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로 읽는 세상] 밀가격 50% 떨어졌다지만…라면값 인하 놓고 정부-업계 '신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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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경호 "라면값 내려야" 압박
업계 "수익성 겨우 회복했는데"
불만 속 가격 인하 검토
지난 5일 서울 한 대형마트에서 라면을 고르는 외국인 관광객의 모습. /연합뉴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8일 “국제 밀 시세에 맞춰 라면값을 적정하게 내릴 필요가 있다”며 압박에 나서자 라면 제조사들이 즉각 가격 인하 검토에 들어갔다. 라면업계는 이명박 정부 시절이던 2010년 제품 가격을 인하한 뒤 지금까지 한 번도 가격을 내린 적이 없다.

추 부총리는 이날 KBS ‘일요진단’에 출연해 “지난해 (라면값이) 많이 인상됐는데, 현재 국제 밀 가격은 그때보다 50% 안팎 떨어졌다”며 “이에 맞춰 기업들이 적정하게 (라면) 가격을 내리든지 대응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농심, 오뚜기 등 라면 제조사들은 작년 9~11월 원가 상승을 이유로 라면 판매 가격을 9.7~11.3% 올렸다. 밀 수입 가격은 작년 9월 사상 최고치인 t당 496달러에서 지난 2월 449달러까지 떨어졌지만, 평년 평균치(283달러)에 비해선 1.6배 높은 수준이다.추 부총리는 “라면 같은 품목의 가격은 시장에서 업체와 소비자가 결정해 나가는 것이라 정부가 개입해 가격을 통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전제했다. 그러나 “소비자단체가 적극적으로 견제하고, 가격 조사도 하는 등 압력을 행사하면 좋겠다”고 말해 식품업계에선 사실상 강력한 가격 인하 신호를 준 것으로 해석했다.

이에 따라 라면 제조사들은 라면값 인하 검토에 나섰다. 식품업계에선 이명박 정부 당시의 선례를 봤을 때 라면업체들이 가격을 내릴 공산이 크다고 보고 있다.

정부가 라면을 콕 찍은 이유

추 부총리가 라면을 콕 찍어 가격 인하를 사실상 압박하고 나선 데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전반적으로 둔화하고 있지만 라면을 비롯한 주요 먹거리 물가는 두 자릿수로 치솟아 국민들이 이를 체감하지 못하는 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달 소비자물가는 19개월 만에 가장 낮은 상승폭(3.3%)을 나타냈다. 하지만 가공식품·외식 부문의 세부 품목 112개 중 31개(27.7%)의 물가상승률은 10%를 웃돌았다. 특히 라면은 소비자물가지수가 1전 년보다 13.1% 올랐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 2월(14.3%) 후 14년3개월 만의 최고치다.

팜유와 합쳐 전체 생산비용의 60% 정도를 차지하는 밀 시세가 하락한 것도 이유 중 하나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에서 거래되는 소맥 선물의 이달 평균 가격은 t당 231.0달러로 지난해 5월과 10월 대비 각각 44.9%, 27.7% 떨어졌다.

우크라전 격화에 밀가격 반등세

라면 업체들은 가까스로 회복한 수익성(영업이익률)이 다시 악화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국내 1위 농심은 2021년과 2022년 3%대에 머무른 영업이익률이 1분기에 가까스로 7%대로 올라왔다. 이는 비교 대상으로 꼽히는 일본 1위 닛신이 매년 8~10%의 이익률을 꾸준히 내는 것과 비교되는 부분이다.국제 밀 가격도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최근 다시 격화해 반등 추세를 보이는 점을 감안하면 안심할 수 없다는 게 업계의 주장이다.

한 라면 회사 관계자는 “지난 2년간 반토막 났던 영업이익률이 해외 판매 호조로 올 들어 가까스로 정상화됐다”며 “원가 부담이 전반적으로 큰 상황에서 국제 밀 가격만을 이유로 가격을 내리면 수익성이 다시 악화할 것”이라고 토로했다.

하헌형/하수정 한국경제신문 기자

NIE 포인트

1. 국제 밀 가격과 라면값의 관계를 정리해보자.

2. 전체 소비자물가와 라면 소비자물가지수를 비교해보자.

3. 정부의 라면값 통제에 대해 토론해보자.