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중년' 패션 플랫폼·데이팅앱…"잘 벌고 잘 쓰는 4060 잡아라" [긱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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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장년층 공략하는 스타트업# 중장년층 소비자를 타깃으로 하는 신선 식품 커머스 ‘팔도감’ 운영사 라포테이블은 지난달 35억원 규모 시리즈A 투자를 유치했다. 이 회사는 중년 여성 대상 패션 앱인 ‘퀸잇’을 운영하는 라포랩스의 자회사다. 모회사와 자회사가 나란히 중년 세대를 정조준한 사업 모델을 선보여 주목받았다. 라포테이블에 투자한 박형수 퓨처플레이 심사역은 “중년층 소비자는 만족시키기 어렵지만 일단 신뢰를 얻으면 충성도가 높은 고객층”이라고 평가했다.스타트업 업계가 소비 ‘큰손’으로 떠오른 중장년(45~64세) 세대에 주목하고 있다. 이 세대는 소득이 없어 다른 세대에 의존해야 하는 고령층이나 사회에 진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2030세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구매력이 높고 모바일 기기 사용도 능숙하다는 특성을 띤다. 와이즈앱에 따르면 지난 2월 기준 쿠팡, 11번가, G마켓 등 주요 10개 전자상거래 앱의 사용자 연령 비중은 4050세대가 약 54.7%로 가장 높았다.
소비 여력 크고 모바일 활용 능숙
퀸잇, 중년 여성 패션취향 저격
월 거래액 100억…몸값 4000억
취미 플랫폼·커뮤니티 앱도 인기
오뉴, 200여개 체험 콘텐츠 제공
VC "고령화로 시장 계속 커질 것"
○맞춤형 전략 펴는 패션 플랫폼
중장년 세대 사로잡기에 가장 적극적인 분야는 패션업계다. 저마다 중장년층 취향을 저격하는 제품을 선보이거나 이 세대에 맞는 간편한 사용자환경(UI) 등의 전략을 내세우고 있다.중년 여성을 타깃으로 한 퀸잇은 앱 다운로드 수가 550만 건을 넘었고, 거래액도 매달 100억원 이상 올리며 성장 중이다. 최근 투자 유치 때 인정받은 기업가치는 4000억원에 달한다. 성공 비결은 단연 ‘세대 맞춤형’ 전략에 있다는 분석이다. 우선 4050 여성이 선호하는 브랜드로 제품군을 채웠다. 마리끌레르, 지센, 막스까르띠지오 같은 브랜드가 대표적이다. TV 홈쇼핑을 통한 ‘무료 반품’에 익숙한 세대라는 점을 감안해 무료 반품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도 맞춤형 전략의 일환이다.
‘푸미’나 ‘모라니크’ 같은 플랫폼도 경쟁에 뛰어들었다. 푸미는 커뮤니티 기능을 넣어 차별화를 꾀했고, 모라니크는 제품 추천이나 결제 등의 고객서비스(CS)를 돕는 ‘스타일 매니저’ 시스템을 구축해 경쟁력을 더했다. 4050세대 여성을 공략한 패션 라이브 커머스 플랫폼 퀸라이브는 X세대(1970년대생) 여성들의 구매력과 감성에서 기회를 포착했다. 판매자의 매출·정산 관리나 소비자의 주문관리 기능을 하나의 앱에 모았다. 출시 2년 만에 회원 50만 명을 확보했다.‘남성판 퀸잇’을 표방하는 ‘댄블’ 운영사 테일러타운은 최근 한국투자액셀러레이터의 낙점을 받았다. 비슷하게 45~65세 남성을 타깃으로 하는 패션 앱 ‘애슬러’ 운영사 바인드는 패스트벤처스가 투자했다. 4050 세대 패션 큐레이션 커머스 ‘라빔’을 운영하는 루덴시티는 초기 투자사 매쉬업엔젤스의 러브콜을 받았다.
○취미·여가 플랫폼도 눈길
취미·여가 분야 스타트업도 탄탄한 구매력을 갖춘 중장년층에 주목한다. 취미·여가 플랫폼 ‘오뉴’를 운영하는 로쉬코리아는 최근 더인벤션랩으로부터 투자를 유치했다. 수채화, 공예, 꽃꽂이, 캘리그라피, 농장 체험 등 200여 개의 체험형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다. 현준엽 로쉬코리아 대표는 “은퇴를 앞뒀거나 은퇴 직후인 시점에 여가 콘텐츠를 많이 소비해야 노년기에 접어들어서도 외롭지 않게 지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시니어 전문 커뮤니티 업체인 오뉴 역시 세대별 맞춤형 전략을 짰다. 이 세대의 커뮤니티 특성을 눈여겨봤다. 동창회나 동네 모임보다 느슨하게 연결된 관계가 오히려 생각을 솔직하게 공유하기 편하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오프라인 공간을 마련해 접근성도 높였다. 비슷하게 중년 커뮤니티 플랫폼 ‘오이(오십대들의 이야기)’를 선보인 비바라비다도 다양한 소모임 모집·참여 기능을 기반으로 2만 명 이상의 회원을 확보했다. 오이는 특히 젊은 층의 ‘블라인드’나 ‘에브리타임’처럼 50대만을 위한 익명 기반 소통 공간을 마련해 인기를 끌고 있다. 이 세대가 관심 가질 만한 건강, 뷰티, 유머 콘텐츠를 담아 일종의 소셜미디어 역할을 하고 있다.
○데이팅앱도 등장…VC도 ‘러브콜’
중장년 세대를 겨냥한 데이팅 앱도 등장했다. 50세 이상만 가입할 수 있는 앱 ‘시놀’은 소개팅 방식의 1 대 1 매칭뿐만 아니라 친구들을 만들 수 있는 1 대 N 매칭 기능을 내놨다. 복잡한 인증을 거쳐야 하는 일반적인 소개팅 앱과 달리 앱 내에서 ‘셀카’를 바로 촬영해 가입할 수 있도록 했다. 직관적인 UI와 피싱 방지를 위한 안심번호 서비스 등을 도입했다.임팩트피플스가 내놓은 ‘에이풀’은 5060세대의 ‘라이프스타일’에 관한 리서치 플랫폼이다. 이를테면 ‘중년이 선호하는 브랜드는?’과 같은 시장조사 데이터를 만든다. 회사는 중년 세대가 가진 삶에 대한 트렌드와 인사이트를 파악한 뒤 이를 기반으로 이 세대가 사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일자리를 얻을 수 있는 것을 목표로 하는 소셜벤처다.
벤처캐피털(VC) 등 투자자들이 ‘중장년 플랫폼’에 주목하는 이유도 세대 특성에 있다. 그동안 디지털 전환이 더뎠던 중장년층 대상 서비스가 세대 변화와 함께 온라인으로 빠르게 넘어오고 있다는 평가다. 라포랩스에 투자한 김제욱 에이티넘인베스트먼트 부사장은 “이 세대는 시니어에 가깝지만 스마트폰 이용률이 90%, 모바일 쇼핑 이용률은 70%를 넘을 정도로 e커머스에서 중요한 연령층”이라며 “이들의 쇼핑 경험이 TV 홈쇼핑에서 모바일 쇼핑으로 급격히 옮겨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선영 매쉬업엔젤스 심사역은 “중장년 세대 인구수가 이미 청년 세대를 뛰어넘었고 앞으로도 계속 증가할 것이라는 점에서 시장 자체의 성장 가능성을 높게 평가했다”고 말했다.
김종우 기자 jong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