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어축제' 막은 대구시, 막은 길 뚫어준 경찰

경찰 vs 市공무원 '도로점거' 놓고 물리적 충돌 왜?

市 "불법점용" 강제집행 나서자
경찰 "합법집회" 공무원 밀어내

홍준표 "대구청장 파면해야"
대구경찰 직협 "모욕말라" 반발
지난 17일 대구 중구 중앙로에서 열린 성소수자 축제 ‘대구 퀴어문화축제’를 앞두고 행정대집행에 나선 대구시 공무원과 이를 제지하는 대구경찰청 소속 경찰들이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뉴스1
지난 17일 대구 중구 중앙로에서 벌어진 성소수자 축제 ‘대구 퀴어문화축제’를 두고 대구시 공무원과 대구경찰청 소속 경찰들이 몸으로 부딪히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홍준표 대구시장이 퀴어축제를 위해 공공도로에 무대를 설치하는 것은 “도로 불법 점거”라며 이를 막기 위해 시청 공무원들을 내보내자, 이 집회가 합법적으로 신고·허가된 집회라고 판단한 경찰 측에서 공무원을 제지하면서 물리적 충돌이 발생했다.

공권력 vs 공권력

양측의 대치는 아침부터 시작됐다. 경찰 1500명과 대구시 중구 공무원 500여 명은 오전 7시부터 중앙로 대중교통전용지구 560m 거리에 늘어서 신경전을 벌였다. 대구시는 대중교통전용지구를 축제장소로 정해서 공공도로를 시 허가 없이 쓰는 것은 불법이라고 보고 행정대집행(강제집행)을 예고한 상태였다.본격적인 충돌은 이날 오전 9시30분께 중앙로에 축제장비를 실은 차량이 진입을 시도하면서 시작됐다. 시청 공무원들이 차량을 몸으로 가로막았다. 이들과 맞붙은 것은 축제 집회 측이 아니라 경찰이었다. 수적으로 우세한 경찰은 힘으로 밀어내 차량의 진입 경로를 확보했다.

대구시의 행정대집행 예고 내용을 미리 검토한 대구경찰청은 ‘집회를 강제로 해산해야 할 만큼 공공의 안녕질서에 명백한 위협이 발생한다고 볼 수 없으면 행정대집행은 위법하다’는 법원 판례 등을 근거로 무대 설치를 막지 않는 게 옳다고 봤다.

경찰 관계자는 현장에서 대구시 공무원들을 향해 “주최 측도 정당한 집회신고를 했기 때문에 무대 장비 등 집회에 사용하는 물품도 문제가 없다”고 외쳤다. 양측이 부딪히는 과정에서 한 대구시 공무원이 넘어져 통증을 호소하기도 했다. 결국 공무원들이 밀려나면서 행정대집행은 무산됐다.

“경찰청장 교체” 요구한 홍준표

10시26분께 등장한 홍 시장은 기자회견을 열어 “경찰이 불법 도로 점거 시위를 보호하기 위해 공무원들을 밀치고 시민의 버스통행권을 제한한 것은 불법 도로 점거를 방조한 것”이라며 “이게(경찰의 대응이) 정당한지 정부의 판단을 받아보겠다”고 주장했다.

대립 직후에는 페이스북에 “대구경찰청장이 교체됐으면 한다”며 “완전한 지방자치 경찰시대라면 내가 즉각 파면했을 것”이라고 썼다. 홍 시장이 저격한 대구경찰청장은 지난해 12월 청장으로 부임한 김수영 치안감이다. 홍 시장은 “내가 ‘도로 불법 점거는 막아야 한다’고 하니 되레 ‘집회 방해죄로 입건할 수도 있다’고 겁박하는 간 큰 대구경찰청장”이라며 “공공도로를 무단으로 막고 퀴어들의 파티장을 열어준 대구경찰청장은 대구시 치안행정을 맡을 자격이 없다”고 비난했다.

대구경찰청은 발끈했다. 대구경찰청 공무원직장협의회연합은 즉각 “홍준표 대구시장은 대구경찰을 더 이상 모욕하지 말라”며 반박 성명을 냈다. 이들은 “판례를 볼 때 퀴어문화축제가 불법 도로 점거, 정당한 행정대집행이란 것은 논리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검찰 출신으로 누구보다 법을 잘 아는 분이 왜 이러는지 의문”이라고 비판했다.시민들도 이번 대립을 두고 의견이 엇갈렸다. 동성로의 한 상인은 “멋대로 대중교통을 10시간 차단하는 대구 퀴어축제를 강력히 반대한다”며 “집회 허가만 받으면 도로점용까지 허용하는 지금의 방식을 고쳐야 한다”고 했다. 반면 한 축제 참여자는 “홍 시장이 정치적인 표 계산만 따져 합법적인 축제를 막는 상황 자체가 잘못됐다”고 말했다.

조철오/대구=오경묵 기자 che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