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들 줄지어 사 먹는데…" 대박 가게 사장님 '속앓이' 이유 [여기잇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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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잇슈]"24시간 내내 폐쇄회로(CC)TV만 보고 있을 수도 없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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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핫플된 '무인 아이스크림 매장'
잇따른 절도·도난에 업주들 '골머리'
경각심 위한 교육 필요성 목소리도
서울 강남구 개포동에서 2년째 무인 아이스크림 매장을 운영 중인 김모 씨(60)는 "학생들이 많이 오는 시간에는 직접 가서 청소하면서 지켜본다든지, 사람을 따로 둔다든지 하는 식으로 계산하지 않고 훔쳐 가는 행위를 방어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김 씨는 이어 "잇따른 절도 및 도난 사건에 얼마 전부터 '무인 반 유인 반' 형태로 매장을 운영 중"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도난 사건이 자주 발생하는 오후 11시부터 오전 7시까지는 아예 문을 닫는다는 업주도 봤다"며 "우리 매장의 경우에도 가족들이 돌아가면서 가게를 보는 식으로 계속 '여기도 사람이 있다', '주인이 있다'는 걸 알리고 있다"고 털어놨다.
"학생들 줄지어 사 먹는데"…마냥 웃지 못하는 업주들
학원가와 학교, 아파트 단지 인근에 있는 무인 아이스크림, 과자 매장은 학생들의 '핫플'이다. 평일 이른 아침에도 등굣길에 들러 주전부리를 구매하는 학생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21일 오전 8시 서울 강남구 한 아파트 단지 근처 무인 매장에서 마주친 중학생 박모 씨(남, 15)는 "요즘 날씨가 더워졌는데 이곳이 편의점보다 싸서 자주 사 먹는다"며 "지켜보는 사람이 없어서 편하게 사 먹을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중학생 황모 씨(여,14)도 "아침에 학교 가기 전 이곳에서 친구들을 만나 음료수 1개와 아이스크림 1개 사 가는 게 요즘 필수코스"라며 "직원분이 따로 없어서 편하고, 수다 떨다 가기에도 좋다"고 말했다.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무인 매장에서는 아이스크림, 과자, 음료수뿐 아니라 500원~1000원가량의 캐릭터 장난감 등도 판매하고 있다. 김 씨는 "평일 오후 3~4시가 되면 하교한 학생들이 줄지어서 들어오는데, 과거에 학생들이 학교 끝나고 구멍가게나 문구점에 들리는 것처럼 지금은 이곳이 아이들의 소통 공간"이라며 "가격도 비싸지 않아 서로 먹고 싶은 걸 사줄 수도 있고, 어른들 간섭 없이 본인들이 직접 고르고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좋아하는 듯하다"고 말했다.이런 무인 매장은 대개 24시간 운영된다. 매장 내 계산대인 키오스크로 카드, 현금, 계좌이체 등 다양한 방식으로 구매가 가능하다. 키오스크 사용이 어려운 이들을 위한 저금통도 따로 있다. 계산대가 발에 닿지 않는 아이들을 위한 발 받침대 등도 준비해 뒀지만 계산을 하지 않고 나가는 사례도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매장 벽 곳곳에는 'CCTV 녹화 중. 이곳은 도난 방지용 CCTV가 24시간 촬영 녹화 중입니다'라는 문구가 빼곡히 적혀있음에도 업주들은 절도, 도난 사건을 막기는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매장 내 실제 절도 사례를 경고문으로 부착하며 적극적으로 대응에 나선 무인 점포 업주들도 나타났다.최근 자신이 운영하는 무인 매장에 절도 장면이 담긴 CCTV 영상 캡처를 게재한 한 업주는 "'반드시 범인을 잡고 꼭 돈을 보상받겠다' 이런 목적보다, 이곳에 방문한 다른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갖기 위해 붙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울 무인점포 범죄 한 달 96건…잇따른 범죄 어떻게 막나
19일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보고서 '무인점포의 범죄 실태 및 형사정책적 대응 방안 연구'에 따르면 2020년 9월부터 지난해 1월까지 17개월간 서울에서 발생한 무인점포 범죄는 모두 1640건으로 매달 96건꼴이었다. 이 중에서 절도가 1377건으로 전체의 84%를 차지했으며, 분실·도난 카드 도난카드 부정사용으로 인한 여신전문금융업법 위반 6.7%(110건), 점유이탈물 횡령 5.2%(85건), 재물손괴 2.4%(40건)가 뒤를 이었다.업종별로는 무인 아이스크림·과자점(1000건·61.0%)이 제일 범죄에 취약한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피의자 연령대가 파악된 157건 중 57.3%(90건)는 10대였고 20대가 16.6%(26건)로 뒤를 이었다. 한 무인 아이스크림 매장 업주는 "우리 매장에서 물건을 훔치는 70~80%는 학생들인데 2~3명이 와서 '재미있다'고 장난치다가 그냥 가져가는 경우도 많다"며 "초등생 비율이 높은데 이런 친구들을 잡고 보면 부모가 용돈을 안 줬다던가, 가정적으로 외로움을 느낀다거나 하는 경우가 많다"고 토로했다.연구진이 2019년 1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선고된 1심 판결 147건을 분석한 결과 절도 사건(113건) 평균 피해액은 37만원으로 나타났다. 손괴(10건)는 평균 286만5000원이었다. 하지만 경찰 신고를 거쳐 피해 보상까지 받은 경우가 많지 않다는 게 업주들의 설명이다. 한 업주는 "올해에만 경찰 신고를 4번 정도 했고, 합의하고 간 건 한 분 정도"라며 "학생들이 훔친 건은 학부모들이 와서 대신 사과를 하고 배상을 한 경우도 있는데, 대부분 2~3만원 정도 받고 끝낸다"라고 말했다.지난해부터 서울 시내 경찰서들은 양심 거울과 경찰 영상·등신대를 무인점포에 제공하고 순찰을 강화하는 등 무인점포 범죄 예방 활동을 강화해온 바 있다. 하지만 여전히 잇따른 범죄에 일각에서는 학교나 교육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무인매장에 대한 이해 및 절도 예방 교육'을 진행해야 하지 않겠냐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소액으로 시작된 절도가 나중에는 더 큰 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학생들의 경각심을 일깨우고, 누군가에게는 재산상의 막대한 피해를 가져다줄 수 있다는 점 등을 알려야 한다는 것.한 무인 점포 운영자는 "일부 학생들을 중심으로 소액으로 물건을 훔치면 경찰서까진 가진 않는다는 인식이 퍼져있는 것 같다"며 "무인 매장은 앞으로 더 늘어날 테니 학교나 교육청 차원에서 교통지도를 하듯 경각심을 일깨우는 교육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학생들이 무인점포를 양심적으로 대하기 위해선 관련된 교육을 제대로 받아야한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김세린 한경닷컴 기자 celin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