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현대 어린이집, 밤 10시까지 네끼 식사…"야근해도 걱정 없어"

인구 5000만을 지키자
(18) 저출산 극복, 기업이 직접 나섰다

문 연지 석 달된 성남 '드림보트'

한 명이라도 남으면 교사가 돌봐
"맞벌이 부부, 부담 확 줄어들어"
정기선 사장, 수시로 찾아 확인

다른 어린이집 다녀도 교육비 지원
어린이집 교사가 13일 경기 성남시 HD현대 글로벌R&D센터 내 드림보트에서 유아반(만 3~5세) 어린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오후 5시 저녁 식사 중인 유아반 아이들. 강은구/김범준 기자
13일 방문한 경기 성남시 HD현대 글로벌R&D센터(GRC)의 직장어린이집 드림보트. 오후 5시가 넘은 시간에 만 3~5세 유아반 아이들 36명이 ‘냠냠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었다. 오후 4시께 하원을 시작해 오후 5시면 텅 비는 일반 어린이집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유아반 정원 54명 중 절반이 넘는 ‘범고래반’ ‘돌고래반’ 아이들이 부모를 기다리며 한 시간가량 밥을 먹었다. 오후 6시가 넘자 일을 마친 부모들이 하나둘 아이를 안고 건물을 나섰다. 야근하는 직원들을 위해 밤 10시까지 운영된다.

1일 4식 제공…육아 부담 확 줄어

드림보트의 가장 큰 강점은 ‘식사’라고 교사와 직원들은 입을 모은다. 이 어린이집은 아침, 점심, 간식은 물론 저녁까지 친환경 식재료로 조리한 네 끼 식사를 무상으로 제공한다. 한정호 HD현대사이트솔루션 DT업무혁신1팀 책임매니저(41)는 “육아를 하면서 가장 많은 시간을 들이는 게 식사 준비인데, 이런 부담에서 해방돼 너무 좋다”고 말했다. 그는 드림보트에 만 2세와 만 4세 아이 둘을 매일 오전 7시30분에 맡기고 업무를 시작한다.

영유아 자녀를 둔 HD현대그룹 임직원의 반응은 뜨겁다. 지난 3월 개원한 드림보트에 233명의 신청자가 몰렸다. 경쟁률은 평균 1.6 대 1. 이미 유치원에 다니는 4~5세 아동이 아니라 새로 등원을 희망하는 만 0세반을 기준으로 하면 3 대 1에 달했다. 비용은 물론 무료다. 회사 측은 추첨에서 떨어졌거나 사정상 다른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이를 둔 직원에겐 3년간 자녀 1인당 연 600만원의 교육비를 지원한다. 지원받는 자녀 수에는 제한이 없다.

드림보트에 다니는 아이는 영아(만 0~2세) 92명, 유아(만 3~5세) 54명 등 146명이다. 연면적은 2222㎡로, 최대 300명을 수용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어린이집을 이용하는 아이는 최대 수용인원의 절반도 안 된다. 회사 관계자는 “어린이집 내 밀집도, 교사 1인당 아동 수를 법적 기준보다 훨씬 낮게 운영한다”며 “아이들 한 명 한 명에게 더 집중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드림보트에서는 교사와 아동 비율이 1 대 2다. 영유아보육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어린이집은 교사 1인당 만 0세는 3명, 만 1세는 5명 이하가 원칙이다. 이 관계자는 “아이를 늘리면 보육교사를 추가 채용해 교사당 아동 수는 현 수준을 유지하려고 한다”고 했다.

“등·하원 눈치 안 봐요”

두 아이의 아버지인 정기선 HD현대 사장은 드림보트가 문을 연 이후에도 어린이집을 종종 찾는다. 아이들이 필요한 게 무엇인지 아빠의 눈으로 꼼꼼히 살펴보기 위해서다. 성현숙 드림보트 원장은 “정 사장의 요청으로 최근 어린이집 내 모서리에 안전 보호대를 추가로 설치했다”며 “어린이집 아이들 또래의 자녀를 두고 있어서인지 외관뿐 아니라 운영 방식까지 세심하게 챙긴다”고 말했다.

HD현대는 드림보트 유아들이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문화 이벤트와 부속 시설을 꾸준히 늘리고 있다. 지난달 어린이날에는 GRC 1층 아산홀에서 부모와 아이들이 함께하는 음악회를 열었다. 다음달에는 드림보트 인근 야외에 660㎡ 규모 생태체험학습원과 야외놀이터를 개장할 예정이다.

원어민 영어교실이 있다는 점도 특징이다. 월평균 120만원가량 들어가는 영어유치원 대신 드림보트에선 무료로 영어를 접할 수 있다. 원어민 교사 두 명이 유아반에 시간별로 들어가 아이들과 영어 노래를 부르거나 생활지도를 하며 자연스럽게 영어를 배우도록 한다.이날 한정호 매니저가 두 아이를 드림보트에서 데리고 간 시각은 오후 7시30분. 보통 직장인이라면 가족이나 지인에게 하원을 부탁했어야 할 시간이다. 성 원장은 “아이가 한 명이라도 남으면 당직 교사가 밤 10시까지 돌본다”고 말했다. 아이들 하원이 늦어져도 부모가 사전에 어린이집에 알릴 필요도 없다. 한 매니저는 “일회성 현금 지원보다 식사, 보육, 교육을 한번에 책임져주는 드림보트 같은 육아 인프라가 훨씬 더 낫다”며 “맞벌이하면서 애들한테 죄책감이 들 때도 있었는데 이젠 그런 마음이 싹 사라졌다”고 했다.

성남=강미선 기자 misunn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