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테이트모던을 아시나요, 문화비축기지 [MZ 공간 트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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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고 오래된 건축물에 ‘리노베이션(renovation)’이라는 작은 숨결을 불어넣는 것만으로도 놀라운 변화가 생기곤 한다. 영국 런던에 있는 테이트모던이 대표적인 예다. 연평균 방문객 수만 600만 명이 넘는 이 미술관은 과거 템스강변에 무력하게 방치된 뱅크사이드 화력 발전소에 불과했다. 굴뚝 등 외형은 그대로 보존하면서 내부는 전시 공간으로 개조해 도시 재생의 성공적 사례로 불린다. “오르세에서 가장 처음 만나게 되는 작품은 오르세 그 자체다.” 프랑스 파리의 3대 보물 중 하나인 오르세박물관 역시 기차역을 개조해 만들었다.
2017년 서울 마포구 매봉산 인근에도 유사한 건물이 들어섰다. 문화비축기지는 폐산업 시설인 마포석유비축기지를 복합 문화 공간으로 재생한 시설이다. 세월이 녹아든 석유 비축 탱크 외관만이 이곳의 과거를 짐작하게 할 뿐 녹음이 우거진 평화로운 부지는 여느 공원과 다를 바 없다. 무엇이 이 공간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일까.◆비밀의 공간, 5개의 탱크마포석유비축기지를 이루고 있던 석유 저장 탱크는 총 5개. 1973년 석유 파동이 일자 유사시에 대비해 서울시민이 한 달 정도 사용할 수 있는 양의 기름을 보관하기 시작했다. 1급 보안 시설로 분류된 비축기지는 매봉산 자락에 은밀하고 비밀스럽게 숨겨졌다. 아파트 5층 높이, 둘레 15~38m에 달하는 거대한 탱크들이 일반인에게 존재감을 나타낸 것은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서다. 약 30년간 숨바꼭질하며 버텨 온 탱크들로선 썩 유쾌한 결말은 아니었다. 기지 전체가 서울월드컵경기장 500m 이내의 위험 시설로 분류되며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다시 10년, 일반인의 접근과 이용이 철저히 통제된 채 기지는 유휴지로 방치됐다. 이후 진행된 도시 재생 사업을 통해 2013년 문화비축기지라는 새 이름을 얻었고 산업화 시대의 유산에서 문화 공원으로 탈바꿈해 시민 품에 안기게 됐다.◆석유가 아닌 문화를 채우다석유와 건설을 대표하던 산업 중심의 공간은 이제 친환경·재생·문화를 노래하는 복합 문화 시설이 됐다. 문화비축기지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녹음이 우거진 T0 문화마당을 만나게 된다. 탁 트인 잔디밭에서 도심 속 소풍을 즐기고 공연·축제·시장 등 다채로운 문화 행사도 만날 수 있어 1년 365일 시민의 발길이 이어지는 곳이다.
기름을 담고 있던 탱크들은 석유가 아닌 문화를 창출하는 문화 탱크로 그 역할이 바뀌었다. T1 파빌리온은 전시·워크숍·공연 등을 진행하는 다목적 공간이다. 휘발유 보관용 탱크를 해체한 뒤 투명한 유리 벽체와 지붕을 얹어 완성했다. 유리 벽과 맞닿은 매봉산 암반의 자태와 지붕을 통해 쏟아지는 푸른 하늘을 파노라마로 오롯이 조망할 수 있어 기지의 대표 포토 스폿으로 꼽힌다. 경유를 보관하던 탱크는 야외 무대와 공연장이 됐다. T2 공연장의 경사로를 따라 걷다 보면 자연스레 탱크의 상부에 닿게 된다. 탱크를 해체하며 외형을 따로 구축하지 않아 콘크리트 옹벽이 자연스러운 소리의 울림을 이루고 하늘·바람·산 등 자연이 공연의 일부가 된다.석유 비축 당시의 공간을 온전히 보존한 T3 탱크 원형은 그 가치를 인정받아 서울미래유산에 지정됐고 내부를 그대로 살린 등유 보관 탱크는 거대한 철제 외벽과 붉은 파이프가 매력적인 T4 복합 문화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문화비축기지의 비밀스러운 역사가 궁금하다면 T5 이야기관으로 발길을 돌려보자. 전시실로 구성된 이곳에는 마포석유비축기지가 문화비축기지가 되기까지의 이야기가 담겼다. 둥그런 전시실을 한 바퀴 크게 돌며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역사를 찬찬히 되짚어 보기 좋다.
무엇 하나 허투루 사용하지 않았다는 게 이 공간의 매력이다. T6 커뮤니티센터는 T1과 T2를 해체하며 나온 철판을 활용해 만든 건축물이다. 마치 패치워크를 연상하게 하는, 각기 다른 색의 철판을 오밀조밀 이어 붙인 외관이 매력적이다. ‘인스타 핫플’로 유명한 카페(cafe) TANK6를 비롯해 강의실·회의실·창의랩 등 커뮤니티 활동을 위한 공간과 하늘을 둥그렇게 올려다볼 수 있는 옥상마루, 시민들이 휴식을 위한 생태도서관이 들어섰다.
