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짱 시인’ 바이런의 멋진 풍자시 [고두현의 아침 시편]

어느 뉴펀들랜드 개의 묘비명


여기에
그의 유해가 묻혔도다.
그는 아름다움을 가졌으되 허영심이 없고
힘을 가졌으되 거만하지 않고
용기를 가졌으되 잔인하지 않고
인간의 모든 덕목을 가졌으되 악덕은 갖지 않았다.
이러한 칭찬이 인간의 유해 위에 새겨진다면
의미 없는 아부가 되겠지만
1803년 5월 뉴펀들랜드에서 태어나
1808년 11월 18일 뉴스테드 애비에서 죽은
개 보우슨의
영전에 바치는 말로는 정당한 찬사이리라.
* 조지 고든 바이런(1788~1824) : 영국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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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낭만주의 시인 조지 고든 바이런은 날카로운 풍자시를 많이 썼습니다. 서정시도 비통한 감성이 주를 이뤘지요.

장편 서사시 ‘차일드 해럴드의 편력’으로 일약 스타가 된 그는 훤칠한 키에 미남이어서 많은 여인을 설레게 했습니다. 그는 귀족인데다 젊고 잘생겼죠. 그만큼 스캔들도 많았습니다. 선천적인 다리 기형을 갖고 있었지만, 인기는 식을 줄 몰랐지요. 그러나 28세에 고국을 등지고 이탈리아, 그리스 독립운동을 돕다가 열병에 걸려 36세로 생을 마치고 말았습니다.그가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노팅엄셔의 낡은 뉴스테드 애비의 영주(領主)로 있을 때, 보우슨이라는 이름의 뉴펀들랜드 종 개를 키웠습니다. 그는 몸집이 크고 주인을 잘 따르는 뉴펀들랜드 종을 무척 좋아했다고 합니다.

뉴펀들랜드는 덩치 큰 바다 구조견입니다. 발가락이 물갈퀴 모양으로 되어 있고 기름기가 있는 털이 물에 젖지 않아 바다에서 활동하기에 적합하지요. 주인이나 아이 등 가족들을 잘 지키고 돌봅니다. 갓난아이들을 부드럽게 보살피고 잘 놀아주면서 혹시라도 위험이 닥칠 땐 놀라울 정도로 용감하게 맞서 싸우지요.

뉴펀들랜드 개는 바이런이 묘비명에 쓴 것처럼 ‘아름다움을 가졌으되 허영심이 없고/ 힘을 가졌으되 거만하지 않고/ 용기를 가졌으되 잔인하지 않고/ 인간의 모든 덕목을 가졌으되 악덕은 갖지 않았다’고 합니다.‘어느 뉴펀들랜드 개의 묘비명’은 보우슨이 죽었을 때 그가 묘비에 새긴 시입니다. 풍자 시인답게 이 작품에서도 개의 애도뿐만 아니라 잘난 척하고 오만하고 잔인한 인간의 악덕을 신랄하게 비판했지요.

묘비에는 큰 글씨의 이 시 밑에 작은 글씨의 산문시가 더 새겨져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오, 노역으로 타락하고 권력으로 부패한 인간, 시간의 차용자여, 당신의 사랑은 욕망일 뿐이요, 당신의 우정은 속임수, 당신의 미소는 위선, 당신의 언어는 기만이리니! (…) 내 생애 진정한 친구는 단 하나였고, 여기에 그가 묻혀 있도다’라는 구절에 눈길이 오래 머뭅니다.


■ 고두현 시인 :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늦게 온 소포』,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달의 뒷면을 보다』 등 출간. 유심작품상, 김만중문학상, 시와시학 젊은시인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