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한 장으로 경계를 넘은 신부들, 그걸 카메라에 담은 김옥선 작가

성곡미술관 김옥선 개인전 '평평한 것들'

결혼이주여성·재일교포 2세·혼혈아 등
이방인과 경계인의 삶, 카메라에 담아
김옥선, '아다치 초상'(2023)

1910년 어느 날, 조선에 살던 23세 여성 최사라 씨는 흑백사진 한 장을 들고 미국 하와이로 떠났다.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사진 속 하와이 교포 이내수 씨와 결혼하기 위해서다. 한국 1호 '사진 신부'(picture bride) 사례다.20세기 초 하와이 한인 이주민들은 이런 방식으로 결혼을 했다. 나이, 성격, 집안도 모른 채 달랑 사진 하나로 부부의 연을 맺었다. 외로운 타지에서 일하던 남자들은 고국에서 온 신부를 얻을 수 있는 기회였다. 젊은 여자들은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한국을 떠났다.

그렇게 14년간 하와이로 건너간 사진신부 1000여 명은 중견 사진작가 김옥선(56)의 영감이 됐다. 그는 사진신부가 낯설지 않았다. 그 자신도 외국인과 결혼한 후 서울을 떠나 제주에 정착한 이방인이었기 때문이다. 30년간 섬에서 경계인으로 살아온 나날은 자연스레 100년 전 사진신부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외화벌이' '독립운동' 등 거시적인 맥락 속에서 지워져버린 한 명 한 명의 삶이 궁금했다.
김옥선, '신부들, 사라'(2023)그래서 그는 '오늘날의 사진신부'를 찾기 시작했다. 베트남, 몽골, 중국 등 곳곳에서 한국으로 온 결혼 이주여성들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다. 서울 경희궁 뒷편, 성곡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개인전 '평평한 것들'에서 볼 수 있는 '신부들, 사라'(2023) 연작은 그 결과다. 때로는 경계에서 부유하고, 때로는 그 속에서 땅에 발을 딛으려고 부단히 애쓰는 사람들의 순간을 묵묵히 기록했다.

아오자이 등 전통의상을 입은 여성들의 모습은 어딘지 촌스러워보인다. 보라색, 노란색 등 원색이 돋보이는 레트로한 배경과 인물이 도드라지는 촬영기법 때문이다. 모두 김 작가가 의도한 것이다. 그는 세 개의 방향에서 조명을 쏴서 빛의 효과를 극대화하는 고전적인 방법을 썼다. 사진도 일반 스튜디오가 아닌 황학동의 오래된 사진관을 빌려 찍었다.

사진관을 거쳐간 수많은 한국인의 얼굴과 결혼이주여성의 초상을 같은 선상에 놓고 싶어서였다. 원래 살던 땅을 떠나 뿔뿔이 흩어지고, 그 속에서도 고유의 문화와 정체성을 지켜나가는 사람들. 이들도 역시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일원이라는 게 김 작가의 사진이 던지는 메시지다.
김옥선, '빛나는 것들'(2023)

우리 곁에 있는 이방인들은 이들뿐만이 아니다. 재일교포 2세, 제주 국제학교 원어민 선생님, 일본인과 미국인 부부와 그들의 자녀…. 열대지방에서만 자라는 야자수가 인간에 의해 이식된 후 제주의 상징물로 자리잡았듯, 서로 다른 지역에서 왔지만 어느 새 제주에서 자신만의 삶을 꾸리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김 작가는 셔터를 눌렀다.

이번 전시가 더 매력적인 건 미술관 그 어디에도 '디아스포라'라는 말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김 작가의 20년 작품세계를 관통하는 메시지는 '디아스포라'지만, 그는 이런 단어로 관람객을 설득하려 하지 않는다. 그저 있는 그대로를 평평하고, 담담하게 보여줄 뿐이다. 전시는 8월 13일까지 열린다.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