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랴부랴 미신고 영아 전수조사 '뒷북'…병원밖 사각지대 여전(종합)

의료기관 신생아 필수접종 위한 임시 번호로 산모 추적할 근거 마련
병원 출생통보제·보호출산제 법제화 한다지만 부작용 우려도
'수원 냉장고 영아 시신' 사건을 계기로 출생 신고가 안 된 영아가 살해·유기된 사례가 잇따라 드러나면서 아동 보호·사회 복지 시스템에 또다시 '구멍'이 노출됐다. 정부는 부랴부랴 의료기관에서 태어난 기록은 있지만 출생 신고는 되지 않은 미신고 아동 전수조사에 나서겠다고 발표했으나 지금까지는 제대로 손을 쓰지 못했다는 '뒷북' 지적이 제기된다.

아울러 정부와 국회 모두 이번 일을 계기로 의료기관의 출생통보제와 보호출산제(익명출산제·의료기관에서 여성이 익명으로 출산한 아동을 국가가 보호) 법제화에 더욱 속도를 내기로 했는데, 이들 제도가 도입된다고 하더라도 '병원 밖 출산'은 여전히 사각지대로 남는 한계가 있다.

22일 보건복지부와 감사원 등에 따르면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8년간 출산 후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영아는 2천236명으로 확인됐다. 이들 영아 2천여명은 의료기관에서 출생한 신생아에게 출생 직후 B형간염 등 필수 예방접종을 위해 자동 부여되는 '임시 신생아번호'를 통해 파악됐다.

의료기관은 임시 신생아 번호로 필수접종을 실시하고 질병관리청으로부터 그 비용을 정산받는다.

그런데 이 임시 신생아번호에는 아이를 낳은 여성(모)에 대한 정보는 반영되지 않아 임시 신생아번호(접종기록)와 실제 출생신고 여부를 교차 확인해서 추적할 수 없었다.
보건복지부와 지방자치단체가 학대 아동 발굴을 위해 시행하는 가정양육 아동 전수조사 등 기존 체계는 출생신고를 해서 주민등록번호가 있는 아동만 대상으로 한다.

감사원이 최근 보건당국 정기 감사에서 이런 사각지대에 있는 '유령 아동' 사례가 있을 것이라고 지적하고, 지방자치단체에서 일부 사례를 직접 확인하면서 이번 수원 영아 살해가 확인됐다.

이기일 보건복지부 제1차관은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긴급 브리핑을 열고 관계 기관과 함께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채 의료기관에서 발급한 임시 신생아 번호만 있는 아동을 전수조사하겠다고 발표했다. 전수조사는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파악된 2천236명을 대상으로 우선 실시한다.

전수조사에서 살해 또는 유기된 사례가 추가로 발견될 가능성이 크다.

또한 정부는 출생 신고가 누락되는 '유령 아동'이 없도록 한다는 목표로 의료기관이 신생아 출생을 각 시읍면에 통보하는 '출생통보제', 위기 임산부가 의료기관에서 익명으로 출산한 아동을 지방자치단체가 보호하는 '보호출산제' 법제화에 속도를 내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아동복지 전문가와 시민단체에서는 정부의 대책이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의 뒷북 처방이라는 지적이 크다.

지금까지 임시 신생아 번호와 출생 신고를 매칭하지 않고 사각지대에 손을 놓고 있던 셈이기 때문이다.

임시 신생아 번호에는 어머니의 정보가 없어서 본인 동의 없이 임시 번호로 추적할 근거가 없었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이기일 차관은 브리핑에서 "지금까진 임시 신생아 번호로 파악할 수 있는 근거가 없었는데 사회보장급여에 관한 법률 시행령을 조속히 개정해 근거를 만들겠다"며 "시행령 개정에 걸리는 시간 동안 필요시 적극 행정을 통해 바로 하겠다"고 말했다.
미신고 아동 전수조사 계획에 대해 송다영 인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연합뉴스와 전화통화에서 "사후적 처방"이라며 "전수조사만으로는 발굴·대응에 한계가 있으며 애초부터 사전에 찾아낼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전수조사나 출생통보제 등 강제적 성격의 조치가 출산 사실을 숨기고 싶어 하는 이들을 '병원 밖 출산'이나 낙태(임신중절)로 내모는 부작용을 야기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출생통보제와 보호출산제 도입 방침은 올해 4월 윤석열 정부 아동정책 추진방안으로 발표됐으며, 현재 관련 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

복지부·통계청에 따르면 국내에서 병원 밖 출산 사례는 전체 출산 중 1% 정도를 차지하며, 연간 100∼200건 수준이다.

정부는 보호출산제로 의료기관을 찾지 않고 아이를 낳으려는 산모를 의료기관 내로 끌어들인다는 계획이지만, 그래도 의료기관 출산을 거부하는 이들은 찾아내기 힘들 수 있다.

의료기관에 출생신고 의무를 지우는 방안은 책임 소재와 행정적 부담을 가중한다는 지적도 크다.

'직선제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이런 이유로 지난 4월 의료기관 출생통보제 도입 계획 발표 당시 "정부가 아동 보호 책임·의무를 민간에 떠넘긴다"며 반대 의사를 밝힌 바 있다.

김미숙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아동복지연구소장은 "출생통보제가 조속히 필요하다"며 "다만 의료기관의 부담이 큰 만큼 지원 방안이 함께 제시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출생신고 및 주민등록번호 제도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있다.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부모는 자녀가 태어나면 출생일로부터 1개월 이내에 관할 지자체에 출생 신고를 해야 한다.

이 기간 내에 출생신고를 하지 않으면 '5만원 이하'의 과태료 처분을 받을 뿐이고 형사 처벌 등 추가적인 처벌 조치는 없다.

출생 신고를 하는 사람을 '부모'로만 한정하고, 미신고시 처벌도 너무 경미하다 보니 부모가 출생신고를 하지 않으면 사실상 속수무책이다.

아동이 출생 등록될 권리는 유엔아동권리협약도 명시하고 있다.

이 협약 7조는 '아동은 태어난 즉시 출생 등록되어야 하며 출생할 때부터 이름을 갖고 국적을 취득하며 가능한 부모를 알고 부모에게 양육 받을 권리가 있다'고 적고 있다.
이기일 차관은 "의료기관 출생통보제 법안이 현재 국회 법제사법위에 계류 중이고, 의료계와 협의를 원만히 진행하고 있다"며 "빠르면 이달, 늦어도 7월에 해당 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지 않을까 정부는 기대한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근본적으로 아이를 낳아서 기를 수 있는 사회적 안전망과 환경을 구축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한다. 송다영 교수는 "낳아서 기를 형편이 안 된다는 이유로 영아를 살해 또는 유기하는 것"이라며 "낳아서 국가 지원을 받으며 기를 수 있다는 확신이 없는 게 문제이므로 양육 환경 마련이 근본적 대책"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