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변 확대 애먹는 女축구…'열풍' 속 선수 수 10년 전보다 15%↓

유소녀 전문 선수 '감소세'…"열악한 처우 탓 학부모에게 권유 못 해"
월드컵 나서는 대표팀에 기대…"선전하면 사회가 들여다볼 것"
생활 체육 쪽에는 '열풍'이 분다고 하지만 전문 선수와 직업인으로 꾸려진 '여자축구계'의 상황은 어렵다는 게 우리나라 당사자들의 인식이다. 여자축구 간판 지소연(수원FC)은 지난해 12월 실업축구 WK리그 시상식에서 SBS TV 예능 '골때리는 그녀들'(골때녀)의 성공과 대비되는 현실을 우회적으로 표현했다.

"골때녀를 통해서 많은 여성분이 축구를 자연스럽게 접하게 돼 좋고요.

하지만 여자축구 저변을 확대하는 데까지는 미치지 못한 것 같아요. 선수들이 노력해 어린 친구들이 축구를 접하게끔 만들어야 할 것 같아요.

"
실제로 21일 연합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동호인이 아닌 '전문 선수'는 10년 전보다 15%가량 감소한 것으로 파악된다.

지난 5월 기준 대한축구협회에 등록된 여자 선수는 1천510명이다. 2014년(1천765명)보다 200명 넘게 줄었다.

이마저도 바닥을 찍은 2020년 이후 완만하게나마 회복한 수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에 따른 공포가 극심했던 2020년에는 1천338명까지 떨어졌었다.
연령대를 세부적으로 보면 선수 풀의 문제가 명확해진다.

대학과 WK리그 소속을 합친 성인 선수의 수는 10년째 '보합세'를 이어오고 있다.

2014년 424명이었던 성인 선수는 올해 450명으로 410∼450명 사이에서 소폭 변동해왔다.

그러나 '유소녀 전문 선수' 규모는 하락세가 뚜렷하다.

2014년 1천341명이었다가 2020년 916명까지 떨어졌고, 이후에는 소폭 올라 겨우 1천명대를 유지되고 있다.

저변이 넓고 상층위로 갈수록 좁아지는 '피라미드'를 꾸린 남자축구와 달리 여자축구는 상하층 규모가 차이가 적은 '사각형 구조'였는데, 이런 추세가 심해졌다.

저변 확대에 애를 먹는 이유에 여자축구 생태계 층위별로 진단이 다르다.

선수 처우가 과연 열악한지 주체별 판단이 다르기 때문이다.

여성으로만 강사진을 꾸려 은퇴한 선수를 자주 접한다는 세계로풋볼클럽의 강수지 대표는 선수들의 사정이 실제로 열악해 생태계 전체에 악영향을 주고 있다고 본다.

2017년 사라진 이천 대교에서 뛴 강 대표는 "우리 팀에도 전문 선수로 가고픈 유소녀들이 있는데, 학부모님들께 먼저 비전을 제시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며 "WK리그에 안착해도 연봉 이야기가 나오면 말씀드리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여자축구 최상단의 WK리그는 드래프트로 새 선수를 뽑는데, 지명 단계마다 연봉이 정해져 있다.
1차 지명 때 이름이 불리면 3천만원, 2차 지명으로 선발되면 2천700만원이다.

3차는 2천400만원, 4차 이하로는 2천만원이 최고 연봉이 된다.

선수 선발을 별도로 진행하는 상무를 뺀 7개 구단이 지난해 말 드래프트를 실시해 23명이 WK리그에 입성했는데, 이 중 9명이 4차 이하로 지명돼 '2천만원 연봉'의 당사자가 됐다.

강 대표는 "요즘 선수들이 그만두고 캐디로 빠진다.

지인인 은퇴 선수 중 30%는 캐디로 간 것 같다"며 "나쁜 직업이라는 게 아니다.

축구계 인력이 생태계 내 자리 잡지 못하고 대책이 없이 이탈하는 게 문제"라고 짚었다.

이어 "인센티브를 챙기는 정상급 선수가 아니면 생활을 이어가기 어려운데 캐디로 열심히 일하면 훨씬 많은 돈을 번다.

