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영화야? 환불해!"…김완선도 짝사랑한 거장 왕가위 [김익환의 누벨바그워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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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김익환의 누벨바그 워치1990년 12월 22일. 서울 중구 중앙극장에서 큰 소동이 났다. 영화 중간에 관객들이 뛰쳐나와 매표소에 환불을 요구했다. “이게 무슨 영화냐”며 난리를 친 관객들의 소동은 이튿날 ‘영화관 꼴불견’이란 제목으로 기사까지 났다. 홍콩의 거장 왕가위(왕자웨이)의 두 번째 영화 ‘아비정전’이 사건의 발단이었다.
관객의 분노를 불렀지만 이 영화는 이후 상당한 반향을 불렀다. 장국영이 흰색 러닝셔츠 차림으로 맘보춤을 추는 이 영화의 한 장면은 숱하게 패러디 됐다. 왕가위 영화 대부분은 우울하고 외로운 홍콩인의 모습을 주제로 삼는다. 이들의 이야기를 뛰어난 영상미와 감각적 배경음악(OST)으로 묘사했다. 가수 김완선부터 전 세계 2030세대들의 사랑을 받은 왕가위는 어떤 영화를 만든 걸까.
범죄 영화로 데뷔
왕가위는 1958년생으로 중국 상하이에서 태어났다. 5세 때 홍콩으로 이주한 그는 1988년 영화 ‘열혈남아’로 데뷔했다. 1990년작 ‘아비정전’과 1993년작 ‘중경삼림’, 2000년작 ‘화양연화’가 대표작으로 꼽힌다. 그의 작품인 ‘해피투게더’와 ‘화양연화’는 프랑스 칸영화제에서 각각 감독상, 남우주연상(양조위)을 수상했다. 아시아를 대표하는 감독으로 전 세계에서 상당한 팬층을 거느리고 있다.그의 첫 작품 ‘열혈남아’는 홍콩 누아르(범죄 스릴러) 영화였다. 유덕화가 권총으로 범죄조직에 복수하는 내용으로 ‘영웅본색’ ‘첩혈쌍웅’ 인기에 편승해 흥행에 성공했다.두 번째 작품인 ‘아비정전’도 비슷한 누아르라고 생각한 관객들이 많았다. 이 영화를 들여온 한국 배급사도 흥행을 위해 ‘아비정전’을 액션물로 포장했다. 당시 아비정전 포스터에 ‘어깨 걸어 굳게 맹세한 청춘의 피울음’이라는 글귀까지 달았다. 하지만 ‘아비정전’은 누아르가 아닌 서정적 로맨스물이었다. 왕가위의 영상 스타일이 본격화한 첫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영화의 주인공 아비(장국영)는 축구장 매표소에서 일하는 수리진(장만옥)과 사귀지만 매몰차게 헤어진다. 이후 친어머니를 찾아 필리핀을 찾는 내용이다. 사랑이 이어지지도 않고, 주인공인 아비가 황당하게 죽고 영화가 끝난다. 이야기 전개가 매끄럽지 않은 데다 시원한 액션도 없다. ‘영웅본색’과 같은 누아르를 기대한 관객들은 극장 문을 부술 만큼 화를 냈다.
왕가위 짝사랑한 김완선
‘중경삼림’은 2030 여성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모은 작품이다. 여자친구와 이별한 경찰663(양조위)이 단골 샐러드 가게 알바생인 페이(왕페이)를 만나 새로운 사랑을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파란색 경찰 제복을 입은 왕가위가 처음 등장해 머리를 쓰다듬는 장면이 가장 인기가 많다. 이 장면 와중에 흘러나오는 OST ‘캘리포니아 드림’도 영화를 계기로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이 장면을 수백 번 봤다는 사람들이 많다.이 영화의 스타일이 얼마나 현대적인지를 보여주는 사례를 일본에서 찾을 수 있다. ‘중경삼림’은 개봉 23년이 지난 뒤인 2018년에 일본의 넷플릭스에 수록됐다. 이 영화는 당시 일본 2030 여성들에게 상당한 인기를 끌면서 문화 현상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여자 주인공인 왕페이는 ‘중경삼림’을 계기로 국제적으로 상당한 인지도를 쌓았다. 이 배역에는 당초 한국 가수인 김완선이 물망에 올랐다고 한다. 김완선은 20대 초반이던 1992년 은퇴하고 2년 동안 홍콩에 거주할 당시 홍콩 영화계와 접촉했다. 당시 왕가위 감독과도 배우 지망생으로서 여러 차례 만났다고 한다. 하지만 언어적 장벽 탓에 결국 캐스팅은 불발됐다.김완선은 한 방송에 출연해 당시 유부남인 왕가위를 짝사랑했다고 고백했다. 그는 “키도 크고 잘생긴 왕가위 집 앞에 찾아가기도 했다”고 했다. 그는 당시 왕가위 감독을 잊으려고 고민했고 한달 동안 잠을 설쳤다고도 했다.
반환 앞둔 홍콩인의 불안…화양연화 그린 영화
왕가위 영화는 감각적 영상미와 한 번 들으면 잊을 수 없는 OST의 힘이 상당하다. 일각에서는 그의 영화를 ‘눈으로 먹는 사탕’이라고 평하기도 한다. 배우 장국영 양조위 장만옥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은 왕가위 영화에서 찾을 수 있다. ‘화양연화’에서 묵직한 첼로 곡인 ‘유메지 테마’가 흘러나오면서 양조위와 장만옥이 스쳐가는 장면은 두 사람의 전성기로 통한다.그의 영화 상당수는 이뤄지지 않은 젊은 홍콩 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다. 현실의 시련과 아픔을 잊기 위해 가장 애틋했던 순간을 필사적으로 간직하려고 한다. 왕가위는 애틋했던 순간을 수려한 영상미와 감각적 OST로 연출했다.홍콩의 정치적 환경과 그의 영화를 연결 짓는 해석도 많다. 홍콩의 중국 반환 시점인 1997년이 다가올수록 홍콩인들의 불안감은 갈수록 커졌다. 이 불안을 잊기 위해 홍콩의 전성기인 1960년대를 영화의 배경(화양연화, 아비정전)으로 삼고 있다는 이야기가 많다. 홍콩에 반환된 이후 왕가위 감독의 심정은 어땠을까.2000년 작품인 ‘화양연화’의 마지막 장면이 이를 대변하는 듯하다. 마지막 장면에 주인공인 양조위는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사원을 찾는다. 캄보디아 최전성기였던 앙코르와트의 현재 모습은 낡고 빛바랬다. 영화에 나오는 캄보디아의 현재는 정치적으로 혼란스럽고 어지러운 시점이다. 전성기가 지나고 중국에 흡수된 홍콩의 현재 모습과 닮아 있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