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민노총 집단탈퇴 금지, 조합민주주의 정신 훼손" [오형주의 정읽남]

서울지방노동위원회가 의결한
전공노 집단탈퇴 금지규약
시정명령 결정문 단독 입수

전공노 중앙위, 2021년 9월
선거관리규정에 조항 신설하며
‘조합 및 민주노총 탈퇴 공약’ 삽입

“총회나 대의원회 의결 없어 위법
조합민주주의 취지와 정신도 훼손”
전국공무원노조(전공노)가 지난 14일 서울 시청역 인근에서 총력투쟁 선포대회를 열고 공무원 보수 인상 등을 요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22조(자격상실) ①다음 각 호의 하나의 해당하는 경우 입후보자는 그 자격을 상실한다. 2. 조합 및 민주노총 탈퇴 공약을 하는 경우”(2021년 9월 신설된 전국공무원노조 선거관리규정)

“노동조합의 자주적인 결의나 활동은 최대한 보장돼야 하지만 노동조합이 ‘자주적 운영’이라는 이름으로 조합민주주의의 취지와 정신을 훼손하는 것까지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서울지방노동위원회, 2023년 4월24일 결정문)요즘 노동계에서는 민주노총 산별노조를 집단탈퇴하려는 움직임이 거세게 일고 있다. 지난해 11월 포스코지회(금속노조)에 이어 올해는 롯데케미칼 대산지회(화섬식품노조)가 탈퇴를 결의했다.

철옹성 같았던 산별노조에 균열이 난 것은 윤석열 정부가 개별 기업 노조의 집단탈퇴를 막는 상급단체 규약의 ‘독소조항’을 폐지하는 절차에 들어가면서부터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2월과 3월 민주노총 금속노조와 사무금융노조, 전국공무원노조(전공노), 화섬노조 등 집단탈퇴 금지 규약을 둔 산별노조를 대상으로 철폐를 요구하는 시정명령을 추진했다.이후 서울지방노동위원회는 4월에 금속·사무금융·공무원노조, 지난달 18일엔 화섬노조의 집단탈퇴 금지규약에 대해서도 시정명령을 의결했다.

노동위원회는 근로자위원과 사용자위원, 공익위원 등 3자로 구성된 합의제 행정기관이다. 노사간의 이익 및 권리분쟁에 대한 조정과 판정을 주 업무로 독립성을 지녀 준사법적 기관으로 불린다.

이와 관련해 한국경제신문은 지난 4월 24일 서울지노위의 전공노 집단탈퇴 금지규약 시정명령 결정문을 입수했다.
앞서 전공노는 2021년 9월 2일 중앙위원회를 열어 입후보자 자격 상실 요건을 나열한 선거관리규정 제22조에 ‘조합 및 민주노총 탈퇴 공약을 하는 경우’ 항목을 신설했다.

노동계에서는 해당 조항 신설이 같은 해 8월 강원 원주시청 공무원노조(원공노)의 민주노총 및 전공노 탈퇴 의결 직후 추진된 것으로 보고 있다. 원공노와 같은 집단탈퇴 사례 재발방지를 위해 독소조항을 만들었다는 얘기다.

2023년 4월 24일 서울지노위에서 열린 심문회의에 출석한 전공노 관계자도 비슷한 취지의 주장을 했다.당시 전공노 측은 “입후보자가 자기 조직 탈퇴를 공약하는 사례가 있었는데 이로 인해 노조 선거가 정책이 아닌 상호 비방으로 전개되는 것을 본 조합원들의 우려와 의견을 반영한 것”이라며 “노조 탈퇴는 노조 존립과 유지·발전에 반하는 것으로 이를 공약하는 입후보자는 그 자체로 노조 선출직 임원으로서 자격이 없다”고 했다.

서울지노위에서 해당 사건을 심의한 공익위원들의 판단은 달랐다. 서울지노위는 우선 해당 조항을 전공노가 중앙위원회를 열어 신설한 절차적 행위 자체가 적법하지 않다고 봤다. 노조법 제16조는 ‘규약 제정과 변경, 임원 선거와 해임에 관한 사항’을 총회 의결사항으로 규정하고 있다. 다만 규약으로 총회에 갈음할 대의원회를 둘 순 있다.

결정문은 “이 사건 의결요청 대상인 선거관리규정은 실질적으로 임원의 자격 및 피선거권에 관한 규정에 해당된다”며 “노조법 제16조에 따른 의결이 이뤄져야 함에도 그러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전공노 중앙위원회에서 한 결의는 법에 위반된다고 판단된다”고 지적했다.

서울지노위는 나아가 전공노 선거관리규정 제22조 자체에 대해서도 위법성이 있다고 봤다. 노조법 제5조는 노조 조합원의 단결권 및 단결 선택권, 제11조는 민주적 운영원리, 제22조는 균등 참여권을 각각 보장하고 있다.

결정문은 “전공노 선거관리규정은 탈퇴 후 다른 노조 설립 또는 다른 연합단체에의 가입을 공약하는 조합원의 입후보자 자격을 박탈하는 것”이라며 “이는 노조법 제5조 제1항에 의해 보호되는 단결선택의 자유를 사전적으로 제한하는 것에 해당하므로 위법”이라고 판단했다.

이어 “노조법 제11조가 노조의 자주적 운영의 보장과 더불어 민주적 운영의 보장을 병렬적으로 열거하고 있는 점에 비춰 보면 노조의 자주적 결의나 활동은 최대한 보장돼야 한다”면서도 “노조가 ‘자주적 운영’이라는 이름으로 조합민주주의의 취지와 정신을 훼손하는 것까지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1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노조 회계 투명성 제고를 위한 노동조합법 시행령과 소득세법 시행령 개정안 입법 예고 발표 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결정문은 “전공노 선거관리규정은 단결선택권을 행사하고자 하는 조합원의 임원 자격을 부당하게 제한하는 것”이라며 “노조법 제11조에 따른 노조의 기본적 운영원리인 민주성 원칙에 반하므로 위법하다”고 했다.

아울러 결정문은 “노조법 제22조에는 노조 내 소수자가 노조 조직과 운영 문제에 대해 의견을 표명하거나 선거권 내지는 피선거권을 행사하는 것이 포함된다”며 “전공노 및 민주노총 탈퇴를 원하는 조합원들의 피선거권을 제한하는 것은 노조법 제22조가 보장하는 노조 문제에 균등하게 참여할 조합원의 권리를 필요하고 합리적인 범위를 과도하게 제한하는 것이므로 위법”이라고 판단했다.

노동계에서는 산별노조의 집단탈퇴 금지규약의 ‘반(反)민주성’이 이번 지노위 시정명령 의결로 분명히 드러난 만큼 앞으로 산별노조에 불만을 품은 개별 노조의 탈퇴 행렬이 가속화 될 것으로 본다.문성호 원공노 사무국장은 “반민주적인 민노총 탈퇴 금지 규약에 대한 지노위 시정명령 의결 이후 민노총에 염증을 느끼는 산하 지부, 지회의 집단탈퇴 ‘도미노 현상’이 예상된다”며 “이미 일부 민노총 산하 노조들에서 탈퇴 관련 문의가 쏟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