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엔 붉은빛 루비를…조지 발란신 '주얼스' 속 카프리치오!
입력
수정
[arte] 이단비의 발레의 열두 달
카프리치오(capriccio). 갑작스럽고 예측할 수 없는 행동이나 변덕을 뜻하는 이 이탈리아어는 음악에서 주요한 언어로 쓰인다. 특정한 형식없이 자유롭고 활기차게 표현되는 음악을 뜻한다. 그래서 작곡가의 창의적인 면모와 진짜 속내를 들여다볼 수 있는 곡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말로는 기상곡(綺想曲, 奇想曲)으로 불리는데 두 가지 한자로 표기되는 이유도 카프리치오 음악이 갖고 있는 화려한 아름다움과 독창성 때문일 것이다. 전자는 화려하다는 의미를 강조하고 있고, 후자는 기이하다는 의미를 강조한 말이다.
여러 카프리치오 중에 이고리 스트라빈스키(Igor Stravinsky, 1882~1971)의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카프리치오(Capriccio for Piano and Orchestra, 1929)>는 발레와 만나 그 독창적인 매력이 더 빛을 발한 곡이다. 원래 스트라빈스키가 발레를 위해 작곡한 곡은 아니지만 그의 예술적 동지이자 평생 우정을 나눈 조지 발란신(George Balanchine, 1904~1983)이 자신의 발레 작품 안에 이 음악을 썼다.
그 작품은 뉴욕에서 첫 선을 보인 <주얼스(Jewels, 1967)>. 이 작품은 <에메랄드>, <루비>, <다이아몬드> 세 파트로 이뤄져 있고 각각의 보석이 갖고 있는 이미지가 그대로 춤으로 표현됐다. 발레의 동작이 태생적으로 갖고 있는 아름다움은 갖고 있되 특별한 줄거리 없이 보석이라는 테마와 음악이 갖는 이미지를 춤으로 옮겨놓았기 때문에 신고전주의 발레, 네오클래식 발레로 불리는 작품이다.
조지 발란신 <주얼스> 중 ‘에메랄드’와 ‘다이아몬드’ @New York City Ballet
조지 발란신 <주얼스> 중 ‘에메랄드’와 ‘다이아몬드’ @New York City Ballet
각각의 보석마다 다른 음악에 사용됐는데 이 세 가지 보석 중에 스트라빈스키의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카프리치오>는 어떤 보석과 만났을까. ‘기이하고 독창적인 음악’이란 뜻의 카프리치오와 가장 매칭이 잘 되는 보석은 역시 붉은 루비일 것이다. 음악과 붉은 의상을 입은 무용수의 움직임, 작품에서 흐르는 도발적이고 뇌쇄적인 분위기는 <에메랄드>와 <다이아몬드>와는 전혀 다른 매력으로 관객을 사로잡는다.조지 발란신의 <루비>가 다른 두 보석과는 다른 미를 발산하는 이유 중 하나는 고전발레의 문법을 깨는 동작에 있다. 특히 오프밸런스(off-balance)와 플렉스(flex) 동작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발레는 애초에 천상을 향해 추는 춤으로 꼿꼿이 서는 자세가 중요한데, 오프밸런스는 몸의 중심을 세우는 축을 움직여서 허리와 엉덩이가 옆으로 빠질 수 있게 된 것을 의미한다. 밸런스를 깨고 움직였다고 해서 오프밸런스라는 말이 붙은 것. 플렉스는 발목을 꺾는 동작을 뜻한다. 에너지가 위로 향하는 발레에서는 발끝을 세우는 게 중요한 자세였는데 이걸 깨고 발목을 꺾는 ‘변덕’을 보여준 것이다. <루비>에서는 발목뿐 아니라 손목도 꺾어서 바깥을 향하는데 이 점도 고전발레와는 전혀 다른 양상이다. 여러 면에서 창작자의 ‘기이한’ 감성을 발산시키고 있는 작품이다. 이런 점이 스트라빈스키의 카프리치오와 잘 어울린다. 이런 동작들은 고전발레에서는 절대 등장하지 않지만 20세기 이후 모던발레에서는 자주 쓰이게 됐다.
카프리치오에 맞춰 자유롭고 도발적인 매력을 보여주는 <주얼스> 중 ‘루비’ @New York City Ballet카프리치오에 맞춰 자유롭고 도발적인 매력을 보여주는 <주얼스> 중 ‘루비’ @New York City Ballet
카프리치오의 매력은 문학에서도 발산된다. 16∼17세기의 영국문학에서는 ‘기상(conceit, 奇想)’이 인기 있는 표현방식이었다. 전혀 연결할 수 없는 것들 사이에서 공통점을 발견해서 비유로 연결하는 방식이다. 17세기 영국 시인 존 던(John Donne, 1572~1631)은 그의 작품 <벼룩(The Flea)>에서 이런 문구로 사람들을 도발했다. “And in this flea our two bloods mingled be.” ‘이 벼룩이 우리 둘의 피를 빨았으니 우리 둘은 이미 하나’라며 여성에게 수작을 거는 이 시구는 에로틱한 비유와 기상(conceit, 奇想)의 전형이다. 시구 자체에서 카프리치오가 느껴지고 루비의 빨간 빛이 떠올려진다.
때마침 7월의 탄생석은 루비다. 뜨거워지는 여름 날씨와 장마는 계절의 도발이자 카프리치오다. 하지만 발레 <루비>와 보석 루비가 갖는 또다른 이미지는 ‘열정’일 것이다. 기이한 변덕이 창의적 열정과 만난 예술작품들은 여름 날씨의 변덕조차 삶의 카프리치오로 받아들이는 기지를 우리에게 선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