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약하려면 2년 기다려라"…동네 이자카야 갔다가 화들짝 [정영효의 인사이드 재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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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성비 넘어 시(時)성비의 시대가 온다(1)
알음알음 소문난 동네 이자카야…예약에 2년
시간 대비 성능 따지는 젊은 세대
유행가 도입부 10년새 1/3로 줄어
'타임퍼포먼스' 줄인 '타이파' 日의 트렌드로
"저녁예약을 문의드리고 싶은데요."2년치 예약이 차 있는 동네 이자카야. 도쿄 주오구의 가와지(川治)는 여행 가이드북이나 맛집 사이트에 요란스럽게 소개된 가게가 아니다. 미식가들 사이에서만 알음알음 알려져 있는 해산물 전문 이자카야다.일본에는 이런 숨은 맛집들이 많다. 도쿄 시나가와구의 토다카 식당(食堂とだか)이라는 이자카야도 2년을 기다려야 맛 볼 수 있는 곳이다. 10명이 들어가면 꽉 차는 작은 이자카야다. 1인당 1만엔(약 9만원)이면 오마카세로 연달아 나오는 안주에 술은 취할 때까지 마실 수 있다.이런 이자카야의 특징은 신선한 고급 식재료를 합리적인 가격에 아끼지 않고 듬뿍 내놓는다는 점이다. 굳이 2년씩이나 기다려야 하나 싶지만 이 정도라면 2년을 못 기다릴 것도 없겠다 싶은 가게였다.
"저녁예약 말씀인가요. 죄송합니다. 저녁은 비는 날이 전혀 없는 상황입니다.""언제부터 예약이 가능한가요?"
"현재는 예약을 받고 있지 않습니다만 비어있는 건 내후년 6월부터입니다."
토다카 식당을 방문한 때는 2022년 7월19일이었다. 다음 예약을 하려니 2024년 11월19일, 정확히 2년 4개월 뒤에 예약이 됐다. 도쿄특파원의 임기가 끝난 뒤지만 일단 예약부터 하고 봤다.예약에만 몇 개월씩 걸리는 이자카야들은 '이런 곳에 가게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외진 곳에 자리잡은 곳도 적지 않다.
도쿄에는 미슐렝의 본고장 파리보다 미슐렝 레스토랑이 더 많다. 자신의 솜씨 하나만 믿고 상권 불문 과감하게 가게를 내는 요리인과 맛을 위해서라면 도쿄 끝에서 끝까지 찾아가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 술꾼들이 있기 때문에 생겨난 현상일 것이다.
물론 모든 일본인들이 맛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2년을 기다려주는 미식가일 리는 없다. 한국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젊은 세대들은 1초도 기다려 주지 않는다. 젊은 세대들이 즐겨 듣는 J-팝만 보더라도 도입부(인트로) 길이가 10년새 3분의 1로 줄었다. 1980~1990년대와 2011년 20대 히트곡의 도입부는 평균 17초로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2021년 20대 히트곡의 도입부는 평균 6.3초로 10년 만에 10.7초 줄었다.26년째 오리콘차트 여성 싱글 앨범 판매량 1위를 지키는 아무로 나미에의 '캔 유 셀리브레이트(can you celebrate)'의 도입부는 29초였다. 반면 요아소비의 '밤을 달리다(夜に駆ける)'와 애니메이션 원피스의 수록곡 '신시대' 등 최근 인기곡의 도입부는 0초, 전주 없이 그냥 다짜고짜 시작한다.
테잎이 늘어질 때까지 듣고 또 듣는 시대가 저물고 정기구독형으로 음악을 무제한 골라 듣는 시대가 되면서 생긴 변화다. 첫 소절이 나올 때까지 시간이 걸리는 곡은 가차없이 스킵을 당하니 도입부도 과감하게 생략하는 것이다.
전주만 짧아진게 아니라 노래 길이 자체가 2~3분으로 줄어든 것도 최근 10년 사이의 변화다. 곡의 길이가 짧을 수록 재생회수를 늘릴 수 있기 때문이다.바쁜 현대인들에게 시간은 너무 소중하다. 세이코홀딩스의 ‘세이코시간백서 2022년’에 따르면 일본인들이 '자신 만의 1시간'에 매기는 가치는 1만3639엔으로 매년 늘어나고 있다.
최근 일본에서 가성비, 즉 가격 대비 성능을 넘어 시간 대비 성능을 뜻하는 시(時)성비가 대세로 자리잡고 있는 이유다.시간 대비 성능을 따지는 건 세계적인 현상이다. 일본에서는 '타임 퍼포먼스'의 줄임말인 '타이파'라는 이름까지 붙여가면서 현상으로 몰고 가고 있다. 타이파는 일본인의 라이프 스타일에서부터 기업의 경영전략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