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상 광물로는 턱없이 부족"…바닷속까지 뛰어드는 이유 [김리안의 에네르기파WAR]


세계 각국이 전통 화석 연료에서 벗어나 친환경 에너지로의 전환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기후 위기를 해결하고, 생물 다양성을 보전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대양 심해저를 탐사·개발하는 '심해 채굴'을 둘러싼 논쟁이 최근 커지고 있다.

한쪽에선 망간, 니켈, 코발트 등 녹색 전환에 필수적인 광물 자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려면 깊은 바닷속을 채굴하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다른쪽에선 해양 채굴 기술의 안정성이 입증되지 않은 상황에서 바다 밑바닥을 헤집어 놓으면 해양 생태계를 파괴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맞선다. 생물 다양성을 보전하겠다며 나선 일이 오히려 이를 해치는 교각살우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태평양 섬나라의 도발적 승부수

유엔 산하 해양 규제기관인 국제해저기구(ISA)는 내달까지 각국 정부 혹은 광산 기업들로부터 심해 채굴 허가 신청을 받는다. ISA 위원회는 이후 1년동안 신청서를 검토한 뒤 회원국 중 3분의1 이상의 찬성표를 얻은 주체에 '심해 채굴 면허'를 발급할 예정이다. ISA는 유럽연합(EU)을 포함해 167개 나라가 가입돼 있다. 세계 주요국 가운데 미국만 유일하게 ISA 회원국이 아니다.

심해 채굴에 관한 논쟁은 1960년대부터 이어져 왔다. 해묵은 이슈에 불씨를 당긴 건 태평양에 위치한 작은 섬나라 나우루공화국이다. 2021년 나우루공화국이 법률 조항을 발동해 ISA에 '회원국들의 의견 수렴을 거쳐 2023년 6월까지 심해 채굴 가이드라인을 마련해달라'고 요청하면서다. ISA가 시한을 지키지 못할 경우 각국 및 기업들로부터 심해 채굴 허가 신청을 받은 뒤 발급 여부를 검토하도록 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ISA가 오는 7월부터 면허 신청을 받게 된 것은 나우루공화국의 '최후통첩' 승부수가 통했기 때문"이라며 "나우루공화국이 상업적 규모의 심해 채굴 시기를 앞당겼다"고 전했다. 현재 국제 해역에서는 광물 자원을 탐사하거나 시험 채굴 수준으로 작업이 진행되고 있고, 대규모 개발까지 나아갈 수는 없다. 나우루공화국은 세계 최대 광산기업 글렌코어 등이 출자한 캐나다 기업 더메탈스컴퍼니(TMC)와 함께 세운 나우루해양자원주식회사(NORI)를 통해 본격적으로 심해 채굴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심해 채굴 명분은 '친환경 전환'

심해 채굴 찬성론자들의 근거는 '친환경 전환'이다. 육상 채굴 규모로는 전기자동차 배터리 등 제조에 필수적인 금속 광물에 대한 수요를 충족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기후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파리기후협약 이후 전기차와 전력망 배터리의 붐으로 인해 핵심 광물 수요가 2040년까지 4배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심해 채굴을 통해 광물 수요를 충당해야만 중국산 광물 의존도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2050년 넷제로 달성 위한 광물 수요 전망.
벨기에 심해 채굴 회사인 글로벌씨 미네랄 리소스의 상무이사 크리스 반 니젠은 "인도네시아, 파푸아뉴기니, 필리핀 등에서 막대한 양의 광물을 얻으려면 열대우림 파괴가 더욱 심해질 것"이라며 "심해 채굴은 불가피한 절충안"이라고 말했다. 투자은행 뱅크오브아메리카의 마이클 위드머 광물전략가는 "우리가 친환경 원자재가 절실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에너지 전환을 촉진하기 위해 해저를 파헤치는 것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호주 비영리단체인 민더루 재단의 해양 과학자 토니 워비는 "심해 생태계가 형성되는 데에만 수천 년이 걸리는데, 너도 나도 채굴에 나설 경우 이는 순식간에 파괴될 것"이라며 "심해 진출 야욕을 가감없이 드러내는 세력은 불장난을 하고 있는 셈"이라고 비판했다. 애드리안 글로버 해저 생태계 과학자는 "심해 채굴을 뛰어들기로 한 결정은 과학적인 결정이 아니라 '얼마나 많은 위험을 감수할 의향이 있는지'에 따라 입장이 나뉘는 정치적 결정"이라고 했다.

노르웨이의 딜레마

이런 가운데 유럽의 대표적인 친환경 국가 노르웨이는 곤경에 처해 있다. 노르웨이 정부는 북극해 스발바르 제도 인근을 심해 채굴 가능 지역으로 개방하기 위해 관련 절차를 진행하면서다. 해당 지역의 크기는 독일 면적과 맞먹는 수준이다. 이 같은 행보는 환경 운동가·어업 종사자들의 불만을 사고 있을 뿐만 아니라 수역 관할권에 대한 러시아, 영국 등 이웃 국가들과의 분쟁을 자극하고 있다.
요나스 가르 스퇴레 노르웨이 총리는 비판이 계속되자 "기후 위기 해결과 자연환경 보호 사이의 딜레마를 외면하지 않겠다"면서도 "그 사이의 균형점을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녹색 전환에 필수적인 원자재를 중국이나 콩고 같은 특정 국가에 의존하는 것은 안보 측면에서 매우 위험하다"면서 "심해 광물 개발을 손놓고 있으면 주도권을 다른 나라에 빼앗기게 된다"고 주장했다.

노르웨이는 심해 채굴 허가 외에도 원주민 거주 지역에 풍력발전소를 건설하는 문제로 환경 운동가들로부터 거센 저항을 받고 있다. 유명 활동가 그레타 툰베리는 "노르웨이의 녹색 식민주의"라고 비판하며 총리실 점거 등 시위를 계속하고 있다. 녹색 식민주의란 탄소배출량을 줄이기 위한 서방국가들의 기후전략이 원주민들의 영토와 자원 그리고 사람들을 착취하는 결과로 이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