하거나 회원 자격을 얻는 일이 무척 어려웠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18세기 후반 유럽에서 예술가는 남성을 의미했다. 여성 화가들은 힘든 관문을 통과해 아카데미 회원 자격을 획득했더라도 남성 회원들처럼 살롱에서 작품을 발표할 기회를 보장받지 못했다.

여성들이 사회적 편견과 성차별로 직업 화가로 활동하기 쉽지 않았던 시대에 비제 르브룅은 당당하게 실력을 인정받았다. 1783년 여성 화가로는 처음으로 프랑스 아카데미 공식 회원이 되는 영예를 누렸다. 프랑스를 넘어 여러 유럽 도시에서 아카데미 회원 자격을 획득해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최초의 여성 예술가 중 한 명이기도 하다. 비제 르브룅은 ‘유리천장’을 깨고 여성 미술가의 성공 신화를 이뤄냈다는 점에서 전문직 여성의 성공 사례로 꼽힌다.
엘리자베스 비제 르브룅의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1783). 프랑스 베르사유박물관 소장
놀랍게도 그녀는 화가인 아버지로부터 그림을 배워 15세의 어린 나이에 초상화를 주문받는 직업 화가로 활동을 시작했다. 빼어난 미모에 탁월한 그림 실력을 갖춘 처녀 화가에게 왕족, 귀족, 장군, 변호사 등 사교계 유명 인사들이 초상화를 의뢰했다.1776년 비제 르브룅은 미술품을 매매하는 화상(畵商) 장 바티스트 피에르 르브룅과 결혼했다. 그녀가 많은 장애물에도 불구하고 전업 화가로 활동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화상인 남편의 영향력도 작용했다. 이는 ‘아내는 제 가게를 가득 채운 루벤스, 렘브란트, 귀도 레니 등 거장들의 걸작을 직접 보는 행운을 얻어 일급 화가군에 들 만큼 완벽한 수준에 이를 수 있었다’는 피에르의 글에서도 나타난다.

1779년 비제 르브룅에게 일생일대의 행운이 찾아왔다. 24세의 젊은 여성 화가는 베르사유궁전에 초대돼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의 실물을 직접 보고 초상화를 그리는 영광을 안게 된 것이다. 그는 1835년 81세에 쓴 회고록에서 앙투아네트의 초상화를 처음으로 그린 날을 이렇게 회상했다.

“왕비는 오스트리아 사람 특유의 길고 좁은 타원형 얼굴이었고 눈은 크지 않았으며 거의 파란색이었는데 명랑하면서도 다정한 눈매였다. 코는 가늘고 예뻤으며 입술은 도톰한 편이었다. (중략) 피부가 그렇게 밝고 투명한 사람은 본 적이 없었다. 나는 실물의 아름다움을 그림에 다 담아내지는 못했다.”아름다운 외모와 뛰어난 재능을 가진 여성 화가가 그린 초상화는 왕비의 취향과도 잘 맞았다. 특히 곱고 섬세한 피부색을 강조하는 기법으로 합스부르크 가문의 특징인 돌출된 턱의 결점을 가린 초상화에 감탄한 왕비는 그녀를 궁정 전속 화가로 임명했다.

비제 르브룅은 왕비의 총애를 받는 궁정화가이자 동갑내기 친구로 영광의 나날을 보내며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나 왕정이 무너지기 전까지 6년 동안 약 30점에 이르는 왕비의 초상화와 왕실 가족의 초상화를 그렸다. 궁정화가로 활동하던 시절에 그린 비제 르브룅의 자화상은 여성 화가로서 당대 최고 지위에 올랐던 자부심과 긍지를 보여준다. 화가는 시골을 배경으로 들꽃과 타조 깃털로 장식된 납작한 밀짚모자를 쓰고 당시 파리에서 유행한 분홍색 슈미즈 드레스를 입은 채 자신감이 넘치는 눈빛으로 관객을 응시한다.

그녀는 왼손에 물감을 짜놓은 팔레트와 7개의 붓을 들고 있는데 이것은 궁정화가의 높은 지위와 자신이 창조의 주체라는 것을 알리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밀짚모자 아래 얼굴 윗부분에 드리워진 섬세한 그림자와 얼굴 아랫부분과 드러난 목선, 가슴 위에 밝은 빛이 내리쬐는 부분을 주목해보라. 빛과 그림자의 대비 효과는 당대 최고 묘사력을 가진 화가 중 한 명이라는 것을 증명한다.이 자화상은 아름다운 용모와 우아한 여성미로 사랑스러움을 드러내면서도 야심 차고 재능 있는 전문 화가의 독립적인 성격을 강조하는 두 가지를 결합한 것으로 명화 반열에 올랐다. 비제 르브룅은 초상화 662점, 풍경화 200여 점 등 총 800점 이상의 작품을 남겼고 1842년 87세로 파리에서 생을 마감했다.



비제 르브룅의 자화상은 전문 화가를 꿈꾸는 여성들에게 해방된 여성의 모범적 이미지를 제공하며 유리천장을 깨는 데 기여했다. 미술사가인 앤 히고넷은 성공한 여성 전문 화가인 그녀에 대해 “18세기 후반기의 가장 급진적인 화가”라고 평가했다.

이명옥 사비나미술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