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죽자 남편은 춤췄다…70대 청년의 영원한 러브레터 [영화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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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사랑하는 당신에게(Last Dance)
영화 '사랑하는 당신에게'는 어느 날 노부부에게 일어난 갑작스러운 죽음과 이를 치유해 나가는 과정을 그린다. 보통 이런 주제를 다룬 영화라면, 어둡고 진지한 신파를 떠올릴 수 있겠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다. 이 영화는 상실에 관한 유쾌한 극복기이자, 밝고 화사한 러브 스토리다. 홀로 남은 제르맹에겐 아내를 잃은 것보다 더 큰 어려움이 있다. 자식들이다. '걱정이 많은' 아들과 딸, 며느리는 제르맹을 극성맞게 보호한다. 당번 요일과 시간표를 짜서 자식과 손주들이 번갈아 가며 매일 찾아온다. 전화기는 수시로 울려댄다. 다 먹지도 못할 음식들로 냉장고는 넘쳐난다. (제르맹은 시도때도 없이 동네 고양이들을 다 불러 배불리 먹인다!)
그때 제르맹은 오래 전 아내와의 약속이 떠오른다.
"우리, 누가 먼저 세상을 떠나든, 남은 사람이 상대가 하고 싶어했던 일을 마무리 짓자."
영화는 춤 장면에만 매몰되지 않는다. 자식들의 걱정을 덜기 위해 춤 연습을 비밀로 한 제르맹에겐 하루 하루가 스파이 작전과 같다. 집을 몰래 빠져나오고, 이웃에게 거짓말을 하는 장면에선 웃음이 터진다.
영화는 제르맹이 죽은 아내에게 매일 쓰는 편지들로 서사를 이어간다. 제르맹은 빨간 트레이닝복을 입고 매일 춤 연습을 하고, 그 감정을 담아 아내에게 편지를 쓴다. '무사히 공연을 마치고 나면, 비로소 당신과 작별할 수 있을까? 보고싶어, 영원히 사랑해. -당신의 제르맹.'
르에리세는 "97세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활기 넘치는 할아버지를 보며, 노년기 역시 사춘기처럼 되돌릴 수 없는 변화와 마주하는 인생의 한 단계라는 것을 알게 됐다"고 했다. 영화 곳곳에서 어린 아이같고, 열정 넘치는 청년과 같은 제르맹의 모습은 감독이 자신의 할아버지에게 바치는 헌사와도 같다.
스페인의 '피나 바우쉬'로 불리는 세계적인 안무가 라 리보트와 그의 무용단원들을 스크린에서 만나는 즐거움도 크다. 2020년 베니스 비엔날레 평생 공로상인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라 리보트는 르에리세와 함께 예술적 미장센과 음악에만 치중해온 무용 영화의 공식을 깨고 '누구나 춤을 출 수 있고, 춤이 삶을 바꿀 수 있다'는 본질을 이야기하는 데 성공했다.
액션물을 주로 연기해 프랑스 최고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은 국민배우 프랑수아 베를레앙은 몸에 꼭 맞는 옷을 입은 듯 제르맹을 연기했다. 76년 역사의 스위스 최대 영화제 로카르노영화제에서 지난해 관객상을 받았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