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코가 석잔데"…우크라 지원 두고 분열하는 EU

EU집행위, 우크라 지원 위해 500억 유로 추가 투입
독일, 프랑스 "재정 지출 과도하게 늘어난다"
유럽연합(EU) 우크라이나 지원금을 두고 분열하고 있다. 금리가 급격히 높아진 탓에 각국의 재정 부담도 크게 늘어서다.

EU 집행위원회는 20일(현지시간) 2024∼2027년 EU 기존 확정 예산에 총 660억 유로(약 92조 8000억원)를 더 충당하자고 회원국들에 제안했다. 2027년까지 우크라이나를 장기 지원하는 데 500억 유로를 투입하기 위해서다.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침략에 용감하게 맞서 싸우고 있으며, 이에 수반되는 막대한 비용을 감당하기 위해 우리의 안정적인 재정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경제공동체인 EU는 7년 단위로 장기 예산 계획인 다년간 지출예산(MFF)을 정하고 있다. MFF는 1년 단위 예산을 편성 논의 과정에서 지출 상한 역할을 한다. 재원은 주로 각 회원국 예산에서 충당된다. 예산을 늘리려면 회원국 만장일치 동의 등 정식 예산안 수정 절차를 거쳐야 한다.

유럽의회에서 제안이 통과되면 EU는 330억 유로 규모의 차관과 170억 상당의 지원금을 우크라이나에 제공할 수 있다. 이미 EU는 지난해 말부터 우크라이나에 경제적 지원을 추진했다. 매달 15억 유로를 제공하는 180억 유로 상당의 긴급 지원 패키지에 동의한 것이다. 대출에 따른 이자 비용도 부담하고 있다.EU 회원국들의 입장이 크게 갈리는 지점은 우크라이나에 관한 지원금이다. 지원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재정 부담이 심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독일, 네덜란드 등 주요 회원국들은 이번 예산안에 반발하고 나섰다. 유럽중앙은행(ECB)의 통화 긴축으로 재정 부담이 커져서다. 크리스티안 린드너 독일 재무장관은 "매우 어렵게 예산 협상이 이뤄지고 있다"며 "지금은 회원국들에 더 많은 자금을 요청할 때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프랑스도 회의적인 입장을 내비쳤다. 공공 지출로 인한 재정 적자를 줄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어서다. 브루노 르 마이어 프랑스 재무장관은 "2027년까지 프랑스는 매년 100억유로씩 재정 지출을 줄여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각 회원국이 반발하는 이유는 이자 비용 때문이다. 유럽중앙은행(ECB)가 금리를 급격히 인상한 탓에 부채 관련 비용이 급증하고 있다. 특히 2020년 코로나19 복구 프로그램을 위해 공동 차입한 부채가 8000억유로에 달한다. 이에 따른 이자는 매년 증가했다.

요하네스 한 EU 예산 담당 집행위원은 이달 초 유럽의원들에 "부채 관련 비용은 올해 21억 유로에서 2024년에 40억 유로로 2배 가까이 치솟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때문에 EU 집행위는 이날 이자 비용 상환을 위해 앞으로 4년간 190억 유로를 충당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예산 증액 취지 자체에는 공감하는 모습이다. 한 EU 의원은 FT에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고 러시아 침공을 격퇴한다는 목표에는 논쟁의 여지가 없다"며 "다만 EU의 채권 신뢰도를 보장하기 위해선 재정 균형을 맞춰야 한다"고 했다.한편, EU 집행위는 우크라이나 재건 기금을 상환하는 데 쓸 재원을 창출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주로 EU 내 세금과 부과금을 인상해서 마련할 예정이다. 대다수 회원국의 산업체가 부과금 대상이기 때문에 만장일치 동의를 얻는 건 불가능하다고 FT는 짚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