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죽음의 계곡’ 넘는 빅파마 노바티스의 R&D 요람 [남정민의 붐바이오]

미국 보스턴에 있는 노바티스의 생명의학연구소(NIBR) 표지석. 전임상에서 임상으로 넘어가는 ‘죽음의 계곡’을 매일매일 지나는 곳이다. 보스턴=남정민 기자
노바티스는 세계 최초의 키메릭항원수용체(CAR)-T세포 치료제 ‘킴리아’로 유명한 스위스 대형 제약사입니다. CAR-T 치료제는 혈액암 치료에 효과를 보여 ‘꿈의 항암제’라는 별명도 갖고 있습니다.

미국 보스턴에는 이러한 노바티스의 ‘성장엔진(growth engine)’으로 불리는 생명의학연구소(NIBR)가 있습니다. NIBR은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임상시험으로 넘어가기 전 단계의 초기 신약 후보군을 찾는 데 역량이 집중된 연구소입니다.바이오 업계에서는 동물실험(전임상)에서 사람 임상 단계로 넘어가는 과정을 ‘죽음의 계곡’이라고 부릅니다. 그간 개발되지 않은 새로운 약을 찾다보니 초기 물질을 찾는 과정도 어렵고, 돈과 시간이 많이 들뿐더러 성공률도 극히 낮기 때문입니다. 세계적인 빅파마 노바티스는 이러한 죽음의 계곡을 어떻게 넘고 있는지 NIBR을 찾아가 살펴봤습니다.

연 R&D 투자비용만 13조원

밑에서 바라본 NIBR. 직원들이 나와서 쉴 수 있게끔 연구소 한가운데 친환경적인 공원도 만들어 놓았다. 보스턴=남정민 기자
2002년 처음 문을 연 NIBR은 미국, 중국, 스위스 등 6곳에 있습니다. 이중 보스턴 연구소가 연구개발(R&D) 사령탑입니다. 전체 NIBR 인력 5600명 중 2500명이 이곳에서 일합니다.NIBR에서 만난 에반젤리스타 얼리샤 노바티스 과학협력부 리더는 “하나의 신약이 탄생되기까지는 사회적으로 조명받지 못하고 실패로 돌아간 수많은 연구들이 있다”며 “그러한 연구에 평생을 바쳐 일하는 사람들이 여기 NIBR 연구원”이라고 말했습니다.

노바티스가 R&D에 투자하는 금액만 1년에 100억달러(약 13조원)에 달합니다. 전체 매출의 20% 가량을 R&D에 투자하는데 이중 26억달러가 초기연구에, 나머지 74억달러 가량은 임상 1~3상 등 후기연구에 집중됩니다.

얼리샤는 “노바티스의 R&D는 잠재적인 신약을 발굴하는 NIBR과 대규모 후기 임상시험을 담당하는 GDD 크게 투 트랙으로 나뉜다”며 “세계 10만명에 달하는 노바티스 직원 중 5분의 1이 R&D 분야에서 근무한다”고 말했습니다.노바티스 NIBR이 있는 보스턴 캠브리지에는 노바티스뿐 아니라 화이자, 모더나 등 유명한 제약·바이오기업 연구소 및 사무실이 몰려 있습니다. 얼리샤는 “화이자와 사무실이 너무 가까워 회의할 때는 항상 블라인드를 쳐야 할 정도”라며 웃어보이기도 했습니다.

환자 사진 곳곳에…"혁신 원동력"

환자가 노바티스에 직접 보내온 사진. NIBR 연구소 곳곳에 이러한 사진들이 걸려있다. 보스턴=남정민 기자
NIBR 내부 촬영은 엄격히 금지돼있기 때문에 많은 사진을 찍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눈에 띄는 점은 연구소 곳곳에 환자들의 사진이 걸려있다는 것입니다. 환자 본인의 사진뿐 아니라 환자들이 건강해진 뒤 직접 찍어서 보내준 풍경 사진 등도 함께 걸려 있습니다.얼리샤는 “우리 곁에 항상 환자가 있다는 뜻”이라며 “연구과정이 어렵고 힘들 때도 많지만 항상 환자들을 생각하면서 혁신 동력을 이어가자는 의미”라고 설명했습니다.
연구소 내부 신경전달물질 장식물. 보스턴=남정민 기자
계단에는 신경전달물질을 형상화한 장식들도 있었습니다. ‘Neurotransmitter pathway’라는 이름의 장식물인데, 연구자들이 가끔 환기할 수 있게 내부를 꾸미는 데도 많은 공을 들였다는 점을 알 수 있었습니다.

방사성-CGT 연구, 전략적으로 '속도'

노바티스는 5가지 핵심 치료분야(혈액암, 고형암, 면역 질환, 신경과학 및 심혈관계)와 3가지 플랫폼 기술(세포 및 유전자 치료, 방사성 리간드 치료, 표적 단백질 분해)에 특히 집중하고 있는 빅파마입니다.

이날 연구소에서는 안쿠르 나가자라(Ankur Nagajara) 임상프로그램 리더와 임형욱 CGT분야 부책임자를 만났습니다.
방사성 의약품 전문가인 안쿠르 나가자라(Ankur Nagajara) 노바티스 임상프로그램 리더. 노바티스 제공
안쿠르는 방사성 의약품 전문가입니다. 노바티스는 다른 빅파마와는 다르게 방사성 의약품쪽에 꾸준히 투자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안쿠르는 “방사성 의약품은 쉽게 개발할 수 없는 치료제”라며 “다만 환자에게서 좋은 반응(responses)을 확인한 이상 연구개발을 계속해서 이어가고, 헌신할 수밖에 없는 분야”라고 강조했습니다. (노바티스는 신경내분비암 방사성 의약품 루타테라를 개발한 회사이기도 합니다.)

한국 바이오기업들도 방사성 의약품을 적극적으로 연구하고 있습니다. 특히 용량을 낮추는 방안으로 노바티스와 같은 선두주자와 차별점을 보이겠다는 전략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안쿠르는 “흥미로운 전략이며 노바티스도 용량을 다양화해서 연구를 진행 중”이라며 “결국엔 종양을 효과적으로 없애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임형욱 노바티스 세포유전자치료제 분야 부책임자. 노바티스 제공
임형욱 부책임자는 세포·유전자치료제(CGT) 분야 전문가입니다. T-차지 플랫폼 연구를 맡은 그는 “T세포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어떻게 세포를 농축하는지가 핵심 기술”이라며 “고형암을 치료하기 위한 CAR-T세포 치료제도 개발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CAR-T세포 치료제는 아직까지 혈액암에서만 효과를 보고 있기 때문에 고형암으로 적응증을 넓혀 나가는 것은 세계 빅파마들의 숙제로 남아있습니다. 구체적인 개발 현황에 대해서는 대외비라면서도 “T-차지 플랫폼을 활용해 본임상 단계에 들어간 프로그램들이 여럿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남정민 기자 peu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