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 힘겹다"면서도…이 高3들이 창업에 뛰어든 이유 [긱스]

대부분의 고등학생에게 입시는 지상과제입니다. 주어진 시간은 한정적입니다. 창업 활동은 성인도 버거울 정도의 집중력이 요구됩니다. 대입에 일부 활용이 가능하더라도, “가성비가 떨어진다”며 부담을 느끼는 학생이 많은 이유입니다. 그럼에도 자신의 업체를 만들고, 서비스를 알리기 위해 전력투구하는 이들의 목적은 외려 순수합니다. 사회 경험을 미리 하기 위해, 친구들과의 활동이 재미있어서 또는 ‘시장 혁신’이란 큰 목표를 내거는 학생도 있습니다. 한경 긱스(Geeks)가 국제청소년창업대회 ‘세이지월드컵’의 국가대표 팀들을 만나 고교 창업을 택한 이유를 물었습니다.

“‘로톡 사태’를 보고 법조인의 꿈을 버렸습니다. 우리 업체가 공격받더라도, 또 다른 후발주자가 다시 길을 열어줄 겁니다.”

국제청소년창업대회 ‘세이지월드컵’은 45개국의 만 13세에서 19세 청소년 창업가가 참가하는 글로벌 대회다. 이 대회에 참가할 업체를 뽑는 국내 선발전에서 1위를 차지한 ‘펜스’(용인외대부고 홍진솔·김도훈·이정인)는 인공지능(AI) 기반 소송 도우미 챗봇 서비스를 개발했다. 팀을 이끄는 홍진솔 펜스 대표는 “민사소송의 72%가 나 홀로 소송일 정도로 국내 법률 시장은 혁신이 시급하다”며 “폐쇄적인 소송 시스템 자체를 바꿔가고 싶다”고 말했다. 펜스는 9월 한국 국가대표 자격으로 이탈리아에서 열리는 본선 대회에 참가한다.
세이지월드컵 한국 대표로 선발된 용인외대부고 펜스 팀. 왼쪽부터 홍진솔 대표, 김도훈, 이정인 군.
홍 대표는 용인외대부고 3학년이다. 남들은 수능 준비에 한창일 때, 그는 창업에 몰입하고 있다. 중학교때까지 꿈은 법조인이었다. 이른바 로톡 사태에서 스타트업과 변호사 단체가 갈등을 일으킨 것은 장래희망을 바꿨다. 고등학교 1학년 때인 2021년, 그는 홀로 예비 창업에 도전했다. 나홀로 소송을 가이드해주는 사이트를 만들어 꾸준히 수백명의 방문자를 모았다. 이듬해까진 대회에 출전해 역량을 점검했다. 몇몇 대회에서 수상하자 의욕은 더 커졌다.

학교에서 창업 파트너를 찾아 나섰다. 가장 필요한 인력은 개발자였다. 전교에서 개발을 제일 잘한다는 같은 학년의 김도훈 군을 설득했다. 김군은 한국정보올림피아드 국가대표 상비군 출신 개발자다. 교내 라크로스 동아리에서 만난 2학년 후배 이정인 군까지 합류했다. 홍 대표가 떠올린 사업 아이템은 리걸테크였다. 판결문 검색 시스템을 만들고 이를 AI로 강화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침 SK텔레콤의 코버트(KoBERT), 오픈AI사의 GPT-3.5 등 다양한 오픈소스 AI 모델이 등장했다. 셋은 6개월간 치열한 개발 과정에 뛰어들었다.

