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대의 기돈 크레머, 슈만 만년의 걸작에 더 깊이 다가가다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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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4일 롯데콘서트홀지난 토요일(24일) 저녁 서울 잠실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KBS교향악단의 제791회 정기연주회(부제 ‘소리의 풍경화’)는 현존 최고 바이올리니스트 기돈 크레머를 협연자로 초청해 각별한 관심을 모았다.
KBS교향악단 제791회 정기연주회
요엘 레비 지휘·기돈 크레머 협연
크레머 전매특허 슈만 ‘첼로 협주곡 a단조’ 편곡판
더 중후하고 깊어진 선율 …여과된 표현으로 호연
크레머는 1980년대부터 솔리스트 또는 앙상블 리더로 꾸준히 내한 무대를 가져왔다. 하지만 국내 정규 교향악단과의 협연은 이번이 처음인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의 나이와 이력을 감안하면 너무 늦은 감이 없지 않았다. 아울러 KBS교향악단이 운영하는 유튜브 영상에 따르면 이날 지휘를 맡은 요엘 레비와의 협연도 이번이 처음이었다고 하니 더욱 흥미롭고 주목할 만한 무대였다고 하겠다.최근 들어 KBS교향악단은 요엘 레비를 만나면 유독 좋은 컨디션을 보여주곤 하는데, 때로는 그가 KBS교향악단의 음악감독이었던 시절보다 더 멋진 연주를 들려주기도 한다.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요인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첫째는 레비가 매우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바통 테크닉을 구사하는 지휘자라는 점이고, 둘째는 레비와 자주 호흡을 맞춘 베테랑 객원 악장이 함께 오는 데 있다. 이날도 악장 자리에 미국 애틀랜타 심포니의 악장인 데이비드 쿠셰론이 앉아서 앙상블을 리드했다.
1부 첫 곡은 바그너의 ‘탄호이저 서곡’이었다. 하필 러시아의 용병집단 ‘바그너 그룹’이 반란을 일으켜 모스크바를 향해 진군 중이라는 소식이 전해진 날이라 공교로운 기분도 들었지만, 물론 작품과 연주는 그런 일과 무관했다. 바그너의 서곡 중 가장 유명한 이 작품에서 KBS교향악단은 기대 이상으로 탄탄한 연주를 들려줬다.
비록 조용한 시작 부분에서 호른 앙상블에 약간의 얼룩이 지긴 했지만, 금관부가 도맡는 ‘순례자의 합창’ 선율은 시종 풍부하고 안정감 있게 부각됐고, 중후함과 현란함을 오가는 현악부의 움직임도 효과적으로 처리되었다. 특히 ‘베누스베르크’의 관능적인 세계를 표현하는 중간부에서 레비는 왼쪽으로 몸을 돌린 채 제1바이올린에 집중해 그 현란한 움직임을 극도로 치열하고 생생하게 부각시키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2부 프로그램인 스트라빈스키의 발레 음악 ‘불새’ 전곡은 더욱 멋진 호연이었다. 레비의 해석은 기본적으로 순음악적 접근을 통해 작품 특유의 리드미컬한 묘미와 다이내믹한 역동성을 부각하고 악단의 기능미를 극대화하는 방향을 지향한 듯했다.
덕분에 ‘카슈체이 일당의 춤’ 장면을 비롯한 역동적인 장면들의 앙상블적·음향적 쾌감이 대단했고, ‘불새의 춤’처럼 리듬감이 도드라지는 장면들이 특히 매력적으로 부각됐다. 다만 발레극의 흐름상 각 장면의 전환부에 해당하는 대목들은 너무 매끄럽고 평탄하게 처리된 감이 있어서 극적 내러티브의 전달 면에서는 아쉬움이 없지 않았다.
기돈 크레머의 협연도 관심과 기대에 부응했다. 아니 그 이상이었다. 슈만 만년의 걸작인 ‘첼로 협주곡 a단조’의 바이올린 편곡판은 크레머의 전매 특허나 다름없는 곡인데, 역시 그의 연주는 남다른 감각과 감흥, 오묘한 깊이를 아우르고 있었다. 연주 초반에는 활의 컨트롤이 잠깐씩 흐트러지는 등 어느덧 칠순을 훌쩍 넘긴 거장이 오늘 최상의 컨디션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지만, 어쩌면 그로 인해 더욱 특별한 연주를 들을 수 있었는 지도 모르겠다.연주가 진행되면서 기술적인 면은 안정돼 갔고, 크레머는 예상보다 차분한 흐름과 겸허한 어조로 악곡을 채색해 나갔다. 바이올린의 예리함과 화려함을 완전히 은폐한 것은 아니었지만, 과거에 비해 첼로의 중후함과 은근함에 한 걸음 더 다가서 있는 연주였다고 할까. 30년 전 쇼스타코비치 편곡판을 선택했던 이 곡 최초 음반은 물론이고, 유튜브에서 들을 수 있는 7년 전의 부다페스트 실황보다도 몇 단계 여과된 표현들이 그윽한 감흥을 자아내며 듣는 이의 심금을 울렸다.연주를 마친 크레머는 ‘우크라이나의 희생자들을 위해서’라는 멘트에 이어 조지아의 현존 작곡가 이고르 로보다의 ‘레퀴엠(진혼곡)’을 앙코르로 들려줬다. 소절마다 깊은 아픔과 슬픔, 탄식과 고뇌가 배어 있는 곡과 그의 절절한 연주는 슈만의 정서와도, 격변과 혼란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네 인류의 내면과도 공명하고 있었다.
커튼콜. 관객들은 뜨거운 박수로 화답했지만, 크레머는 정중히 예를 표하면서도 환하게 웃지는 않았다. 등장할 때와 퇴장할 때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심지어 기립박수를 치고 있는 관객에게도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혹시, 본 곡 연주에 스스로 만족하지 못해서였을까? 그러나 이미 오래 전 지고의 경지에 도달한 노거장은 이제 그 너머의 지평선을 묵묵히 걸어가고 있었다.
황장원 음악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