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계 "불법 점거해도 손배 청구 불가능…법원이 파업 판 깔아줘"

대법원, 손배소 파기환송

노조활동·쟁의가담 수준 등
개인별로 입증하기 쉽지 않아

경영계 "산업현장 불법 확산
사실상 파업조장법 통과"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조가 2010년 11월 15일 현대차 울산공장 앞에서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시위하는 모습. 대법원은 15일 이와 관련해 현대차가 제기한 소송에서 손해배상 책임을 물을 때 파업 참가자 개인별로 책임을 산정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연합뉴스
불법 파업에 가담한 노동조합원에게 기업이 손해배상 책임을 물을 때 개인별로 가담 정도와 지위를 따져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오면서 산업계가 ‘패닉’에 빠졌다. 경제단체들은 “불법 쟁의행위 참가자의 손해배상 책임을 개별 산정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손해배상 청구를 원천적으로 제한한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반발했다. 이번 판결이 불법 파업에 판을 깔아주는 꼴이란 지적도 나온다.

○“조합원 책임 개별 입증해야”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조 조합원들은 2010년 11월 15일부터 12월 9일까지 현대차 울산공장 생산라인을 일부 점거했다. 현대차는 이로 인해 공정이 278시간 중단돼 손해를 봤다며 20억원의 손해배상금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1·2심 모두 노조의 불법 쟁의행위에 참여한 조합원들에게도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고 판단해 20억원의 배상금을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다만 2심은 조합원 책임을 50%로 제한했다. 배상금 규모는 135억7000만원으로 산정했지만, 법원 배상금이 원고(현대차)의 청구액을 넘을 수 없어 총 20억원의 배상금만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15일 1·2심 판결을 뒤집었다. 대법원 판결에서 쟁점은 불법 쟁의행위에 가담한 근로자의 손해배상 책임을 어느 정도로 보느냐였다. 대법원은 먼저 일반 조합원에게 노조와 같은 수준의 책임을 물어서는 안 된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노조가 파업의 원칙적인 책임 귀속 주체”라며 “위법한 쟁의를 주도한 노조와 개별 조합원의 손해배상책임 범위를 동일하게 보는 것은 헌법상 근로자에게 보장된 단결권과 단체행동권을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여기에 더해 “개별 조합원에 대한 책임 제한의 정도는 노조 내 지위·역할, 쟁의행위 참여 경위 및 정도, 손해 발생에 대한 기여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이는 공동으로 불법행위를 저지른 경우 개별 책임 비율을 묻지 않는 현행법상 ‘공동불법행위의 원칙’(부진정 연대 책임)에 반하는 내용이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노동쟁의 사안의 특수성을 고려해서 예외적으로 조합원 개별로 책임 제한의 정도를 평가할 수 있다는 점을 최초로 명시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과거에도 일부 판결에서) 예외적으로 공동 불법행위자들 사이의 책임 비율을 달리할 수 있다고 판단한 바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는 무리한 해석이란 지적도 나온다. 김동욱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공동 불법행위자들의 책임을 개별적으로 판단한 사례는 대법원 설명대로 예외적인데, 이번 판결에 따라 앞으로 노동쟁의 분야에서는 조합원의 책임을 개별 입증하는 게 예외가 아니라 원칙이 돼 버렸다”고 말했다.

○노조법 개정안 3조 통과된 셈

이날 대법원 판단이 주목받는 이유는 사실상 ‘파업조장법’으로 비판받는 야당의 노조법 개정안 일부가 국회 통과 전에 대법원 판례를 통해 확립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야당이 발의한 노조법 개정안 3조는 ‘배상 의무자(파업 참가 근로자)별로 귀책 사유와 기여도에 따라 책임 범위를 책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불법 쟁의행위에 참가한 근로자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취지다. 노조법 개정안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를 통과해 본회의 회부를 앞둔 상태다.

하지만 이번 판결에 따르면 노조법 개정 없이도 기업은 불법파업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물을 때 조합원 개인별로 책임을 따져야 한다. 정상태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기업들이 불법파업의 손해배상 금액을 입증하기가 훨씬 더 어려워졌다”고 지적했다.

현대차는 “대법원 판결에 대해 아쉽게 생각하며, 산업계에 미칠 파장도 우려된다”고 밝혔다. 추광호 전국경제인연합회 경제산업본부장은 “산업 현장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기업의 국내 투자를 위축시키는 등 국가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곽용희/민경진/김일규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