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잎 한 점 질 때마다 봄날이 줄어들거늘 [고두현의 아침 시편]

곡강이수-1

꽃잎 한 점 질 때마다 봄날이 줄어들거늘
바람에 만 점 잎이 흩날리니 시름겹도다.
막 지려는 꽃이 눈에 스치는 것 잠시 바라보고
몸 상한다 하여 술 마시는 일 마다하지 않으리.
강가 작은 집에 물총새 둥지 틀고
동산 옆 높다란 묘 기린 석상 누워있네.
천천히 물리를 헤아리며 마음껏 즐겨야지
무엇하러 헛된 명예에 이 몸을 얽어매리요.
곡강이수-2

조회 끝나고 돌아와서는 봄옷 저당 잡히고
날마다 강가에서 흠뻑 취해 돌아가네.
외상 술값은 가는 데마다 깔렸느니
인생 칠십이 예로부터 드물다 했지.
나비들은 뚫을 듯이 꽃에 파묻히고
잠자리는 물을 찍으며 천천히 날아가네.
아름다운 풍광도 인생처럼 흘러가는 것
이 좋은 경치를 어찌 아니 즐길 건가.


* 두보(杜甫, 712~770) : 당나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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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룻밤 비바람에 한 봄이 오가는데…

제가 참 좋아하는 시입니다. 사람 관계도 그렇듯이 오는 봄보다 가는 봄이 애잔하지요. 곡강(曲江)은 장안 동남쪽 끝에 있는 연못입니다. 주변 경치가 수려하고 서남쪽에는 부용원이 있지요.

아름다운 곡강은 ‘안녹산의 난’ 이후 피폐해졌고, 주인 없는 집 처마에는 물총새가 둥지를 틀었습니다. 화려하던 부용원 근처의 큰 무덤 역시 돌보는 이 없어 석상이 나뒹굴고 있습니다. 이처럼 무상한 모습을 그리면서 시인은 세상 이치를 잘 헤아려 인생을 즐기는 게 중요하지 부질없는 공명에 몸을 묶어두면 되겠느냐고 묻습니다. 조회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봄옷을 저당 잡히고 외상술을 마시는 것도 난분분 떨어지는 꽃잎처럼 세상이 허망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더구나 인생 칠십을 넘기는 사람이 드무니 어찌 술로 그 슬픔을 달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말이죠. 바로 이 구절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에서 고희(古稀)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나비가 꽃잎을 파고들고, 잠자리가 수면 위로 날아다니는 봄날의 풍경도 우리 인생처럼 금방 흘러가 버리겠지요? 그래서 얼마 남지 않은 봄을 붙잡고자 하는 마음이 더욱 아릿합니다.

이백의 이 시는 조선 중기 문장가 송한필(宋翰弼)의 ‘우음(偶吟)’과 함께 읽으면 인생의 희비를 더욱 깊게 음미할 수 있답니다.어젯밤 비에 피었던 꽃
오늘 아침 바람에 떨어지네.
가련하다 한 봄의 일이
비바람에 오고 가는구나.

(花開昨夜雨, 花落今朝風. 可憐一春事, 往來風雨中.)

송한필은 뛰어난 문재(文才)에도 불구하고 신분적 제약의 아픔을 겪었던 인물입니다. 1589년에는 일족이 노예로 전락했지요. 그러나 율곡 이이는 “성리(性理)에 관해 토론할 만한 사람으로 오직 익필(翼弼 : 송한필의 형) 형제뿐”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이 시에서 그는 자신의 슬픈 운명을 꽃에 비유했지요. 어젯밤 비에 피어나고 아침 바람에 허무하게 지는 꽃. 봄밤의 일장춘몽(一場春夢)이랄까요. 게다가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외부의 비바람에 지고 마는 꽃이라니! 비바람은 연약한 꽃잎을 흐트러뜨리는 권력과 피바람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얼핏 생각하면 하룻밤 비바람에 떨어지는 꽃을 보며 봄이 가는 것을 아쉬워하는 것 같지만 이 짧은 시구 속에 ‘한없이 무겁고 쓸쓸한’ 생의 이면을 함축해서 보여주고 있지요. ‘어젯밤 비에 피었던 꽃’이 ‘오늘 아침 바람에 떨어지’는데 우리는 무엇으로 한 생의 비바람을 견디고, 넘어서고, 또 무너지며 사는 걸까요. 하룻밤 비바람에 한 봄이 이렇게 오고 가는데…….


■ 고두현 시인 :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늦게 온 소포』,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달의 뒷면을 보다』 등 출간. 유심작품상, 김만중문학상, 시와시학 젊은시인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