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의 아를과 이우환의 아를, 보이지 않는 것을 찾아서

[arte] 윤상인의 런던 남자의 하얀 캔버스
2014년 여름 나는 가족들과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을 방문 한적이 있다. 궁전의 입구에 커다란 철 제 아치모양의 구조물이 설치 되어있었고 크게 Lee Ufan이라는 작가의 이름이 쓰여 있었다. 내가 유럽에서 처음으로 본 이우환 작가의 작품이었다.
photos: © Lee Ufan Photo. Tadzio
이우환 작가는 1956년 서울대학교 회화과를 중퇴한 후 일본으로 건너가 철학을 공부하였다. 1960 년대 미국, 프랑스등 자본주의 국가에서 산업사회에 대한 저항예술이 전개되었고 그 흐름속에서 일본의 ‘모노하’가 탄생하였다. ‘모노(물체物) 하(유파派)’는 너무 많은 것이 만들어지는 것에 대한 비판적 예술그룹으로 이우환 작가는 그 중심에 있었다. 작가는 물건을 덜 만들고 덜 가공하여 최 대한 자연에서 혹은 가공되었더라도 얻은 상태 그대로를 재배치 하여 표현하고자 한다. 2020년 이우환 작가는 빈센트 반 고흐가 1년여 머물며 예술혼을 불살랐던 프랑스 남부의 아를에 미술관을 개관하려 하였다. 하지만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전염병인 코로나바이러스가 전세계를 멈추게 하는 바람에 미술관은 2022년 4월 개관하게 되었다. 나는 개관했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아를로 향했다. 그동안 서울, 부산, 나오시마, 뉴욕, 파리, 런던등 많은 곳에서 작가의 작품들 을 만나고 해설해 왔지만 아를에서 만나는 작품들은 또 어떠한 이야기들을 품고 있을지 한껏 기대가 되었다.
출처: 이우환 미술관 아를

미술관은 17세기에 지어진 3층건물이며 귀족의 저택, 상점등으로 사용되어 오다가 이우환 미술관 이 되었다. 미술관의 외관은 화려하지 않다. 작가의 작품 다이얼로그처럼 간결하고 단백하다. 입구는 여느 건물의 조그마한 입구와 별반 차이가 없어 작은 명판을 확인하지 않으면 미술관이라는 것을 알지 못할 것이다. 미술관이 아를에 개관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궁금했다. 왜 아를일까? 답은 간단했다. 이우환 작가가 아를을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출처: 위키피디아
café Terrace at Night, 1888, 반 고흐

아를은 오래된 도시다. 고대 로마시대에 번성했던 곳이며 그때 세워진 원형경기장이 현재까지 잘 보존되어 있어 세계문화유산 유네스코에 등재되어 있는 역사적인 도시이다. 그리고 화가 반 고흐의 흔적들이 가득한 고흐의 도시이기도 하다. 고흐는 이곳 아를에서 <해바라기> <밤의 카페 테라스> <론 강의 별이 빛나는 밤>등 대작들을 그렸으며 고갱과 함께 지내다 귀를 잘랐던 유명 한 일화가 있는 ‘노란집’도 이곳에 있다.

도시는 2천년전의 로마시대, 2백년 전의 반 고흐 그리고 현재까지 긴 시간을 관통하며 공존하고 있다.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공존과 서로에게 미치는 파장을 느낄 수 있는 ‘아를’은 작가의 작품 ‘Relatum 관계항’과 닮아 있다.

“우리가 아를에 있기 때문에 저는 시공간을 초월하는 차원을 표현하려고 노력했습니다”
– 이우환
Relatum – Road to Arles, 2022, 이우환

미술관 1층에는 작가의 친구이자 건축가 ‘안도 다다오’와 협업한 작품부터 철판, 돌, 유리, 물, 하 늘등 다양한 재료를 통해 관계를 묘사한 설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 중 ‘Relatum – Infinity of the vessel’ 작품은 큰 철제 그릇에 물이 가득 차 있다. 천장에서 물방울이 떨어져 그릇의 물 표 면에 파장을 만들고 이것을 전구로 비추고 있어 천장에 그 파장이 퍼지는 그림자를 볼 수 있고 물이 떨어지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물방울과 그릇안의 물, 빛과 그림자, 작품과 나 사이의 다양 한 관계들을 시각화한 작품이다.
Relatum – Infinity of the vessel, 2022, 이우환

2층에는 회화 작품들이 전시되어있다. 벽에 찍은 점에서 발산되는 파장의 힘은 어느 전시장소에서 보다 강하게 느껴졌다. 이것이 작가가 얘기하는 ‘여백’일 것이다. 작가의 여백은 동양화의 여백인 그리지 않은 공간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작가는 작품에 최소한으로 개입하고 작품과 관람자가 교감하기를 바란다. 나에게 그 여백의 힘은 강하게 느껴진 것이고 또 다른 이에게는 다르게 느껴질 것이다. 여백에 어떤 이야기를 담을지는 관람자가 만들어 가는 것이다. 나는 조용히 다이얼로그 시리즈 전시실 의자에 앉아 여백을 느껴보며 작품을 완성해 본다.

“예술가는 작품의 주인이 아닙니다. “– 이우환
Dialogue, 2019-21, 이우환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일화를 소개한 적이 있다. 오래 전 이우환 작가의 일본 전시에 관람하러 온 노부부가 작품을 앞에 두고 작품이 어디에 있냐고 직원에게 물었다는 것이다. 몇 십년 전 그림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일본의 노부부에게는 캔버스에 점 하나 찍힌 그림과 돌 하나 덩그 러니 있는 작품은 예술로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일어나는 이러한 모든 현상 들 또한 작품의 확장된 측면이라고 한다. 점 하나를 찍기 위해 수없이 연습하고 연구하며 작가의 예술적 감각에 의해 배치한 결과들, 이것이 얼마만큼 관람자들의 공감을 이끌어 내는지에 따라 작품은 평가된다. 작품은 모든 이들과 공감을 형성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세상의 모든 관계에 대해 이끌어 내어 생각할 수 있게 해주고 예술에 대한 끊임없는 열정을 보여준 이우환 작가에게 찬사를 보낸다.

“나는 내부와 외부 사이의 관계를 보여주려고 노력합니다.
내가 그린 것과 그리지 않은 것 사이의 관계를 찾고 있습니다. “– 이우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