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뒤뜰서 쓰러진 80대 아버지…100명에 새 삶 주고 떠났다

100여 명 환자에 인체조직 기증
"삶의 끝서 어려운 사람에 베풀고파"
100여 명에게 인체조직을 기증하고 하늘의 별이 된 고(故) 박수남 씨(80)의 생전 모습. /사진=한국장기조직기증원 제공
삶이 끝나는 날 어려운 사람에게 베풀고 떠나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던 80대 아버지가 100여 명에게 새 삶을 선물하고 하늘의 별이 됐다.

14일 한국장기조직기증원에 따르면 지난달 27일 충북대학교병원에서 박수남 씨(80)가 인체조직기증으로 100여 명의 환자에게 인체조직을 기증하고 세상을 떠났다.인체조직기증이란 뼈, 연골, 근막, 피부, 양막, 인대 및 건, 심장판막, 혈관, 신경, 심장막 같은 인체조직을 대가 없이 제공하는 것을 뜻한다. 1명의 기증으로 최대 100여명에게 삶의 희망을 나눠줄 수 있다.

앞서 박 씨는 지난달 25일 집 뒤뜰에 쓰러진 채로 발견됐다. 당시 박 씨는 즉시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받았으나 끝내 깨어나지 못했다.

고인은 생전에 2018년 '장기기증 희망'을 등록하는 등 장기 기증에 대한 뜻을 밝힌 바 있다. 평소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것을 좋아하던 고인의 뜻에 따라, 어린 손자들에게 존경스러운 분으로 기억되길 바라며 기증을 결심했다는 게 유족들의 설명이다.충북 음성에서 삼 남매 중 둘째로 태어난 박 씨는 자상하고 배려심이 깊은 사람이었다고 한다. 젊은 시절 가족을 위해 타국에서 일하면서도 "자녀들이 자라는 모습을 보지 못한 것이 마음의 짐"이라며 가족에게 따뜻한 아버지였다.

박 씨의 아들 박종화 씨는 "어릴 적 저희에게 손해 보더라도 참으라고 하시고, 본인도 남들에게 쓴소리 한 번을 안 하는 모습이 밉기도 했다"면서도 "이제 와 생각해 보니 자식들이 혹여나 다칠까 걱정스러운 마음이었다는 것을 알고 나니 더 죄송스럽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세상에 천사가 있다면 아버지가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착하기만 했던 아버지"라며 "하늘나라에서는 마음 편히 잘 지내시라"고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차지연 한국장기조직기증원 코디네이터도 "삶의 끝에서 다른 이들을 위해 소중한 생명 나눔의 가치를 실천해 주신 기증자와 기증자 유가족께 감사드린다"며 "숭고한 생명 나눔의 결정이 아름답게 잘 기억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전했다.

김세린 한경닷컴 기자 celin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