펜스 팀의 AI 기반 판결문 검색 시스템은 문맥 유사도를 따진다는 점에서 시장에 존재하지 않던 서비스다. 김 군은 “로톡의 ‘빅케이스’ 서비스가 있지만, 키워드 중심 검색이란 점에서 차이가 있다”며 “펜스는 문장을 입력하면 단어뿐만 아니라 맥락상 비슷한 판례까지 AI가 스스로 찾아준다”고 말했다. 이 군은 “판결문에서 과일로서의 애플(사과)과 기업 애플을 구별할 수 있는 것”으로 표현했다. 현재 서비스는 변호사들을 돕는 플랫폼을 표방하고 있지만, 연내 일반 이용자로도 이용 대상을 확대할 계획이다.홍 대표는 미국 스탠퍼드대 로스쿨의 리걸테크 연구 조직 ‘코드엑스’ 활동에도 참여하고 있다. 처음 이메일을 보냈을 때 스탠퍼드대에선 “고등학생은 받지 않는다”고 했지만, 결국 정기회의 멤버로 홍 대표를 받아들였다. 그는 “새벽 5시에 일어나 온라인 미팅에 참여하고 있는데 현지 법조인들이 한마음으로 기업가에게 피드백을 주는 것을 보고 자칫 해외 업체에 국내 시장을 내줄 수 있겠다 싶었다”고 했다.

홍 대표와 김 군은 용인외대부고 국제진학반에서 공부하고 있다. 둘의 목표는 스탠퍼드대다. 각각 경영학과와 컴퓨터공학과 진학을 준비 중이다. 홍 대표는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 환경을 체험해보고 싶다”며 “창업 활동도 꾸준히 이어가 성공을 거둔 후 벌어들인 자본으로 국내 스타트업에 투자해 키우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참 한 가지 더

버려지는 '못난이 농산물', 시리얼로 재탄생
못난이농산물을 재가공 후 시리얼로 다시 판매하는 '어벤지스'팀.
오는 9월 이탈리아로 향하는 고등학생들은 한 팀이 더 있다. 세이지월드컵 국내 우승을 두고 막판까지 경합을 벌였던 ‘어벤지스’(용인외대부고 유연호·이래호·김준·김태림·탁우현·김도은·이정민·박지윤)는 우연히도 1위 팀과 같은 학교다. 고등학교 2·3학년으로 구성된 이들은 못난이 농산물을 모아 시리얼을 만드는 사회적 기업을 창업했다. 이래호 어벤지스 대표는 “못난이 농산물은 외형이 예쁘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대량 폐기 처분되고 있다”며 “이런 식자재를 재활용하는 것은 식량 부족과 환경 오염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핵심 해법”이라고 말했다.

8명의 고등학생은 실제 초기 스타트업 팀처럼 움직인다. 기획·개발·디자인 등 각자 맡은 업무가 세분돼 있다. 이들은 지난해 8월 고등학생 대상 경영전략대회인 ‘Biz Blac Box’에 함께 출전하면서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사회적 기업에 관심이 많았던 이 대표가 추후 멤버들을 다시 모으기 시작했고, 일부 인원 변동을 겪으며 현재와 같은 조직 구조가 자리 잡았다. 이 대표는 “친구들끼리 매일 밤을 새우며 고생하면서도, 서로 합이 굉장히 잘 맞는다고 느꼈다”며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역할 분담이 됐고, 창업까지 가능하겠다는 판단이 섰다”고 말했다.

원래 목표는 기부 플랫폼이었다. 지역의 복지시설, 특히 요양원에 못난이 농산물을 기부하는 형태의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다만 단순 기부 사업은 지속성에 한계가 있다는 의견이 나오면서, 못난이 농산물에 ‘스토리’를 부여하기로 했다. 이정민 양은 “못난이 농산물들에 각각 캐릭터를 부여하고, 플랫폼에 들어왔다가 판매될 땐 히어로가 돼 출하된다는 콘셉트를 만들었다”고 했다. 농산물 초기 구매비용을 담당하는 기부자들에겐 캐릭터 굿즈를 제공하고, 만든 시리얼의 일부는 기부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최근 어벤지스는 비영리법인 등록 후 수익사업 허가를 받았다. 식량이 부족한 제3국을 돕는 플랫폼으로 성장하는 것이 이들의 최종 목표다.

이시은 기자 s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