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킬러 문항' 배제…자사고·외고·국제고 존치

尹 "아이들 가지고 장난치는 것"
27일 사교육비 경감 방안 발표
국민의힘과 정부는 1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공교육 강화를 위한 대책을 논의했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가운데)은 이 자리에서 ‘쉬운 수능’ 논란에 대해 사과했다. /김병언 기자
국민의힘과 정부가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이른바 ‘킬러 문항’(초고난도 문항)을 출제하지 않기로 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폐지하기로 결정한 자율형사립고와 외국어고, 국제고는 존치하기로 했다.

당정은 19일 국회에서 ‘사교육비 경감 실무당정협의회’를 열고 이같이 결정했다. 국회 교육위원회 여당 간사인 이태규 의원은 “공교육 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소위 킬러 문항은 시험에서 변별력을 높이는 쉬운 방법이지만 학생들을 사교육으로 내모는 근본 원인”이라며 “공정한 수능 평가가 되도록 공교육 과정에서 다루지 않은 내용은 출제에서 배제하기로 했다”고 말했다.이는 사교육비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최근 킬러 문항에 대해 “수십만 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한 부적절하고 불공정한 행태”라며 “약자인 우리 아이들을 가지고 장난치는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3월부터 킬러 문항을 배제하라고 여러 차례 지시했지만 6월 모의평가에서도 킬러 문항이 등장해 논란이 빚어졌다. 교육부 대입담당 국장이 지난 16일 경질됐고, 이규민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도 19일 사임했다.

킬러 문항은 오는 9월 수능 모의평가 때부터 제외될 전망이다. 킬러 문항 배제로 수능 변별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에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적정 난이도가 확보되도록 출제 기법을 고도화하기 위한 시스템을 점검하는 등 교육부 수장으로서 모든 지원을 하겠다”고 말했다.

당정은 또 대형 입시학원의 허위·과장 광고로 학부모들이 불안해하지 않도록 관련 불법 행위에도 엄중 대응하기로 했다. 구체적인 방안은 오는 27일 발표할 사교육 대책에 담길 예정이다.

교과 과정 벗어난 내용은 출제 안 한다…9월 모평부터 도입
"출제기법 고도화로 변별력 확보"…이주호 교육장관 연신 고개 숙여

사교육비 경감을 주제로 열린 19일 당정협의에서는 여러 공교육 강화 방안이 나왔다. 정부가 책임지고 학생들의 기초학력을 끌어올려 사교육에 의존하지 않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목표다.

우선 공교육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당정은 지난 정부에서 폐지하기로 했던 자립형사립고와 외국어고, 국제고를 존치하기로 했다. 학생의 소질과 적성에 맞는 맞춤 교육을 제공하기 위해서다.

또 교사의 수업 역량 평가를 강화하는 한편 교권을 보호해 교사가 주도적으로 수업의 질을 높일 수 있도록 한다.EBS를 활용한 학습 지원을 강화해 사교육 수요를 흡수하는 방안도 제시됐다. 사교육이 없더라도 학생의 학력 저하를 예방하기 위해 학력 진단을 강화하고, 진단 결과를 바탕으로 맞춤형 학습 지원을 제공하기로 했다.

갈수록 늘고 있지만 방치돼온 유아 사교육 문제와 관련한 대응 방안도 마련하기로 했다.

당정은 수능을 150여 일 앞둔 상황에서 킬러 문항 배제 등이 학생과 학부모의 혼란을 가중한다는 논란에 대해서도 진화에 나섰다.국회 교육위원회 간사인 이태규 국민의힘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은 공교육 정상화와 사교육비 해결 방안을 큰 구조 속에서 말씀했고, 그에 맞춰 수능을 준비하면 혼란이 일어날 이유가 없다”며 “(킬러 문항이) 사교육 기회 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끊어달라고 (대통령이) 지적한 건데 왜 혼란을 초래한다는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대통령께서 이 문제를 여러 차례 지적했음에도 신속한 대책을 내놓지 못한 것에 대해 교육부 수장으로서 국민께 죄송하다”며 연신 고개를 숙였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수능은 학교 교육과정을 충실히 이수했는지, 이를 통해 대학 수학능력을 갖췄는지 확인하는 평가라는 점에서 학교 교육 과정에 없는 킬러 문항 배제는 당연하다”며 “변별력을 갖추면서 학교 교육과정을 충실히 반영하는 수능 출제 방안 마련에 머리를 맞대야 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정부가 사교육비 절감을 위해 학원가를 엄중 단속하겠다며 칼을 빼들었다. 대형학원의 거짓·과장 광고가 주요 대상이다. 학원가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일부 대형학원은 세무조사 등을 염려하면서도 “엉뚱한 곳을 겨냥한 대책”이라며 볼멘소리를 했다.

사교육비 절감과 공교육 경쟁력 강화를 위해 대형학원을 대상으로 한 대대적 단속 의지도 밝혔다. 이태규 의원은 “수능 입시 대형학원의 거짓·과장 광고로 학부모들이 불안해하지 않도록 일부 학원의 불법 행위에 엄중히 대응하겠다”고 강조했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이 지적한 ‘이권 카르텔’을 깨기 위한 당정 후속대책의 일환이다. 윤 대통령은 변별력 확보를 이유로 킬러 문항을 출제한 교육당국과 고가의 강의로 배를 불린 학원가가 ‘카르텔’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사교육계는 당정의 ‘엄포’에 당황스럽다는 반응이다. 서울 대치동에서 30년간 입시학원을 운영하고 있는 A원장은 “정부가 앞장서 강경한 대응을 시사한 만큼 대치동의 대형학원들은 세무 조사까지 걱정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다른 입시학원 원장은 “재수생과 삼수생이 다니는 의대 입시반은 킬러 문항만 연구하는 반이 있다”며 “이런 학원들은 홍보 자체가 어려워져 직접적인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사교육 시장 자체가 축소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내다봤다. A원장은 “학원을 잡는 것이 사교육비 절감의 근본적 대책은 아니며, 오프라인 학원이 어려워지면 온라인 학원으로, 대형학원이 어려워지면 소형학원으로 가는 ‘풍선효과’가 발생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사교육기업 주가는 이날 오히려 오름세를 기록했다. 대학 입시교육 1위 기업인 메가스터디는 이날 전일 대비 1.80% 오른 1만1340원에 장을 마감했다. 메가엠디(0.78%), 디지털대성(0.32%) 등도 상승했다.한 교육 담당 애널리스트는 “십수 년간 정부는 사교육 시장에 부정적이었지만 사교육 대책은 매번 효과가 없었다”며 “시장에서는 사교육이 미래에도 죽지 않을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주연/이혜인 기자 grumpy_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