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가수, 중국에서 일 못해"…BTS 슈가 '소신 발언' [김소연의 엔터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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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가수 중에 중국에서 공연하는 사람 있나요? 중국에서 공연할 수 없어요. K팝 그룹 안에 한국 친구도 있고 중국 친구도 있고, 다른 나라 친구도 있는데, 다른 나라 국적 친구들은 중국에서 가서 일을 할 수 있는데, 정작 그 팀은 할 수 없어요. 한국 가수가 가서 일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요."
그룹 방탄소년단 슈가가 지난 11일 태국 방콕에서 진행된 솔로 투어 '슈가ㅣ어거스트 디 투어(SUGA | Agust D TOUR)'를 마친 후 팬 플랫폼 위버스에서 진행한 라이브 방송에서 한 말이다. 슈가는 솔로 앨범을 발표하고 글로벌 투어를 진행 중인데, 중국 팬들이 라이브 방송에서 "중국에서도 공연해달라"고 요청하자 "중국에서는 일할 수 없다"고 밝힌 것.
중국 내에서는 한국 가수들의 콘서트는 물론 드라마, 예능 등 방송 출연까지 엄격하게 제한되고 있다. 중국 정부가 2016년 우리나라의 사드(THAAD, 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재배치를 문제 삼으며 '한한령(限韓令)'이라는 이유로 한국 콘텐츠를 배척하고 있기 때문.하지만 한국 콘텐츠에 대한 인기는 여전해 한국 인기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들을 불법 스트리밍 서비스로 시청하는 등의 부작용이 불거졌다는 평을 받는다. K팝 역시 여전한 인기로 한국 아이돌 그룹의 멤버 중 한국 국적이 아닐 경우 중국의 예능 프로그램에 자유롭게 출연하고 있다. 하지만 멤버 전원이 한국인인 방탄소년단의 경우 중국 활동이 전무할 수밖에 없었다.
한한령에도 여전한 K팝 사랑
한한령에도 중국은 여전히 K팝 음반 주요 수출국으로 꼽힌다. 중국 팬덤의 경우 대체로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멤버의 팬클럽을 통해 공동구매 방식으로 음반을 구매한다. 아이돌 업계에서는 초동 판매량을 인기에 척도로 판단하는데, 공동구매를 할 경우 개인 구매 대비 초동 산입 여부가 확실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멤버의 그룹 내 입지를 증명하는 데에도 용이하다는 점에서 선호된다. 최근 급격한 초동 판매량 성장을 기록한 신보들이 많은데, 대부분 중국 공동구매의 기여가 큰 것으로 파악된다.지난 5월 관세청 수출입 무역통계에 따르면 올해 1∼4월 대(對)중국 K팝 음반 수출액은 1898만1000달러(약 252억원)로 전년 동기 641만8000달러(약 85억원)보다 195.7%나 증가했다. 1년 사이에 약 3배로 껑충 뛴 수치다. 특히 지난 4월 수출액은 525만8000달러(약 70억원)에 달해 전년 동기 265만3000달러(약 35억원)보다 98.2%나 늘었다.그렇지만 방탄소년단을 비롯해 블랙핑크, 스트레이키즈 등 아레나 급 이상의 월드투어를 진행하는 K팝 그룹의 경우 중국 공동구매 비중은 글로벌 팬덤의 유입으로 낮아지고 있다는 평가다.
블랙핑크의 경우 과거 중국 공동구매 비중이 75%에 달했는데, 글로벌 팬덤 유입이 활발해지면서 중국 공동구매 비중은 50% 이하로 낮아졌다. 지난 13일 빌보드 메인 차트 '빌보드 200' 1위에 오르며 올해 발매한 앨범 3개를 모두 빌보드 정상에 올린 스트레이 키즈 역시 중국 공동구매 비중이 40%에서 20%대까지 낮아졌다.
불확실한 중국보다 더 큰 시장으로
한한령 이전에도 중국 시장은 "큰 자본이 있지만, 불확실성이 큰 곳"으로 평가받았다. 중국 당국의 한마디에 하루아침에 진행 중이던 프로젝트가 중단될 수 있기 때문. 이는 '한한령' 시행될 때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SBS '사임당:빛의 일기', KBS 2TV '화랑' 등의 작품이 중국 내 불법 복제를 고려해 사전제작으로 동시 방영을 준비했지만, 갑작스러운 한한령으로 불발됐다. 특히 '화랑'의 경우 초반 공개된 콘텐츠까지 정식 계약을 맺은 플랫폼에서 사라졌다.
중국의 불확실성을 보여주는 사례는 최근에도 있었다. 지난달 밴드 씨엔블루 리더 정용화는 녹화까지 마친 중국 예능 프로그램에서 돌연 하차당해 의구심을 자아냈다. 정용화는 중국 동영상 플랫폼 '아이치이' 새 오디션 프로그램 '분투하라 신입생 1반' 출연을 위해 중국 베이징으로 출국했고, 이를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공개하며 오랜만에 중국 방송 출연에 반가움을 전했다. 당시 중국 텅쉰망 등 현지 매체는 정용화의 출연 불발을 두고 몇몇 자국 네티즌들이 방송과 인터넷 관리 감독을 총괄하는 국가광파전시총국(광전총국)에 민원을 넣었기 때문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지난해 윤석열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정상회담 후속 조치로 중국이 자국에서 한국 영화 상영을 게재하기로 하면서 '한한령이 해제됐다'는 반응이 나오기도 했지만, G7 정상회담 이후 국내 포털 네이버가 중국 내에서 차단되고, 정용화까지 출연이 불발되면서 껄끄러워진 한중관계가 반영된 게 아니냐는 분석이 국내에서는 나왔다.이후 현아의 중국 공연 취소, 중국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 중이던 배우 추자현의 탈락 소식이 전해졌다.
그 때문에 최근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는 중국보다는 동남아시아, 남미 등 더욱 넓은 시장을 겨냥하고 있다.
국내 방송프로그램 완성품 기준 한한령 이전까지 전체 수출 중 중국을 대상으로 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30%에 육박했으나 한한령 이후로 5% 수준까지 감소했다. 중국을 대상으로 한 수출 금액은 2016년 8000만달러(1100억원)에서 2020년 1800만달러(250억원) 수준으로 감소했다. 반면 같은 기간 동안 글로벌 국내 방송프로그램 완성품 수출 규모는 글로벌 OTT를 통한 중국 외 판매가 확대되어 2016년 2500억달러 (3400억원)에서 2020년 3500억 달러 (4800억원)로 증가했다.이 때문에 관계자들은 "이제 한한령이 해제된다면 득이 될 뿐 지금 다시 한한령이 이어진다고 해서 문제가 될 건 없다"며 "한한령이 해제된다고 하더라도 이전과 같은 의존도와 영향력 행사는 힘들지 않겠냐"고 관측했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