문화 ‘비축’ 기지라는 이름에 걸맞게 2023년에도 다양한 문화 활동이 진행된다. 공간에 담긴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해설사와 함께하는 시민 투어’, 나무숲 놀이공예·우드카빙·자연미술 등 ‘생태·생활문화 프로그램’, 시각장애인을 위한 ‘손으로 보는 건축 투어’ 등 다채로운 문화가 차곡차곡 채워질 예정이다.
박소윤 한경비즈니스 기자 soso@hankyung.com
2017년 서울 마포구 매봉산 인근에도 유사한 건물이 들어섰다. 문화비축기지는 폐산업 시설인 마포석유비축기지를 복합 문화 공간으로 재생한 시설이다. 세월이 녹아든 석유 비축 탱크 외관만이 이곳의 과거를 짐작하게 할 뿐 녹음이 우거진 평화로운 부지는 여느 공원과 다를 바 없다. 무엇이 이 공간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일까.◆비밀의 공간, 5개의 탱크마포석유비축기지를 이루고 있던 석유 저장 탱크는 총 5개. 1973년 석유 파동이 일자 유사시에 대비해 서울시민이 한 달 정도 사용할 수 있는 양의 기름을 보관하기 시작했다. 1급 보안 시설로 분류된 비축기지는 매봉산 자락에 은밀하고 비밀스럽게 숨겨졌다. 아파트 5층 높이, 둘레 15~38m에 달하는 거대한 탱크들이 일반인에게 존재감을 나타낸 것은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서다. 약 30년간 숨바꼭질하며 버텨 온 탱크들로선 썩 유쾌한 결말은 아니었다. 기지 전체가 서울월드컵경기장 500m 이내의 위험 시설로 분류되며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다시 10년, 일반인의 접근과 이용이 철저히 통제된 채 기지는 유휴지로 방치됐다. 이후 진행된 도시 재생 사업을 통해 2013년 문화비축기지라는 새 이름을 얻었고 산업화 시대의 유산에서 문화 공원으로 탈바꿈해 시민 품에 안기게 됐다.◆석유가 아닌 문화를 채우다석유와 건설을 대표하던 산업 중심의 공간은 이제 친환경·재생·문화를 노래하는 복합 문화 시설이 됐다. 문화비축기지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녹음이 우거진 T0 문화마당을 만나게 된다. 탁 트인 잔디밭에서 도심 속 소풍을 즐기고 공연·축제·시장 등 다채로운 문화 행사도 만날 수 있어 1년 365일 시민의 발길이 이어지는 곳이다.
기름을 담고 있던 탱크들은 석유가 아닌 문화를 창출하는 문화 탱크로 그 역할이 바뀌었다. T1 파빌리온은 전시·워크숍·공연 등을 진행하는 다목적 공간이다. 휘발유 보관용 탱크를 해체한 뒤 투명한 유리 벽체와 지붕을 얹어 완성했다. 유리 벽과 맞닿은 매봉산 암반의 자태와 지붕을 통해 쏟아지는 푸른 하늘을 파노라마로 오롯이 조망할 수 있어 기지의 대표 포토 스폿으로 꼽힌다. 경유를 보관하던 탱크는 야외 무대와 공연장이 됐다. T2 공연장의 경사로를 따라 걷다 보면 자연스레 탱크의 상부에 닿게 된다. 탱크를 해체하며 외형을 따로 구축하지 않아 콘크리트 옹벽이 자연스러운 소리의 울림을 이루고 하늘·바람·산 등 자연이 공연의 일부가 된다.석유 비축 당시의 공간을 온전히 보존한 T3 탱크 원형은 그 가치를 인정받아 서울미래유산에 지정됐고 내부를 그대로 살린 등유 보관 탱크는 거대한 철제 외벽과 붉은 파이프가 매력적인 T4 복합 문화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문화비축기지의 비밀스러운 역사가 궁금하다면 T5 이야기관으로 발길을 돌려보자. 전시실로 구성된 이곳에는 마포석유비축기지가 문화비축기지가 되기까지의 이야기가 담겼다. 둥그런 전시실을 한 바퀴 크게 돌며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역사를 찬찬히 되짚어 보기 좋다.
무엇 하나 허투루 사용하지 않았다는 게 이 공간의 매력이다. T6 커뮤니티센터는 T1과 T2를 해체하며 나온 철판을 활용해 만든 건축물이다. 마치 패치워크를 연상하게 하는, 각기 다른 색의 철판을 오밀조밀 이어 붙인 외관이 매력적이다. ‘인스타 핫플’로 유명한 카페(cafe) TANK6를 비롯해 강의실·회의실·창의랩 등 커뮤니티 활동을 위한 공간과 하늘을 둥그렇게 올려다볼 수 있는 옥상마루, 시민들이 휴식을 위한 생태도서관이 들어섰다.
문화 ‘비축’ 기지라는 이름에 걸맞게 2023년에도 다양한 문화 활동이 진행된다. 공간에 담긴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해설사와 함께하는 시민 투어’, 나무숲 놀이공예·우드카빙·자연미술 등 ‘생태·생활문화 프로그램’, 시각장애인을 위한 ‘손으로 보는 건축 투어’ 등 다채로운 문화가 차곡차곡 채워질 예정이다.
박소윤 한경비즈니스 기자 sos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