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가득했던 집이 살인 현장으로…가족의 미래 무너져"

"왜 지지 안 했어" 이장선거 낙선 앙심에 지인 살해 50대 재판
피해자 딸 "심신장애로 감형받으려는 모습에 피를 토하는 심정"
"추억 가득했던 집이 잔혹한 범행 현장이 됐습니다. 피고인은 무고한 생명을 잔혹하게 앗아가고, 꿈도 앗아갔습니다.

가족의 미래가 모두 무너져 내렸습니다…"
수년 전 이장선거에서 자신을 지지해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악감정을 품은 지인에게 잔혹하게 살해당한 피해자의 유가족이 14일 법정에서 가해자에 대한 엄벌을 호소했다.

이날 서울고법 춘천재판부 형사1부(김형진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A(51)씨의 살인 등 혐의 사건 결심 공판에서 진술 기회를 얻은 피해자의 딸은 사건 이후 겪은 고통을 털어놨다. 피해자의 딸은 "아버지의 부재를 실감하며 고통과 그리움의 시간을 보내고 있고, 재판일이 다가오면 악몽을 꾸고 불안에 시달린다"고 운을 뗐다.

이어 "범행 현장을 목격한 엄마가 '조금 더 집에 일찍 왔더라면' 하는 죄책감에 괴로워한다"며 "추억 가득했던 집이 잔혹한 범행 현장이 됐고, 이사를 선택하지 않고 그 집에 남기로 한 엄마가 어떤 심정으로 버티는지 짐작도 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그는 "감형받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피고인의 모습에 피를 토하는 심정"이라며 "피고인은 심신장애를 주장하지만, 법조인이 아닌 제가 봐도 타당하지 않으며, 절대 피고인을 용서할 수 없다"고 엄벌을 호소했다. 검찰은 A씨에게 1심에서와 마찬가지로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A씨의 심신장애 주장과 관련해 술에 취한 상태는 인정되지만, 스스로 차를 운전해 피해자에게 간 점과 피해자와 말다툼하다가 범행한 점, 범행 직후 스스로 경찰에 신고한 정황 등을 보면 타당하지 않다고 반박했다.
반면 변호인은 "검찰은 피해자가 이장선거를 도와주지 않아 악감정을 품고 범행했다고 하나 이는 논리적 비약"이라며 "피고인에게는 살해 동기가 없다"고 주장했다. 또 피고인이 2020년 송사로 인해 힘든 시기를 겪었고, 같은 해 겨울 폐결핵 진단을 받고 사건 발생 전월까지 치료에 전념한 점을 들어 육체적·정신적으로 힘든 상황에서 과음해 만취로 인한 심신미약 상태에서 범행했다고 변호했다.

A씨는 최후진술에서 "허망하게 돌아가신 피해자께 정말 죄송하고 용서를 구한다"며 "절대 증오나 원한은 없었다"고 선처를 구했다.

A씨는 지난해 8월 21일 밤 삼척시에 있는 B(62)씨 집에서 B씨와 말다툼과 몸싸움을 벌이다 흉기로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조사 결과 A씨는 2018년 가을께 이장선거에 출마하면서 당시 선거관리위원장을 맡았던 B씨에게 자신을 지지해달라고 부탁했으나 거절당한 뒤 결국 낙선하자 악감정을 품었다.

A씨는 범행 당일 지인들과 술을 마시던 중 갑자기 4년 전 일을 떠올리고는 B씨에게 전화를 걸어 "왜 지지해주지 않았느냐"고 따지다 B씨 집에 찾아가 범행을 저질렀다.

온몸에 치명상을 입은 B씨는 과다출혈로 인한 심정지 등으로 목숨을 잃었다.

1심을 맡은 춘천지법 강릉지원은 "피해자를 살해한 방법이 매우 잔인해 그 죄질이 극히 나쁘다"며 징역 25년을 선고했다. 항소심 선고 공판은 오는 21일 열린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