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예술은 정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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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변현주의 Why Berlin
지난 6월 3일부터 5일까지, 베를린 ‘세계 문화의 집’((Haus der Kulturen der Welt, 이하 HKW)은 새로운 디렉터 보나벤투어 소 베젱 디쿵(Bonaventure Soh Bejeng Ndikung, 이하 보나벤투어 디쿵)을 맞이하며 퍼포먼스, 콘서트, DJ 파티, 강연, 토론 프로그램 등으로 이루어진 3일간의 화려하고 성대한 오프닝을 개최했다. 디렉터이자 책임 큐레이터(Chief Curator)로 선임된 보나벤투어 디쿵은 아프리카 카메룬 출신으로, 2009년부터 2022년까지 베를린에 있는 비영리 공간 사비 컨템포러리(Savvy Contemporary)를 운영하며 주로 아프리카 인권 운동이나 탈식민주의적 담론에 관해 다루는 프로그램을 기획해 선보였다. 2017년엔 독일 카셀에서 열린 도쿠멘타(documenta) 14에서 총괄 큐레이터(curator at large)를 맡기도 했다.
세계 문화의 집(Haus de Kulturen de Welt)
새로운 기관 로고와 이브라힘 마하마(Ibrahim Mahama)의 설치 작업이 보인다.
HKW는 1957년 본래 의회장으로 지어졌었고, 1987년 비(非)유럽 문화예술과 사회를 조명하는 국립기관인 ‘세계 문화의 집’으로 재개관했다. 이름에 포함된 ‘세계(Welt)’라는 단어에서 예상할 수 있듯이 유럽에 국한되지 않는 다른 지역의 문화예술을 알려왔고, 미술 전시뿐 아니라 연극, 댄스 퍼포먼스, 콘서트, 영화, 학술 컨퍼런스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해왔다. 특히 이전 디렉터인 안젤름 프랑케(Anselm Franke)가 부임한 2013년부터 HKW는 인류세(Anthropocene) 담론을 다루는 전시와 컨퍼런스를 철학자, 과학자, 사회학자 등과의 간학제적 협업을 통해 개최하면서 동시대 주요 이슈를 학술적, 이론적, 미학적으로 정교화하는 데 기여하는 국제적 기관으로 자리매김했다.이러한 HKW에 카메룬 출신의 큐레이터 보나벤투어 디쿵이 디렉터로 선임된 것은 2022년 열린 도쿠멘타 15의 예술감독으로 인도네시아 출신 컬렉티브 루앙루파(ruangrupa)가 초대된 것 만큼 충격적 뉴스였다. 1919년까지 독일의 식민지였던 카메룬에서 괴테 인스티튜트(Goethe Institut/독일문화원)의 지원을 받아 독일로 유학을 왔던 이가 수십 년이 지나 베를린의 주요한 미술기관 디렉터가 된 일은 다양성에 대해 열린 사고와 태도를 지닌 이들이 가득한 베를린에서도 놀라운 사건이다. 경제적 불황과 전쟁의 여파로 인해 우경화의 흐름이 두드러지는 유럽의 한 가운데에서 HKW는 새 디렉터를 맞이하며 마치 비주류의 승리를 자축하듯 다양성의 축제를 펼치면서 3일간의 오프닝 기간 동안 기관을 무료로 개관하고 관객을 초대했다.보나벤투어 디쿵의 연설을 생중계로 세계 문화의 집 외부에서 듣고 있는 풍경
그 시작을 알리는 축사에서 독일 문화장관 클라우디아 로트(Claudia Roth)는 지난 도쿠멘타 15에서의 논란을 의식하듯 반유대주의는 반드시 사라져야 한다고 말하며, “예술은 언제나 정치적이다. 그러나 예술에 대해 정치적 결정은 없어야 한다…(Kunst ist immer politisch, aber keine politische entscheidung über kunst…)”라는 말을 남겼다. 디렉터 보나벤투어 디쿵은 “우리가 파괴적이 아니라 건설적으로 일할 수 있게 해달라(let us be constructive, not destructive)”고 당부하며 “빨리 가려면 혼자 가야 하지만 멀리 가려면 함께 가야 한다”며 연설을 마무리했다. 축사에 이어 아프리카 전통 의식을 공연하는 퍼포먼스부터 사운드 퍼포먼스, 페미니즘과 탈식민주의적 시각을 반영한 강연 및 토론, 콘서트, DJ 파티 등으로 다채롭게 구성된 프로그램이 소개되었고, 새로운 디렉터의 첫 전시 《O Quilombismo: 저항과 주장에 대해. 투쟁으로서의 비행에 대해. 다른 민주적 평등주의의 정치적 철학에 대해 (Of Resisting and Insisting. Of Flight as Fight. Of Other Democratic Egalitarian Political Philosophies)》가 기존 전시장은 물론 HKW 공간 곳곳에서 펼쳐지며 활기를 더했다.Exhibition views of O Quilombismo, 2023, Haus der Kulturen der Welt, Berlin.
