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학년도 논술길잡이] 유추 적용할때는 일반화와 구체화 과정 거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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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S16
임재관의 인물논술 강의노트지난 시간(2023년 6월 5일자 16면)에 제공했던 문제를 차근히 풀어봅시다.
2024학년도 대입 인문논술 기본유형 다지기(7)
<나>지문은 수컷 말코손바닥사슴의 집단적 위기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 사슴은 번식기 수컷들의 목숨 건 투쟁 때문에 유리한 고지에 서기 위해 점차 뿔을 키워왔고, 그로 인해 기동력이 떨어져 늑대 집단에게 잡아먹히고 있습니다. 자, 그렇다면 아래의 논리는 성립할까요?답 : <나>의 경쟁 옹호론은 부당하다.
근거 : 왜냐하면 수컷말코손바닥사슴 사례에서 볼 수 있듯 경쟁이 실패하기 때문이다.
영역이 다른 논의를 그대로 들고 오면 위험하다는 것은 바로 위 사례에서 알 수 있습니다. 제재가 다른 제시문을 서로 연결해 생각할 땐 유추적용을 활용해야 합니다. 우리는 수컷 말코손바닥사슴이 아닙니다. 수컷 사슴들이 실패했다는 것이 우리의 ‘경쟁’에 대한 위험함을 증명하진 못한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아래와 같은 답을 쓰면 ‘오답’으로 처리되겠군요.
예시1) <가>는 경쟁을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윈윈’ 게임으로 비유했다. 그러나 <나>의 사례에서 등장한 사슴의 뿔 크기 경쟁처럼 경쟁은 해당 집단의 경쟁력을 약화시킨다. <나>에 등장한 사슴들은 번식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점점 더 뿔 크기를 키우도록 진화했다. 이는 번식 경쟁에서 승리한 소수의 사슴에게는 도움이 됐을지 몰라도, 커다란 뿔로 인해 외부 집단의 포식자로부터 공격받을 가능성을 높여 종족 보존에 악영향을 미쳤다. 이는 결과적으로 <가>에서 주장한 경쟁의 상호이익 증진과 반대 결말을 보여준 것이다.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윈윈 게임은 경쟁을 지양하고 평화적 방법과 협력을 동원했을 때 이룰 수 있는 것이다.(서울 강남구 학생)예시2) 제시문 <나>는 진화론의 관점에서 경쟁을 부정적으로 바라본다. 자연선택의 과정에서 종의 존속에는 같은 집단 내부에서 협력을 이루고 나아가 자연과 조화롭게 사는 것이 유리하다. 집단 내부에서의 경쟁은 경쟁의 승리자에게 이익을 가져다 줄 수 있지만 집단 전체의 피해를 동반한다. 이는 말코손바닥사슴의 예에서도 드러난다. 이 같은 관점에서 경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가>는 사회 전체의 이익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경기 성남시 학생)
두 예시 모두 학생 답안입니다. 나름대로 각 제시문의 내용을 활용해 조리있게 비판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두 논리에서 모두 아쉬운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말코손바닥사슴의 실패, 그리고 자연계에서의 실패를 아무 여과나 치환 과정 없이 그대로 인간 사회에 대입해 교육 영역의 실패 논증을 전개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유추적용을 할 때는 일반화와 구체화의 과정이 필요합니다. 이것을 ‘이론적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은 썩 내키지 않지만, 그 과정을 단계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두 단계로 나눠 설명해 보겠습니다.
1. <나> 제시문 : 수컷 말코손바닥사슴이 뿔을 키우고 기동력을 잃어버려 생존을 위협받게 된 경쟁 사례2. 일반화 : 경쟁에 몰입하면 당장의 목표에만 집중하게 돼 근본적으로 더 중요한 것들을 도외시하거나 망각할 수 있다.
3. 대입해서 답을 내보자 : 교육 상황에서도 경쟁 위주의 시스템은 문제가 될 것이다.
4. 구체화/유추적용 : 인간 사회에서도 ‘경쟁’이 눈앞의 상대나 승리에만 집중하게 만드는 것은 똑같다. (왜?) 사슴들이 뿔의 기동력을 잃어버렸듯이, 학생들은 경쟁 외적인 관계, 도덕, 가치, 사회의 방향 등 다양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그러나 근본적인- 가치들로부터 멀어지게 될 것이다. 게다가 생존 위기에 내몰린 사슴 집단처럼 국가 전체가 일종의 경쟁력을 잃어버릴 가능성도 높아진다. (왜?)(왜?)라고 돼 있는 부분에 논리적인 이유를 덧붙이기만 한다면 유추적용의 답을 완성할 수 있겠군요. 아래 답안은 분량을 고려하지 않은 예시 답안입니다. 그 내용의 전개 과정을 학습하라고 더 길게 답안을 풀어 공유합니다.
[예시 답안]
<나>는 경쟁에 대한 편견을 지적하며, 자연상태에선 협력이 경쟁보다 생존에 유리할 수 있음을 주장한다. 이에 따르면 자연상태에서 대부분의 개체는 조화로운 상태에 있으며 과도한 경쟁을 지양한다. 말코손바닥사슴은 수컷 사이의 치열한 경쟁으로 인해 비정상적으로 큰 뿔을 가지게 됐는데, 이는 오히려 집단 전체의 생존율을 크게 하락시켰다. 자연에서 얻은 교훈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특히 교육에서 경쟁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가>는 말코손바닥사슴의 개체 간 투쟁처럼, 실력 성장이라는 하나의 목적만 바라보며 전체적인 악영향을 간과한 것이다. 이를 학생과 사회의 측면에서 조명해볼 수 있다. 학생 측면에서 본다면 <가>에서 주장하는 ‘공정한 경쟁’에도 문제는 존재한다. 학생들은 경쟁하는 과정에서 다른 학생들과 어우러지는 연대감, 자신의 삶을 스스로 규정하는 삶의 주체적 여유 등을 상실한 채 단일한 목적에 자연스럽게 몰두하게 된다. 왜냐하면 경쟁의 논리하에서 뒤처지는 학생은 모든 책임과 결과를 자신에게로 돌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나의 패배감은 다음 번의 승리를 위해 학생들을 내몰게 될 것이다. 이는 사회적 관계에서 조화로운 역할을 할 수 있는 역량, 다른 이들의 잣대에 휘둘리지 않고 창의적인 생각을 제시할 수 있는 독창성, 삶을 사색하는 철학성 등 삶에서 진정 필요한 요소들을 앗아가고, 학생들 사이의 경계를 만들며 비슷한 학생들을 서로 반목하게 하는 역효과로 이어질 수 있다. 이것이 커다란 뿔을 갖게 된 슬픈 말코손바닥사슴 수컷과 무엇이 다른가. 사회 전체적으로도 마찬가지다. 사회는 경쟁만으로 이뤄질 수 없다. 모든 사람은 사회적 관계를 맺고, 연대하며, 제한된 자원의 배분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보호에 합의한다. 이런 체제가 잘 갖춰진 선진국일수록 세계 속에서 더 경쟁력을 갖추게 된다. 즉, 한국 사회의 경쟁은 오히려 국가적 경쟁력과 생존력을 낮추는 것일 수 있다. <가>는 자연세계가 주는 교훈을 깊이 새길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