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판사도 태블릿 보며 '땅땅땅'…세계 첫 '디지털법원' 열린다

대법원, 내년 10월 시행

LG CNS와 시스템 개발 착수
AI가 판례 찾아주고 재택 재판
판결속도 빨라져 로펌도 "환영"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법원이 2300억원을 투입해 세계에서 처음으로 모든 소송을 온라인에서 할 수 있는 시스템 개발에 들어갔다. 내년 10월 서비스가 시작되면 민사뿐 아니라 형사소송도 휴대폰과 태블릿PC 등 전자기기를 통해 할 수 있게 된다. 법정에서도 종이 대신 디스플레이 화면을 통해 사건 기록을 보는 시대가 열릴 전망이다. 법원을 오가는 복잡한 송무 절차가 대폭 간소화되고 법원의 기존 판례 기록에 대한 접근성도 한결 용이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세계 첫 형사소송 전산화 도입

22일 법조계에 따르면 법원행정처 차세대전자소송추진단(단장 장정환)은 2028년까지 차세대 전자소송 시스템 개발 및 운영에 총 2300억원을 투입할 예정이다. 시스템 개발에 658억원, 유지·운영 비용으로 1019억원 등이 집행된다. 형사소송 분야를 제외한 법원 전자화 시스템 개발은 LG CNS가 맡았다. LG CNS 관계자는 “기획-분석-개발-보안으로 이뤄진 네 단계 중 세 번째 단계인 개발사업을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법원은 이번 작업을 통해 형사소송 절차 등 모든 송무 시스템을 디지털 방식으로 전환할 계획이다. 2010년께 도입된 전자소송은 현재 민사소송만 가능해 국민들의 불만이 지속됐다. 형사소송이 전자화되면 법조계의 업무에도 상당한 변화가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해외에선 미국이 처음으로 민사에 전자소송을 도입했으며 아시아에선 싱가포르가 처음 시도했다. 일본은 지난해 1월에야 전자소송 도입 내용을 담은 민사소송법 개정안을 내는 등 디지털 전환에 뒤늦게 속도를 내고 있다. 아직까지 형사에도 전자소송을 도입한 나라는 없다. 이기리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는 “모든 소송이 전자화되면 불필요한 서류 작업이 사라져 업무 효율성이 높아지고 재판 진행 속도도 빨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전자소송 시스템이 도입되면 만성적 재판 지체 해소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2년 넘게 1심 재판 결과를 받아보지 못한 피고인은 2022년 4781명으로 2017년 1709명의 약 세 배로 늘었다.

◆수백억 종이값 대폭 절감할 듯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등을 접목한 리걸테크도 도입한다. 법원의 방대한 정보를 활용한 △빅데이터 분석 △AI 검색 시스템 △지능형 챗봇 서비스를 개발한다. 법관이 판결문을 쓸 때 AI가 과거 비슷한 사건의 판결을 자동으로 제시하는 시스템도 구축할 예정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법관이 가장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입하는 판결문 작성에서 부담을 줄일 수 있게 돼 업무 능률이 올라갈 것”이라고 말했다.

법정에서 판사가 종이 기록을 보면서 진행하는 재판도 사라진다. 내년부터 법정 기록을 컴퓨터에 다운받아 모니터나 스크린에 띄워 재판을 진행할 계획이다. 참여 사무관이 재판장 지시에 따라 빔 프로젝터, 스크린, 전자 기록을 조작하는 업무를 맡는다. 법원 관계자는 “많게는 수만 장짜리 재판 기록을 손수레에 담아 옮길 필요가 없어진다”며 “매년 수백억원에 달하는 종이 기록 인쇄 및 송달 비용도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판사가 원하는 시간에 집 또는 스마트오피스 등 다른 공간에서 소송 기록을 살펴보며 업무를 보는 ‘스마트워크 시스템’도 생긴다. 서울에 가족을 두고 지방에서 근무 중인 판사는 월요일과 금요일 중 하루를 서울 스마트워크센터로 출근해 근무할 수 있다.

권용훈 기자 fac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