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압수조서 대신 피의자신문조서에 압수취지 적어도 유효"

불법촬영범 '압수절차 위법' 2심 일부 무죄…대법 "다시 재판"
사법경찰관이 증거물 등을 압수하면서 피의자신문조서 등에 그 경위와 취지를 적었다면 압수 조서가 없더라도 유죄의 증거로 쓰는 데 문제가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14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성폭력범죄처벌법 위반(카메라 등 이용 촬영) 혐의로 기소된 이모(30) 씨에게 일부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의정부지법에 돌려보냈다.

이씨는 2018년 9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여성들의 신체를 8차례 불법으로 촬영한 혐의로 기소됐다.

피해자는 고소인 A씨를 포함한 3명이었다. 1심은 모든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징역 6개월을 선고하고 40시간의 성폭력치료프로그램 이수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2심은 형량을 똑같이 유지하면서도 A씨에 대한 범죄만 유죄로 인정하고 나머지는 무죄로 판단을 뒤집었다.

관련 증거가 위법하게 수집됐다는 이유였다. 이씨는 2019년 1월 서울 서대문경찰서에서 수사받으면서 경찰의 요청을 받고 휴대전화 사진첩을 보여줬다.

그 안에는 A씨 외에 다른 피해자들이 찍힌 영상이 있었다.

이씨는 휴대전화 임의제출은 거부하고 사진·영상 파일만 경찰에 제출했다. 이후 이씨는 경찰·검찰 조사에서 범행을 전부 자백했다.

2심 재판부는 이 과정에서 사법경찰관이 압수조서를 작성하지 않아 부적법하다고 판단했다.

형사소송법 등에 따라 사법경찰관은 임의제출된 증거물을 압수한 경우 압수 경위 등을 구체적으로 기재한 압수조서를 작성해야 한다.

다만 경찰청 범죄수사규칙은 피의자신문조서, 진술조서 등에 압수 취지를 기재하면 압수조서를 대신할 수 있다고 정한다.

2심 재판부는 아울러 압수목록 미교부, 범죄 관련성 초과 압수, 제출의 임의성(자발성) 증명 부족도 문제 삼았다.

대법원은 그러나 "원심 판단에는 압수 절차의 적법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며 다시 재판하라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사법경찰관에게 압수조서를 작성하도록 하는 것은 사후적으로 압수절차의 적법성을 심사·통제하기 위한 것"이라며 "피의자신문조서 등에 압수 취지를 기재해 갈음할 수 있도록 하더라도 압수절차의 적법성 심사 기능 등에 차이가 없다"고 판단했다.

이밖에 경찰이 촬영물을 제시하고 이씨가 촬영 일시 등을 구체적으로 진술한 점을 볼 때 "실질적으로 피고인에게 전자정보 압수목록이 교부된 것과 다름이 없다"며 "피고인의 절차상 권리가 실질적으로 침해됐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압수는 적법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불법 촬영 범죄의 특성상 다른 피해자에 대한 촬영물은 수사 대상 범행의 동기나 경위 등을 증명하기 위한 간접증거로 쓰일 수 있는 관련 전자정보로서 압수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이밖에 "원심은 동영상 제출의 임의성 여부를 보다 면밀히 살펴보아야 했는데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씨가 휴대전화 대신 동영상을 제출했으며 검사에게 '동영상 복제에 동의했다'고 진술한 등의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임의성이 없다'고 판단한 것은 잘못이라는 취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