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주에게 물려줄 아버지 고사성어] 남을 이롭게 하는 게 나를 이롭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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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닷컴 더 라이프이스트이삿짐 실은 차량을 떠나보내고 그리 멀지 않은 새로 산 집까지는 아버지와 함께 걸었다. 골목을 빠져나올 즈음에 아버지가 봉투를 꺼내주며 방금 떠난 집 마루에 놓고 오라고 했다. 겉봉에는 ‘이사 오시는 분께’라고 수신인을 적었지만, 봉투는 열려 있었다. 돌아가는 길에 궁금해 열어봤다. ‘이 집에 살며 느낀 것들입니다’로 시작하는 편지는 두 장이나 됐다. 만년필과 볼펜을 번갈아 쓴 아버지 필체는 정갈해 며칠에 걸쳐 쓴 것 같았다.
살던 집 얘기라 한 눈에 들어왔지만 몇 가지는 살펴보지 않으면 모를 것들이었다.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몇 가지다. ‘안방 뒤 벽지가 축축한 거로 보아 누수가 있는 거 같은데 지붕에서 스며든 거로 보입니다. 누수 지점은 찾지 못했습니다. 안방에서 나오는 마루 세 번째와 다섯 번째 나무는 상해 교체해야 할 겁니다. 마루 바깥 유리문은 집이 오른쪽으로 기울어 꼭 닫히질 않습니다. 건넌방 구들 위쪽은 막힌 듯합니다. 겨울에는 불길이 들어가지 않아 냉골입니다. 볕이 잘 들긴 하지만 창문 역시 집이 기울어 틈이 벌어져 외풍이 심합니다. 마당의 벽오동은 무성해 채소밭으로 난 가지는 쳐줘야 합니다. 마당 수도는 도드라져 겨울에는 동파한 일이 있습니다.’마루 문을 열면 바로 보이는 자리에 편지를 넣어놓고 돌아와 길을 걸으며 아버지께 그런 글까지 남기셨다고 하자 웃으며 하신 말씀이다. “‘까마귀가 덫에 걸린 개를 발견했다. 까마귀는 개가 덫에 걸린 것을 보고 안타까워 개 꼬리를 물고 덫을 풀어준 뒤 땅을 파 묻어주었다’라는 옛이야기가 있다. 유향(劉向)이 쓴 전국책(戰國策)에서 읽었다.” 훗날 원전을 찾은 아버지는 시경(詩經)에서 인용한 고사라고 했다. “시경에는 ‘까마귀가 개를 그리워하고 개는 까마귀의 이타심 있는 행동에 감동해 하늘로 올라온 까마귀와 짝이 되었다’라고 했다”라고 설명했다. 아버지는 “물론 교훈을 위해 쓴 얘기겠지만 미물인 까마귀의 이타적이고 고귀한 행동이 가슴에 오래 남았다”라고 술회하며 “이사 가는 집은 새로 지은 집이니 그런 편지는 없을 거다”라고 우스갯말을 했다.
그날 저녁 이사 간 집에서 아버지는 말씀 중에 고사성어 ‘자리이타(自利利他)’를 인용했다. 불교에서 말하는 개념인 자리이타는 ‘자신을 이롭게 하면서 남을 이롭게 한다’는 뜻이다. 불교의 기본적인 가르침 중 하나이자 가르침을 실천하는 방법의 하나다. 원전은 ‘불설중아아함경(佛說中阿含經)’. 석가모니의 설법집으로, 모두 120권이다. 석가모니가 자리이타를 설파한 말이다. “자신을 이롭게 하면서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이 진정한 이타심이다. 자신을 이롭게 하지 않고는 남을 이롭게 할 수 없다. 남을 이롭게 하지 않고는 자신을 이롭게 할 수 없다.” 아버지는 “자리이타를 실천하는 것은 너와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 오늘처럼 실천하면 평안을 얻을 수 있고 세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거다”라고 했다.
아버지는 “어려운 게 아니다. 내가 먼저 봤으면 내가 먼저 다가가 인사해라”라며 자리이타의 구체적 실천을 요구했다. “그리 하면 어려운 일도 쉽게 풀린다. 사회가 극도의 경쟁을 요구하고 있어 실천하기가 쉽지 않지만 그럴수록 빛이 난다. 경쟁에서 이기는 최선의 길이 이타심이다”며 꾸준한 실천을 당부했다. 특히 아버지는 “내가 손해 보는 듯하지만, 결과는 전혀 그렇지 않다. 내가 마음이 편안해지면 오히려 일이 더 잘 풀린다. 지나고 보면 남을 이롭게 하는 게 곧 나를 이롭게 한다”고 덧붙였다.아버지의 그 편지를 이사 온 사람이 읽었는지는 모른다. 한참 뒤 살던 집을 지나가다 보니 허물고 새로 짓고 있는 중이었다. 새로 짓더라고 말씀드리자 아버지는 그저 웃기만 했다. 아버지는 “까마귀는 일곱 살 아이의 지능이 있다. 하찮은 까마귀가 지닌 몇 안 될 지능 중 이타심을 가진 게 놀랍다”며 반드시 새겨두라고 했다. 아버지의 말씀처럼 쉬운 일인 것 같지만 지키기 어렵다. 학교 들어가기 전부터 손주들에게도 일깨워줘야 할 성품인 건 맞다.
<한경닷컴 The Lifeist> 조성권 국민대 경영대학원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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