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전쟁터에도 '패션피플'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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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그리고 패션3-캣워크 위의 나폴레옹‘전쟁 스토리 텔러’로 잘 알려진 남보람이 <캣워크 위의 나폴레옹>으로 전쟁 속에 피어난 패션 이야기를 펼쳐냈다. 남보람은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선임연구원으로 군사 기록 및 전쟁사를 연구하고 있다.
남보람 지음 / 와이즈플랜
336쪽 | 1만8000원
저자에 따르면 군복 패션의 진수는 모자에서 찾을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게 겨울철 흔히 볼 수 있는 털모자 ‘비니’다. 비니의 정확한 명칭은 ‘와치 캡’. 영국에서 배를 타던 선원들이 쓰던 모자를 미국 해군이 1930년대부터 군용품으로 병사들에게 보급했다.비니가 일반인에게 인기를 끌게 된 것은 영화배우 스티브 매퀸의 영향이 컸다. 그는 당대 최고의 스타로 미국에 ‘밀리터리 룩’을 들여온 선구자로 통한다. 미 해병대에서 복무한 매퀸은 제대 후 영화배우 활동을 하면서도 군복을 즐겨 입고 와치 캡으로 불린 비니를 자주 착용한 채 공식 석상에 섰다. 그 모습에 매료된 미국인들이 너도나도 비니를 쓰기 시작했고, 이게 패션이 됐다.
오늘날 여성복에서 자주 보이는 레이스도 군복에서 유래한 패션이다. 군악대는 군대가 행진할 때 선봉에 섰고, 교전 때는 나팔로 신호를 보내주는 이른바 ‘통신 수단’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이들을 다른 병사들과 구분하자는 의미에서 군복에 레이스를 달아주었다. 이런 군악대용 레이스가 예뻐 보인 장교들은 18세기 들어 자신의 군복에도 하나둘 레이스를 달기 시작했다. 그러다 18세기 중반 대부분의 장교가 레이스가 달린 군복을 입었다. 19세기엔 화려한 군복이 기본 복장이 됐다. 계급장 주변, 목 부분, 소매, 바짓단에 레이스를 한껏 달아 화려하게 꾸몄다. 이 시절 군부대 단체 사진을 보면 마치 날개를 편 공작처럼 누구의 군복이 더 화려한가 경쟁하는 듯이 보인다.
전쟁이 낳은 신소재도 있다. 나일론이다. 미국 듀폰은 1934년 나일론 합성에 성공해 4년 후인 1938년 시포드에 세계 첫 번째 나일론 공장을 세웠다. 1941년 12월,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나일론은 옷뿐 아니라 총기 끈, 타이어, 밧줄, 연료통 등 여러 곳에 쓰이기 시작했다. 유연하고 탄력이 좋은 데다 가격마저 쌌기 때문이다. 나일론의 영토는 전쟁 이후 일반 의류로 확대됐다.
최지희 기자 mymasak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