Photo by Hyunjoo Byeon.
전시 제목 ‘콰이롬비스모(Quilombismo)’는 1980년 브라질의 흑인 행동주의자이자 지식인이었던 아브지아스 나시미엔토(Abdias Nascimento)(1914-2011)가 ‘콰이롬부스(quilombos/16세기 초부터 1888년까지 브라질을 탈출한 노예 커뮤니티를 지칭하는 용어)’를 인용해 만든 이념, 즉 인간으로서 흑인의 생존과 인권을 주장한 선언을 뜻한다. 전시는 콰이롬비스모를 메타포로서 차용하며 역사적으로, 그리고 현재에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해방 운동을 참여 아티스트, 행동주의자, 사상가, 학자 등이 문화적, 정치적 저항의 새로운 형식으로 해석하고 전개한 작업을 보여 준다.이 외에도 보나벤투어 디쿵은 HKW의 여러 공간을 새롭게 명명하며 보편적이고 반역사적(ahistorical) 개념으로서 ‘세계’의 관념을 거부하는 시도를 하였다. 독일 의회장이었고, 1963년 서독을 방문한 케네디(John F. Kennedy) 미국 대통령이 연설을 하기도 했던, 서구 문명을 상징하는 이 공간은 역사 속에서 잊혀지고 지워진 인물들의 이름으로 불리며 새로운 의미를 더했다. 예를 들어, 강당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인종차별주의에 반대하다 30여 년간 추방되었다가 넬슨 만델라(Nelson Mandela) 전 대통령이 석방된 1990년 이후에 자신의 나라로 돌아갈 수 있었던, 가수이자 작곡가, 배우, 인권 운동가인 미리암 마케바(Miriam Makeba)의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건물의 입구는 메이지 및 다이쇼 시대 일본의 페미니스트 운동가이자 언론인이었던 이토 노에(Ito Noe)라 명명되었다. 이처럼 HKW의 모든 공간은 새로운 이름들로 불리고 역사에서 잊혀진 이들을 기억하며 ‘세계들’의 의미를 재해석한다.
새로운 역사(들)을 쓰고 새로운 세계(들)을 재정의하는 HKW의 새출발을 지켜보며 오프닝에서의 클라우디아 로트의 축사 한 구절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았다.
모든 예술은 정치적이다.그렇다. 예술은 사회를 반영하고, 아티스트는 사회에 속해 그가 바라보는 세상을 작업으로 펼치기에 정치적이다. 그리고 예술에서 기존의 지배적, 주류적 세계관의 부조화로운 것, 부정적인 것을 재평가하고 새로이 세우려 노력하고 시도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탈식민주의적 시각으로 역사를 다시 서술하려는 HKW의 대담한 시도는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
그러나 HKW의 전시를 몇 차례 본 후 떠올리며 글을 쓰고 있는 필자는 지금 이 전시에서 예술작품 자체로 기억나는, 울림을 준 작품이 거의 없음에 당황스러움을 느낀다. 거대한 아젠다가 압도하는 전시는 과연 좋은 전시인가. 무엇이 예술을 행동주의와는 다른 예술로 만드는가. 예술을 위한 예술을 원하는 것은 아니지만, 예술이 더 이상 주가 되지 않는 전시는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가. 모든 예술은 정치적이지만, 예술을 압도하는 정치적 제스처는 어떻게 읽어야만 하는가.
예술이 정치적임을 드러내며 세상을 바라보는 다른 시선을 제시하는 HKW의 새로운 발걸음을 응원한다. 하지만 정치적 제스처를 위해 예술을 도구화하지 않길 바라며 보나벤투어 디쿵과 HKW의 앞으로의 행보를 기대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