캐디 선배가 많아져 후배도 축구계에 몸담기보다는 일찍 그 일을 한다"며 "축구로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은데 가능성이 외면받는 게 안타깝다"고 했다.

반면 WK리그를 진행하는 한국여자축구연맹 측은 개선할 필요성은 있더라도, 현 처우 자체가 심각하게 열악하지는 않다고 본다.

연봉 상한 5천만원에 30%까지 줄 수 있는 계약금을 더하면 6천500만원이 명목적인 최다 수령액이지만, 각종 승리 수당 등 인센티브를 더해 억대 연봉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연맹 관계자는 "세계적으로 다 '투잡'이다.

우리처럼 축구만 하게 해주는 곳이 많지 않다"며 "우수한 해외 선수가 한국에 왔다가 괜히 끝까지 남아있으려 하는 게 아니다"라고 했다.
실제로 지난해 발간된 국제축구연맹(FIFA)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30개 여자 리그 평균 연봉은 1만4천달러(약 1천790만원)로, 우리나라 최저치보다 낮다.

다만 카메룬·나이지리아 등 한국보다 경제 수준이 낮은 국가도 상당수 집계됐다.

뉴질랜드(0명), 스위스, 코스타리카(이상 2명), 이스라엘(6명) 등 상당수 국가가 한 팀에서 순수하게 선수 생활로만 생계를 버는 인원도 한국과 달리 적은 것으로도 나타났다.

이 관계자는 저출생 추세, 클럽 중심의 풀뿌리 축구에 맞지 않는 현행 지원금 제도의 변화 등이 주된 문제라고 짚었지만, 2009년 리그 출범 이후 물가 상승폭을 고려해 연봉을 전반적으로 올려야 할 필요성에는 공감했다.

이어 "연맹도 선수들의 가치를 위해서 올릴 필요가 있다고 본다"면서도 "실업팀과 대화를 시도하고 있지만 애초에 시장성이 확보된 상태에서 시작한 게 아니라 한계가 있다"고 했다.

대한축구협회의 지윤미 여자축구·저변확대 팀장은 "생활 체육에서 엘리트로 넘어오게 하는 유인이 남자보다 약하다"며 "지소연 선수처럼 성공한다고 해도 다른 스포츠 스타처럼 많이 번다는 이미지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부 팀은 겨우 운영하는데 재정에 압박이 가해지면 그마저 못하게 되는 사태도 생긴다"며 "판을 키우며 구단별 재정 자립성을 확보하는 노력이 동시 진행돼야 한다"고 짚었다.
지 팀장은 생활체육-유소녀-엘리트-WK리그-국가대표로 이어지는 생태계의 선순환을 추동하려면 '여자 축구 선수'로서 경력 경로가 우선 굳어져야 한다고 했다.

선수를 그만두더라도 지도자나 행정가, 유소년 양성 등 다양한 직업으로 축구계에 머물면서 생활을 이어가는 선례가 많아져야 한다는 주문이다.

그런 만큼 은퇴 선수 가운데 유소녀의 '롤 모델'이 될 사람이 나와야 한다고 짚었다.

지 팀장은 "지소연 선수도 잘 알려졌지만 현역이다.

여성 지도자가 더 발굴돼야 한다는 필요성에 공감한다"며 "협회도 연령별 대표팀 감독에 황인선 등 여성 지도자를 임명하고 있다"고 했다.

각자 진단은 다르지만 세 관계자는 모두 1달 뒤 호주·뉴질랜드에서 열리는 2023 FIFA 여자 월드컵에서 콜린 벨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의 선전에 기대를 감추지 못했다.

대표팀의 성공이 대중적 인지도를 높이고, WK리그를 비롯한 생태계 전체로 향하는 '낙수효과'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에서다.

국가대표 출신인 강 대표는 "인프라가 미비한데 대표팀은 성적은 내야 하는 구조라는 걸 안다. 부담이 크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선전은 곧 사회가 여자축구를 들여다볼 계기가 된다"고 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