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3년 192학점 이수해야 졸업…잘 가르치는 교사엔 인센티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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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교육 강화 4대 정책교육부가 21일 내놓은 공교육 경쟁력 제고 방안은 최근 가파르게 하락한 학생들의 기초학력을 국가가 책임지고 끌어올리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학생들을 경쟁에서 자유롭게 해준다는 명목으로 학업성취도 평가를 표집 평가로 전환하고 획일적인 평등주의 교육 정책을 추진한 게 결국 공교육 약화, 사교육 팽창이라는 결과를 낳았다는 문제의식에서다.
○학생·교사 역량 쌍끌이 향상 나서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학생과 교사 역량 개선을 위한 ‘공교육 경쟁력 제고 방안’을 발표했다. 먼저 학생들의 기초학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학력진단을 전면 도입한다. 특히 성장과 교육에 중요한 시기로 꼽히는 초등학교 3학년과 중학교 1학년을 ‘책임교육학년제’로 지정하기로 했다. 초3은 읽기, 쓰기, 셈하기를 기반으로 교과 학습이 시작되는 시기다. 중1은 중등교육이 시작되는 단계로 학력 격차가 벌어지기 쉽다. 교육부는 이 시기 전체 학생이 참여하는 성취도 평가를 시행해 아이들의 수준을 제대로 파악한다는 계획이다. 진단 결과로 맞춤형 교육도 제공한다. 교육부는 “정규수업 및 방과후 지도, 인공지능(AI) 맞춤형 학습, 학습 관리 튜터링 등을 연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수업을 잘하는 교원이 우대받을 수 있도록 인사, 보수, 연수 등의 교원 보상체계도 대폭 손질한다.
○이수 못 하면 졸업 못 하는 고교학점제
2025년 고교학점제 전면 도입은 모든 학생이 똑같은 수업을 받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적성과 대입 진로 방향에 따라 원하는 수업을 골라 듣게 함으로써 창의·융합적인 인재 양성을 꾀하기 위해서다. 학생들이 자신이 원하는 과목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있는 교실로 찾아가는 방식이다. 성취도 40%와 과목 출석률(3분의 2 이상) 기준을 통과하지 못하면 이수할 수 없다. 하위권 학생은 수업을 더욱 신경 써서 들어야 하는 셈이다. 이수 기준에 도달하지 못한 학생은 방과 후나 방학 중 보충지도 등을 받게 된다.학생들은 고등학교 3년 동안 졸업을 위해 공통 이수 과목 48학점을 포함, 192학점을 이수해야 한다. 1학점을 취득하기 위해서는 50분짜리 수업을 16번 들어야 한다. 1주일에 32시간(하루 평균 6.4시간)씩 한 학기에 32학점을 소화하는 체제다. 현재 고교생 학습량도 3년간 192학점으로 동일하다. 교육부 관계자는 “지금까지는 성적이 낮은 학생들은 앉아만 있어도 고등학교 졸업이 가능했지만 이제는 공부하고 과목을 이수해야 졸업할 수 있게 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공통과목은 최소한의 내신 변별을 위해 석차 9등급 병기를 유지한다. 당초 5등급제로 바꾸는 것을 검토했지만 학교 혼란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9등급 유지로 방향을 틀었다. 학생들은 소속 학교에서 원하는 과목이 개설되지 않았다면 다른 학교와의 온오프라인 공동 교육과정이나 지역 대학, 연구기관 연계 수업을 들을 수 있다.
다양한 교육을 제공하기 위해 자립형사립고, 외국어고, 국제고를 존치하는 대신 전국 단위로 학생을 모집하는 자사고 10곳에 대해서는 20% 지역인재 할당제를 새로 도입한다.다만 이날 발표한 일부 정책이 사교육을 오히려 부채질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먼저 학력진단의 전면 확대가 또다시 학교별 줄 세우기로 흐를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 경우 시·도교육감의 협조를 얻기 어려울 수 있다. 서울교육청은 이번 대책을 환영한다면서도 “평가 결과를 공유한다면 자칫 본래 의도 및 목적과 달리 학교 간 서열화, 낙인 등의 부작용 우려가 있어 이에 대한 협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자사고와 특목고 존치가 사교육 수요를 늘릴 수 있다는 일각의 우려도 여전하다. 이에 대해 이 부총리는 “이미 사교육 유발 요인을 제거하는 대책이 같이 마련됐다”며 “사교육을 줄이는 것만큼이나 교육의 다양성·자율성도 중요해 내린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다양성과 자율성을 기반으로 한 맞춤형 교육이 교원을 감축하는 상황에서 실현하기 어려운 목표라는 지적도 나왔다. 교육당국은 2027년까지 초·중등 교사 신규 임용 규모를 최대 30% 가까이 줄이겠다고 밝혔다. 신규 임용 교사 수가 줄어들면 교사 1인당 업무량이 상대적으로 증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혜인 기자 he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