高물가·개혁 방치…"4년 뒤 국민연금 주려면 보유주식 팔아야 할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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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빨라진 국민연금 적자“향후 10년은 국민연금의 보험료 수입이 지출보다 많은 ‘기금 성장기’다. 투자 기회가 많고 성과도 국내보다 나은 해외 투자를 확대하겠다.”
걷는 돈보다 줄 돈 더 많아져
저출산·고령화에 고물가 덮쳐
2007년 이후 연금개혁 손 안대
위험자산 비중 늘려온 국민연금
연금 지급 위해선 자산 처분해야
2020년 7월 박능후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은 국민연금의 수익률을 높이기 위한 ‘해외투자 종합계획’을 발표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국민연금의 기금수지(보험료 수입+투자수익-연금 지급액)가 아니라 보험료 수지(보험료 수입-연금 지급액)를 기준으로 국민연금의 투자 기조를 밝힌 것이다.22일 국민연금연구원이 공개한 ‘중기재정전망 2023~2027년’에 따르면 ‘기금 성장기’가 끝나는 시점이 2027년으로 제시됐다. 기존 전망보다 3년 빨라졌다. 불과 4년 뒤부터 보험료만으로 연금 지급이 안 되기 때문에 투자수익 일부를 헐어야 한다는 것이다. 주식, 대체투자 등 고위험 자산 투자를 늘려온 국민연금의 투자 기조도 변화가 불가피하다.
○연금 지급, 4년 만에 69% 급증
국민연금연구원은 중기재정전망에서 2027년 국민연금 지급액(급여 지출)이 66조1433억원으로 1988년 국민연금 도입 후 처음으로 보험료 수입(66조757억원)을 넘을 것으로 전망했다. 연금 지급액이 올해 39조1349억원에서 4년 만에 69% 늘어나는 반면 보험료 수입은 올해 58조9873억원에서 2027년까지 12.1% 증가하는 데 그칠 것으로 봤다.이는 저출산·고령화에 더해 물가 상승과 연금개혁 지연이 겹친 영향이 크다. 국민연금연구원은 최근 고물가를 반영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올해 3.5%, 2024년과 2025년에 각각 2.5%, 2.2%를 기록한 뒤 2026년부터 2%로 유지되는 것으로 가정했다. 5차 재정추계 땐 2030년까지 물가상승률이 2.2% 수준을 유지한다고 봤는데, 이번에 물가상승률 전망치를 높인 것이다. 국민연금 지급액은 매년 전년도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반영해 조정되기 때문에 물가 상승은 국민연금 재정에 부담이 된다.정부가 2007년 이후 보험료율 인상이나 소득대체율 하향 조정 같은 연금개혁 없이 ‘사각지대 해소’ 명목으로 연금 가입자를 늘리는 정책을 펴온 점도 보험료 수지 적자전환 시점이 빨라진 요인이다. 실제 국민연금 수급자는 작년 말 664만2643명에서 2027년 말엔 904만7143명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한정림 국민연금연구원 재정추계분석실장은 “최근의 물가 상승세와 제도적 요인에 따른 노령연금 수급자 증가가 급여 지출 증가 속도를 높였다”고 말했다.
○국민연금 운용 기조 달라질 수밖에
보험료 수지 악화는 국민연금의 기금운용 기조를 뒤흔드는 요인이다. 국민연금은 2020년 해외투자 종합계획을 세우면서 보험료 수지가 흑자인 ‘기금 성장기’, 보험료 수지가 적자지만 투자수익 덕분에 기금 적립액은 늘어나는 ‘기금 전환기’, 기금 수지가 적자전환하는 ‘기금 감소기’를 구분해 전략을 짰다. 기금 성장기엔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해외주식 비중 확대, 대체투자 등 고위험을 감수하는 투자전략을 세웠다. 하지만 기금 전환기엔 위험자산 비중을 줄일 수밖에 없다. 투자수익 중 일부를 연금 지급에 써야 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투자자산 확대에만 집중하면 됐지만 앞으로 위험자산 비중을 줄이고 투자 회수에 신경써야 하는 것이다.이는 장기적으론 국민연금의 수익률 하락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특히 ‘연못 속 고래’로 통하는 국민연금이 국내 증시에서 주식을 처분할 경우 시장 전반적으로 하락 압력이 커질 수 있다.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근본적으로 국민연금의 재정이 안정화되지 않는다면 비대해진 국민연금이 국내 금융시장을 장기 침체에 빠뜨리는 요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황정환/허세민 기자 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