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간 28조원' 혜택 지렛대로 남아공에 대한 압박 가중

민주·공화 의원 4명, 아프리카성장기회법 포럼 남아공 개최 변경 요구
"라마포사 대통령, 예정대로 아프리카 사절단 이끌고 러·우크라 방문"
"성장기회법 대상국 제외되면 남아공 경제 심각한 영향" 우려 대두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에도 러시아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 대한 미국의 압박이 가중되고 있다. 남아공은 시릴 라마포사 대통령이 주도하는 아프리카 평화사절단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방문을 예정대로 추진 중이라고 밝히는 등 짐짓 의연한 모습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최악의 전력난으로 가뜩이나 어려운 남아공 경제가 더욱 악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현지 일간지 더시티즌은 14일(현지시간) 미국 민주당과 공화당의 중진 의원 4명이 최근 조 바이든 행정부에 오는 11월 남아공에서 열릴 예정인 미국의 아프리카성장기회법(AGOA) 포럼 개최지를 다른 나라로 옮길 것을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이들은 지난 9일 자로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과 캐서린 타이 무역대표부(USTR) 대표,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게 보낸 편지에서 "AGOA 포럼을 예정대로 개최하면 미국 제재법 위반 가능성이 있는 남아공의 러시아 지원을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꼴이 될 수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의원들은 남아공이 공식적으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불법 침공에 대해 중립적인 입장이라면서도 러시아와 군사적 관계를 더욱 심화해 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주남아공 미국 대사가 제기한 작년 12월 남아공의 러시아 무기 공급 의혹, 지난 2월 러시아·중국과 실시한 3국 해군 연합훈련, 지난 4월 미국의 제재 대상인 러시아 군 수송기의 남아공 공군기지 착륙 등을 예로 들었다. 이어 "무엇보다 남아공은 오는 8월 주최하는 브릭스 정상회의에 국제형사재판소(ICC)가 체포영장을 발부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참석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규정상 미국의 안보나 외교 정책상 이익을 침해하는 행위에 연관될 경우 AGOA 대상국이 될 수 없다"며 "내년에 제외될 수도 있는 나라에서 올해 AGOA 포럼을 열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남아공은 미국의 AGOA를 통해 작년에만 4천억 랜드(약 28조원) 상당의 혜택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저드 데버몬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아프리카 담당 선임국장도 "남아공의 러시아와 잠재적 안보 동반자관계에 대한 의회의 우려를 공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데버몬트 선임국장은 전날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 "우리는 다른 국가들에 러시아의 전쟁을 지원하지 말라고 강력하게 권고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이어 "우리는 매년 관련 법에 따라 AGOA의 대상국 자격을 재검증하는 과정을 밟고 있다"면서 "규정은 매우 분명하며 남아공을 위해 바뀌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클레이슨 몬옐라 남아공 국제관계협력부(외무부) 대변인은 "미국 의원들의 편지에 주목하고 있다"면서도 "아직 국무부나 백악관이 AGOA 포럼 장소를 남아공에서 이전하기로 한 결정은 없다"고 밝혔다.

몬옐라 대변인은 전날 자신의 트위터에서 "시릴 라마포사 대통령의 특사가 최근 미국을 방문해 러시아-우크라이나 분쟁에 대한 남아공의 비동맹 입장에 대해 적극적으로 설명했다"며 이같이 전했다.

그러면서 "라마포사 대통령이 아프리카 평화사절단을 이끌고 수일 안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를 방문할 것"이라며 "남아공과 미국의 관계는 상호 호혜적"이라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남아공이 AGOA 대상국에서 제외될 수 있다는 미국 의원들의 위협은 초당적이라는 점에서 우려된다고 신문은 전했다.

현지 비정부기구(NGO) 세계대화연구소의 샤누미 나이두 선임연구원은 "AGOA가 제공하는 대미 수출 관세 인하의 실질적인 혜택을 잃는다면 자동차 산업에서 농산물 수출까지 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라마포사 대통령이 주도하는 아프리카 평화사절단은 애초 발표됐던 남아공, 잠비아, 세네갈, 콩고공화국, 우간다, 이집트 외에 아프리카연합(AU) 의장국 코모로까지 포함해 7개국 대통령으로 구성된다.

러시아 타스 통신은 런던에 본부를 둔 아프리카 관련 NGO 브라자빌 재단을 인용해 이들이 오는 16일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을, 17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각각 만난다고 전했다. 그러나 빈센트 마궤니아 남아공 대통령실 대변인은 경호상의 이유로 일정을 공식 확인해줄 수 없다며 평화사절단이 우크라이나를 떠난 후에 공식 발표가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고 통신은 덧붙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