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사우디 왕자 4000명 제친 '왕세자 빈 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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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살만의 두 얼굴소년은 사우디아라비아 왕가의 일원이었다. 그게 특별함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사우디 왕가는 1만5000여 명에 이른다. 왕자만 약 4000명 있었다. 소년이 왕이 될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브래들리 호프 외 지음 / 박광호 옮김
오픈하우스 / 484쪽|2만5000원
WSJ 기자가 쓴 빈 살만의 과거
돈 욕심만 부린 다른 왕자와 달리
모국서 공부하며 나라 사정 파악
'개혁가이자 폭군' 두 얼굴 그려
아주 새로운 내용은 없지만
영화 보는 듯 흥미로운 전개
소년의 이름은 무함마드 빈 살만. 앞 글자를 따 ‘MBS’라고 불린다. 1985년생으로 아직 마흔도 되지 않았으나 빈 살만 왕세자는 사우디를 통치하는 실권자다. 그는 미국조차 애정 공세를 펼치는 사우디의 총리다. 빈 살만의 등극은 2015년 그의 아버지가 79세라는 너무 늦은 나이에 왕위에 오르면서 시작됐다.미국에선 2020년 무렵 그에 관한 책이 쏟아져 나왔는데 최근 국내에서 출간된 <빈 살만의 두 얼굴>도 그런 책 가운데 하나다. 2014년 말부터 2018년 말까지 그가 사우디를 넘어 세계 정치계의 실력자로 부상한 과정을 다룬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서 함께 일했던 두 명의 기자가 썼다.
또 많은 왕자가 외국에서 학교에 다니면서 사우디적 정체성을 잃어버렸다. 모국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거들떠보지 않은 채 해외에서 휴가를 즐기거나 학위를 따느라 바빴다. 그런 점에서 리야드의 킹사우드대를 졸업한 빈 살만은 이질적인 존재였다.
‘집에 돈이 없다’고 느낀 점도 빈 살만을 다른 왕자들과 다르게 만들었다. 아버지 살만은 왕이 되기 전 정치적으로 큰 권력을 얻었지만 왕가의 기준에서 볼 때 상대적으로 적은 재산을 가졌다. 다른 왕족들이 돈을 불리는 동안 살만은 나라에서 지급하는 수당에 의존해 생활을 꾸려나갔다. 만약 아버지가 권력의 중심에서 밀려난다면 생계에 큰 차질이 생길 수 있었다. 그런 불안은 열여섯 살의 빈 살만이 금화와 시계를 판 돈 10만달러로 주식 투자에 나서게 했다.책은 예멘 반군과 전쟁을 벌이고, 억압적인 문화적 관습을 깨부수고, 손정의와 만나 비전펀드를 조성하고, 비판적 언론인인 자말 카슈끄지를 암살하는 등 빈 살만의 다양한 모습을 그린다. 개혁가이기도 하지만 난폭하고 무자비한 두 얼굴의 사나이다.
이제는 익히 알려진 이야기에다 책이 미국에선 3년 전에 나왔다는 한계가 있지만 ‘요주의 인물’인 빈 살만을 파악하는 데 분명 도움이 된다. 그가 선출된 공직자처럼 몇 년 임기를 채운 뒤 사라질 인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책은 이렇게 말한다. “그는 심지어 아직 왕위에 오르지도 않았다. 그는 앞으로 10년, 20년, 어쩌면 30년 이상 전설을 만들어 나갈 것이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