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라면 다음 타자는…정부 가격 압박 속 떠는 식품사

추경호 부총리 '라면 값 인하' 권고에 식품업계 '한숨'
라면업계, 13년 만에 가격 인하 검토
사진=뉴스1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라면 가격 인하 권고에 식품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추 부총리가 국제 밀 가격 하락을 거론하면서 라면 값에 제동을 걸자 업계에선 다음 타깃이 누가 될지 우려하는 분위기다. 지목을 받은 라면 제조사들은 가격 인하 검토에 들어간 상태다.

소주 이어 '서민 먹거리' 라면 찍은 추경호…다음은?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0일 서울 영등포구 전국경제인연합회 컨퍼런스센터에서 열린 기업인 간담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이번 간담회는 하반기 경기반등을 위한 경제계의 건의 및 애로사항을 듣기 위해 마련됐다. 사진=한경 DB
추 부총리가 라면 값을 거론하고 나서자 업계에서는 다음 타자에 대한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 정부의 가격 압박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서민 먹거리인 품목을 연달아 정조준했기 때문이다. 추 부총리가 구체적인 상품 가격에 대해 당부한 것은 지난 2월 소주에 이어 라면이 두 번째다.

추 부총리는 지난 18일 KBS ‘일요진단’에 출연해 라면 가격과 관련해 "지난해 9∼10월 (기업들이 라면 가격을) 많이 인상했는데 현재 국제 밀 가격이 그때보다 50% 안팎 내렸다"면서 "기업들이 밀 가격 내린 부분에 맞춰 적정하게 내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의 식품산업통계정보에 따르면 국제 밀(SRW·적색연질밀) 가격은 이달 t당 232달러85센트로 지난해 6월보다 37.3% 떨어졌다.

20일 업계에서는 정부가 그동안 가격 인상에 제동을 거는 수준에서 한발 더 나아가 가격 인하를 주문한 점 등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분위기다. 추 부총리의 발언 속 밀가루가 등장한 만큼 다음 타자로 양산빵, 과자 등이 거론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박상준 키움증권 연구원은 "(추가적으로 품목이 지목된다고 가정한다면) 과자의 경우 주재료가 감자 등으로 다양하고 관련 국제 원재료 가격이 많이 올랐다는 점에서 양산빵이 (과자보다는) 좀 더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말했다.

업계에선 국제 설탕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은 점 등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제빵업계 관계자는 "식품산업은 영업이익률이 통상 한자릿수에 그치고 다수가 1~2% 수준에 불과하다. 밀가루를 제외한 제반 부자재 비용이 상승한 상황에서 가격에 제동을 거는 것은 무리"라고 토로했다.
사실상 가격 인상을 앞둔 유제품 업계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도 나온다. 올해 우유 원유(原乳) 가격을 정하기 위한 협상이 시작된 상황에서 우유가 들어가는 식품 물가가 연쇄적으로 오르는 ‘밀크플레이션(밀크+인플레이션)’ 관측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낙농가와 유업계 관계자 등으로 구성된 낙농진흥회는 지난 9일부터 소위원회를 구성해 원유 기본가격을 조정하기 위한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올해는 원유 L당 69∼104원 범위에서 가격 인상을 논의한다. 제도 개편 전(L당 104∼127원)과 비교하면 상승 폭이 제한됐지만 농가 생산비 상승을 고려하면 원유 가격 인상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장지혜 DS투자증권 연구원은 "원유 가격이 인상될 가능성이 높고 가공유, 발효유, 아이스크림 등 유제품의 원가 부담이 가중되는 상황인 만큼 추가적인 (업계의) 가격 인상 여지가 있다"고 진단했다.

유제품 업계에선 원유 가격이 사실상 오르는 수순인 만큼 추가적인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한 유제품 기업 관계자는 "원유 가격 인상분 만큼 가격에 반영돼야 기업 수익성이 지켜진다. 제품 가격 인상이 단행되지 않으려면 (원유 가격 인상을 방지하기 위한) 농가와의 협의가 우선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 커피원두와 대두유 시세 하락 등에 비춰 커피 전문점, 치킨 프랜차이즈가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앞서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 4월 치킨, 커피, 버거 프랜차이즈 관계자가 참석하는 간담회를 열고 가격 인상 동향을 점검한 바 있다.

라면 기업 가격 검토 들어갔지만…수익성 악화 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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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업계에선 정부가 라면 가격을 정조준한 가운데 라면업체들이 가격을 내릴 가능성이 크다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 과거 이명박(MB) 정부 시절인 13년 전 가격을 인하한 전적이 있기 때문이다. 당시 라면을 시작으로 식품 기업들이 제품 가격 인상을 단행한 바 있다.

라면 기업들은 실제 가격 인하에 대해 검토에 들어간 상태다. 한 라면 업체 관계자는 "어려운 요인들이 있지만 가격에 대해 다각도로 검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경제 위기 때마다 서민의 끼니를 책임진 라면 가격은 1년 사이 10% 넘게 뛴 상태다. 지난달 라면의 물가 상승률은 13%를 기록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지난달 라면의 소비자물가지수는 124.04로 지난해 5월보다 13.1% 상승했다. 전년 동월 대비 증가율은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가 이어진 2009년 2월(14.3%) 이후 14년 3개월 만에 가장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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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같은 라면 물가 상승은 제품 가격 상승이 반영된 결과다. 국내 1위 라면기업 농심은 원가 상승분 등을 고려해 지난해 9월 라면 26종 출고가를 평균 11.3% 인상했다. 2021년 8월 이후 약 1년 만에 가격을 추가로 올린 것. 다음달 팔도, 오뚜기 역시 라면 평균 가격을 각각 9.8%, 11% 올렸고, 삼양식품은 같은해 11월 13개 브랜드 라면 가격을 평균 9.7% 상향 조정했다.

라면 업체들은 가격 인상을 거쳐 수익성을 겨우 회복한 상황에서 가격 인하로 인한 실적 악화를 우려하고 있다. 실제 농심은 가격 인상 전인 지난해 2분기 국내 사업에서 30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한 바 있다. 이에 2022년 연간 영업이익률도 3%대에 그쳤다.여기에 밀가루(소맥분) 외에 전분 등 부자재와 물류비, 인건비, 전기료 등이 전방위적으로 오른 점도 부담 요인이다. 한 라면 업계 관계자는 "가격 인상폭을 제한하기 위해 비용을 최대한 줄인 상황"이라며 "밀 가격만을 이유로 가격을 다시 인하하면 수익성이 곤두박질 칠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정민 한경닷컴 기자 bloom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