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다양성이 혁신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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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진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대표오랜만에 만난 한 스타트업 창업자는 대기업 직원이 돼 있었다. 대기업 사내벤처로 출발한 스타트업이었는데 독립해서 성장하다가 다른 대기업의 인수 제의를 받아 회사를 매각하고 일정 기간 그 대기업 소속으로 일하기로 한 것이다. 스타트업과 대기업의 문화는 많이 다르기 때문에 힘들지 않냐는 물음에 “소속 조직에 스타트업 출신 구성원이 많아 생각보다 괜찮다”는 답이 돌아왔다. 어찌 보면 대기업을 나와 다른 대기업으로 간 모양새지만, 원소속 기업에서도 사내벤처의 회수 사례가 나왔다고 좋아한다고 했다.
빅테크와 글로벌 기업은 물론이고 국내 대기업들도 소위 오픈이노베이션에 진심이 된 지 오래다. 스타트업을 지원하고 협력하는 것은 물론이고, 사내벤처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회사 밖으로 나가는 인재들도 지원하고 투자한다. 기업형 벤처캐피털(CVC)을 만들어 본격적으로 투자하고, 인수합병(M&A)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스타트업 생태계가 활성화된다는 측면에서도 바람직하지만, 본질은 대기업 스스로의 생존과 혁신을 위한 움직임이라고 볼 수 있다. 대기업은 커다란 조직을 효율과 성과를 중심으로 운영하기 때문에 내부에서 혁신을 이뤄내기가 무척 어렵다. 스타트업은 빠르고 유연한 것이 특징이고, 다양한 인재가 기존과 다른 기술 및 서비스로 승부해야 한다. 이 때문에 실패도 많지만 그만큼 혁신도 많이 일어난다. 인재와 자본을 모두 갖춘 대기업도 이 같은 혁신을 위해서는 외부의 다양성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지역 스타트업 생태계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해당 지역 입장에서는 지역경제 활성화 또는 청년인구 감소 등에 대응하기 위해 스타트업을 육성하려 하겠지만, 생태계 측면에서는 해당 지역에서 창업한 뒤 새로운 관점과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는 스타트업이 많을수록 더 많은 혁신이 일어난다. 지역경제가 활성화돼야 하는 중요한 이유인 셈이다. 수도권 쏠림현상이 심각한 것이 스타트업 생태계의 현실이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지역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다양성은 혁신의 토양이고, 획일성은 혁신의 적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10%대에 머무르고 있는 여성 창업가가 더 많아져야 하는 이유,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스타트업과 기후위기 같은 인류 전체의 문제부터 지역의 조그만 문제까지 더 다양한 영역에서 문제 해결에 나서는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지원해야 하는 이유가 다 여기에 있다. 각각의 정의와 당위로 설명할 수도 있겠지만, 다양성이 혁신을 만들고 생태계를 성장시킨다는 단 하나의 이유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