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시 "막아라" vs 경찰 "뚫어라"…난장판 속에 열린 퀴어축제

유례없는 두 기관 충돌, 30여분간 몸싸움 등 대치
홍준표 대구시장 "불법 도로점거…대구경찰청장에 책임 물을 것"
제15회 대구퀴어문화축제가 경찰과 행정 당국이 이례적으로 정면 충돌하는 아수라장 속에 열렸다. 17일 오전 9시 25분께 대구퀴어문화축제 주최 측이 대구 중구 반월당네거리에서 중앙로 대중교통전용지구로 무대 설치 차량 진입을 시도하자 시청 소속 공무원들이 길을 30여분간 막아섰다.

20여분 뒤 축제에 참여한 성소수자들은 "평화로운 집회를 공무원이 막아설 수 없다"고 항의했다.
경찰은 공무원들에게 "적법한 집회"라며 "안전사고를 예방해야 한다"고 설명하며 무대 설치 차량의 진입을 위한 길을 터줬다. 일부 공무원들이 몸으로 행사 차량을 막아서고 경찰은 공무원들을 밀어내는 대치 상황이 10여분간 전개됐다.

이 과정에 한 팀장급 공무원은 부상을 주장하며 길바닥에 주저앉기도 했다.

경찰의 에스코트 덕에 무대 설치 차들이 오전 10시 5분께 축제 개최 장소인 중앙로 대중교통전용지구 중심에 다다르자 축제 주최 측 관계자들은 환호하며 "대구 경찰 이겨라. 대구 경찰 파이팅"을 외쳤다. 자식이 성소수자로서 축제에 참여했다는 변홍철(54)씨는 "별 희한한 상황"이라며 "홍준표 대구시장의 정치적인 표 계산 때문에 공무원들이 이러고 있는 상황이 너무 딱하다"라고 말했다.

중앙로 한 상인 이모(75) 씨는 "집회를 허락해준 것 자체가 문제"라고 비판했다.
공무원들이 '동성로 상점가 상인회 일동'이 걸어둔 현수막을 가지고 와서 대열을 이루자 한 시민은 "상인회 현수막을 시청 공무원이 들고 있는 걸 부끄러운 줄 알라"며 "본인들도 이해가 안 가지 않습니까"라며 소리 질렀다. 현수막에는 '멋대로 대중교통 10시간 차단하는 대구 퀴어(동성애) 축제 강력히 반대'라고 적혔다.

오전 10시 26분께 현장에 도착한 홍준표 시장은 기자회견을 열고 "퀴어문화축제는 불법 도로 점거"라며 "(허용한) 대구경찰청장에게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기자회견을 마친 홍 시장이 현수막을 들고 있는 공무원들에게 "다들 수고했고, 퇴근해라. 다친 사람이 있냐. 고생했다"고 말하며 경찰과 행정 당국의 대치 상황은 마무리됐다.
이날 경찰 1천500여명과 대구시·중구청 소속 행정 공무원 500여명이 오전 7시부터 중구 중앙로 대중교통전용지구 560m 거리 곳곳에 배치되며 긴장 국면이 시작됐다.

퀴어문화축제 개최를 위한 대중교통전용지구 도로 차단을 놓고 경찰과 행정 당국이 반대 입장을 견지하는 전례 없는 상황에 양측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한 경찰 간부는 "지금 공무원들하고 이렇게 싸워야 하는 상황에 어이가 없다"라며 "우리야 퀴어문화축제 관리를 위해 매년 이곳에 나왔지만, 공무원들은 이렇게 나왔던 적이 없다"라고 말했다.

대구시 한 간부는 "경찰하고 마찰은 처음"이라며 "해외 토픽감"이라고 했다.

축제에 참여한 대구 지역 야권 관계자들은 경찰에 힘을 실어줬다.
황순규 민중당 대구시당위원장은 "살면서 경찰을 응원해보긴 처음"이라며 "경찰들이 알아서 교통정리를 해주는 상황이 감격스럽다"라고 밝혔다. 한민정 정의당 대구시당위원장은 "15년 동안 무탈하게 열린 퀴어문화축제를 홍준표 대구시장 1명의 독단으로 이렇게 경찰과 행정공무원들이 양측으로 갈려 대치하게 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