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비닛' 속 옛 압수자료로 수사…대법 "위법한 증거수집"

제3자 압수수색 뒤 보관된 자료 관련자 수사에 활용한 기무사
압수수색으로 확보한 자료를 폐기하지 않고 보관하다 이를 근거로 관련 사건의 내사에 착수했다면 이후 별도 영장을 받았더라도 형사 재판의 증거로 쓸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박정화 대법관)는 군사기밀보호법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이달 1일 확정했다.

A씨는 방위산업 관련 무역업에 종사하던 김모 씨에게 군 소형헬기 관련 기밀을 누설한 혐의로 2017년 기소됐다.

수사의 실마리가 된 것은 국군기무사령부(기무사·현 군사안보지원사령부)가 2014년 김씨를 군사기밀보호법위반 혐의로 수사하며 압수한 자료였다. 각종 전자정보가 담긴 저장매체의 사본이었는데 김씨의 혐의 사실과 직접 관련 없는 정보도 다수 남아있었다.

기무사 수사관은 2016년 7월 군 내부 실무자가 김씨에게 군사기밀을 누설했을 가능성을 의심해 서울중앙지검에 보관돼 있던 이 압수물을 대출받았다.

수사관은 이를 바탕으로 A씨 혐의를 파악한 뒤 군사법원에서 서울중앙지검 보관 자료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이메일 기록 등을 확보했다. 이 자료는 A씨를 기소하는 핵심 증거로 활용됐다.

그러나 A씨 재판에서 법원은 1·2·3심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핵심 증거가 위법하게 수집됐다는 이유였다. 대법원은 "수사관이 전자정보 사본의 내용을 탐색하거나 출력한 행위는 위법하다"며 "이를 바탕으로 수집한 전자정보 등 2차 증거는 위법수집증거에 해당해 유죄의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수사기관이 새로운 범죄 혐의의 수사를 위해 무관정보(혐의사실과 관련 없는 정보)가 남아있는 복제본을 열람하는 것은 압수수색 영장으로 압수되지 않은 전자정보를 영장 없이 수색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수사기관은 새로운 범죄 혐의의 수사를 위해 필요한 경우에도 유관정보만을 출력하거나 복제한 기존 압수수색의 결과물을 열람할 수 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